국제


수치 여사에 대한 비판, 왜?


미얀마 정계는 ‘적과의 동침’ 중?

 

“민주화의 꽃.”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미얀마(버마)의 NLD(민주주의민족동맹) 당수, 아웅산 수치 여사(70)를 일컫는 말이다. 군부의 폭정에 맞서 머리에 꽃을 꽂고 당차게 연설하는 그녀에게 붙여진 찬사다.

수치 여사의 NLD는 25년 만에 치러진 지난 11월8일의 미얀마 자유 총선에서 압승을 거둘 것이 확실하다.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1월12일 밤 9시 현재까지 NLD는 상원 110석, 하원 217석 등 모두 327석을 확보했다. 2석만 더 얻으면 전체 657석의 과반인 329석을 확보해 내년 초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서 단독 집권이 가능해진다. 미얀마를 53년간 지배해온 군부에게 탄압받던 야당 NLD가 새로운 미얀마의 정치 주역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수치 여사 역시 양곤 주 코무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수치 여사가 대통령에 출마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미얀마의 헌법 규정 때문이다. 외국 국적자를 배우자나 자녀로 둔 사람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수치 여사의 남편은 영국인 학자이며, 2명의 아들 역시 영국 국적이다. 수치 여사가 대통령 선거에 나가려면 이런 조항이 개정되어야 하나, 군부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 헌법 조항 또한 2008년 오직 수치 여사를 겨냥해 만들어진 것이다.

ⓒAP Photo11월9일(현지 시각) 미얀마 양곤의 NLD 본부 건물 발코니에서 연설하는 아웅산 수치 여사.

총선 압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수치 여사는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통령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NLD의 다른 인물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의미다. 마치 조선시대의 수렴청정과 비슷하다. 이런 아웅산 수치 여사의 태도는 ‘권위주의’와 ‘헌법 위반’이라는 비판을 부를 우려가 크다. 〈미얀마 타임스〉의 한 기자는 “NLD 내부에서도 이 발언을 두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을 대통령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지시한다면 진정한 민주주의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독재의 시작이 아닌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수치 여사는 1988년 8월8일 시작된 이른바 8888 민주화 항쟁의 주역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얀마 독립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으로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망을 받던 인물이다. 아웅산 장군이 정적에 의해 암살되자 수치 여사는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인 학자와 결혼한 뒤에는 1988년 이전까지 아이들 양육에만 힘쓰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러다 위독해진 모친을 간호하러 귀국했을 때 8888 항쟁이 벌어졌다. 수치 여사는 자의 반 타의 반 ‘아웅산의 딸’로 대중 앞에 서게 되었다. 미얀마 최고 독립 영웅의 딸이라는 후광에다 뛰어난 연설 실력으로 국민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수치 여사는 민주화운동 세력을 규합해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결성한 뒤 1990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군부는 이에 승복하지 않고 수치 여사를 가택연금 조치했으며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했다. 그렇게 수치 여사는 반복적인 가택연금을 당하며 꼬박 15년을 집에 갇혀 있어야 했다.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지만 가택연금 상태인 그녀를 대신해 남편과 두 아들이 시상식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1998년에는 생이별했던 남편 마이클 아리스가 암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미얀마 땅을 떠나면 다시는 귀국할 수 없다는 군부의 으름장 때문에 남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로힝야족 난민 문제에는 침묵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이 풀린 것은 2010년이다. 2012년 보궐 선거에서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그녀의 행보는 점점 ‘현실 정치인’으로 변해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힝야족 사건이다. 2012년, 군부는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탄압했다.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로힝야족 쪽으로 돌린 것이다. 미얀마는 인구의 90%가 불교도인데, 로힝야족은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엄청난 박해를 감수해야 했다. 결국 로힝야족은 미얀마 군부의 폭정을 피해 바다를 표류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수치 여사는 명확한 견해를 밝히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NLD 내부에서조차 ‘수치가 군부와 타협한 것 아니냐’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Reuters11월9일(현지 시각) 미얀마 양곤의 NLD 본부 밖에서 야당 지지자들이 비를 맞으면서도 선거 결과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오랜 가택연금과 불우한 가족사 때문에 군부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을 수도 있다. 미얀마 군부는 비록 이번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다. 상·하원 의석의 25%를 지명할 수 있고, 내무부와 국방부 등 핵심 부처의 장관 임면권을 쥐고 있다. 이 상황에서 수치 여사가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에 오르고 싶다면 전체 의석 가운데 75%를 확보해야 한다. 군부의 협력 없이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그래서 이번 압승에도 불구하고 수치 여사는 당분간 군부와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갈 전망이다(미얀마 정계는 ‘적과의 동침’ 중? 기사 참조). 미얀마의 칼럼니스트 우시투 아웅민 씨는 올해 8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수치 여사의 독선적인 정치 스타일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수치는 자신에게 필요한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다. 더욱이 수치는 전략적 사고가 부족해 똑똑한 정치인 축에는 들지 못한다.”

NLD 내부에서는 수치 여사의 독선적 기질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그녀가 직접 “집권당의 지도자로서 내리는 결정들을 막으려 들지 마라” 하고 선언했는데, 일부 당원들은 당내 독재를 실현하기 위한 압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NLD 내부의 한 인사는 “측근 사이에서도 불만이 새어나오고 있다. 모든 의사 결정을 단독으로 처리해버리는 그녀의 태도 때문이다. 더욱이 NLD가 이번 선거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당내 파워게임도 진행 중이다. 이제 수치의 정적은 군부가 아니라 내부의 측근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검증되지 않은 국정 수행 능력

수치 여사의 국정 수행 능력도 미지수다. 미얀마 민주화와 함께 국민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경제성장이다. 그러나 NLD는 특별한 경제 노선을 밝힌 적이 없다. 당내에 존재감 있는 경제 전문가도 없다. 국민이 가장 관심 있는 분야에 수치 여사와 NLD가 문외한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얀마의 한 경제전문가는 그녀의 경제 현실 감각을 걱정하기도 했다. “수치 여사는 평민 출신이 아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 유학과 외국 생활을 하며 중년까지 보낸 상류층이다. 그런 그녀가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는 양곤 시내의 대다수 빈민들 생활을 알겠는가.”

게다가 그녀가 부패한 미얀마 경찰과 행정 조직을 장악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뉴욕 타임스〉는 “군부조차 제어하기 힘들었던 조직들을 집권 경험이 없는 수치와 NLD가 제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2013년 한국을 방문한 수치 여사는 아침마다 싱싱한 장미 열 송이를 주문했고, 그 장미로 뒷머리를 단정하게 장식했다. 수치 여사의 트레이드마크다. 일흔이 넘은 이 ‘민주화의 꽃’은 이제 실전에 들어섰다. 전 세계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것이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