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시민발전소부안군 등룡마을(위)은 2005년부터 에너지 자립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전라북도 부안을 기억하는가?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핵 폐기장)’ 논란, 새만금 간척사업 등 정치적 부침이 유난히 심했던 지역이다. 상처가 지나간 자리에는 새살이 돋듯, 최근 몇 년 동안 부안 주민은 새 출발에 힘을 쏟았다. 핵 폐기장 반대 투쟁을 벌이며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학습’한 부안 주민은 재생가능 에너지에 눈을 돌렸다. 지역 지도자가 앞장서서 종자돈을 마련하고, 주민이 직접 출자해 전국 최초로 주민에 의한 시민발전소를 세웠다.

시민발전소의 첫 프로젝트는 부안군 등룡마을(총 30가구)을 에너지 자립 마을로 만드는 것. 부안시민발전과 생명평화마중물 그리고 주민은 2015년까지 에너지 사용량을 30% 이상 줄이고, 사용하는 에너지의 50%를 태양광·풍력·바이오매스에서 얻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집집마다 백열등을 고효율 전구로 바꾸고, 멀티 탭을 이용해 대기 전력을 아끼기 시작했다. 재생가능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2005년 ‘햇빛발전소 1호기’ 설립을 시작으로 총 30kW 규모의 부안햇빛발전소를 7호기까지 세웠다.

마을 주민이 사용하는 가정용 전기의 60%에 해당하는 양을 태양광에서 얻게 됐다. 2006년부터는 태양열 온수기와 35RT(지열 냉난방 단위: 1RT로 8~10평을 냉난방할 수 있다) 규모의 지열 냉난방 시스템을 설치해 교육관과 가정집 등 건물 네 채 약 1000㎡(300평)에 공급하고 있다. 2007년에는 ‘태양광 지붕 10만호 주택 보급사업’에 참여해 3kW를 설치했다. 등룡마을뿐 아니라 부안 원불교당, 부안성당, 변산공동체도 햇빛발전소를 설치했다.
 

ⓒ시사IN 한향란태양광 풍력발전기를 설치해 에너지를 자체 생산한다.

마을 에너지 60%를 태양광에서 얻어

부안시민발전소는 올 6월부터 변산공동체와 함께 마을에서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재생가능 에너지 실험도 시도 중이다. 최대 1kW의 풍력발전기와 500W의 자전거 발전기를 제작해 태양열 조리기를 만들고, ‘햇빛과 바람의 학교-재생가능 에너지 체험학교’를 운영한다. 나무를 직접 깎아 날개를 만들고, 코일과 자석을 감고 붙여 소형 풍력발전기를 만들었다. 제작한 풍력발전기와 자전거 발전기는 등룡마을에 있는 생태학교 ‘시선’에 설치해 태양열 조리기 제작 등 아이들을 위한 에너지 교육에 활용한다. 부안시민발전소는 부안 지역부터 참가자를 모아 ‘소형 풍력발전기, 자전거 발전기 제작 워크숍’을 실시할 예정이다.

부안시민발전소 이현민 소장은 “한국은 싼 전기요금 탓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너지 과소비 국가가 되고 말았다. 에너지 과소비 체제를 바꾸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지름길은 에너지를 지역별로 자급자족하는 것이다. 부안 주민은 재생 에너지 생산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꼈다”라고 말했다.

부안이 에너지 자립 마을로 진화하는 중이라면, 건국대는 에너지 자립 대학의 꿈을 꾼다. 건국대 전기공학과 안형근 교수(전기공학과)가 밑그림을 그려 이미 의미 있는 성과를 얻었다. 전기전자 재료 및 센서 연구를 하는 안 교수는 2006년 4월부터 생명환경과학대학 옥상과 이천 스포츠과학센터 등 두 곳에 태양광발전 시스템을 설치해 운영한다. 2년 동안 이곳에서 생산한 전기를 돈으로 따지면 약 1억7000만원이다. 건국대 서울 캠퍼스에서 한 달 동안 사용하는 전기량과 맞먹는다. 안 교수는 연구실 선풍기, 라디오, 조명 따위에 쓰는 에너지도 태양광과 소형 풍력기를 이용해 얻는다. 안 교수는 “현재 생산하는 에너지 양이 부족해 냉장고와 에어컨에는 아직 공급하지 못한다. 그러나 캠퍼스 전체 옥상과 창문에 태양광과 풍력을 설치하면 건국대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자급자족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백승기고유가의 파고를 넘는 지름길은 황성순씨(위)처럼 자가발전을 하거나 풍력같은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이다.
‘에너지 절약 전도사’로 불리는 황성순씨(30)도 일찍부터 에너지 자급자족에 눈을 뜬 이다. 그는 자전거 발전기를 직접 제작해 사용한다. 운동 삼아 자전거 발전기를 돌려 얻어낸 전기로 형광등을 켜고, 믹서기를 돌려 주스도 만든다. 옥상에 태양전지판을 설치해 얻어낸 전기로는 라디오를 듣고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자전거 발전기로 생산한 에너지나 태양광 에너지를 모아 배터리에 저장했다 가전제품을 사용할 때 이용하는 것이다.

황성순씨는 자신이 만든 이런 장치들을 들고 전국을 누비며 에너지 절약 교육을 한다. 황씨는 “이런 정도로 생산하는 전기가 가정의 전기요금을 실질적으로 크게 절약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기가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지고 얼마나 쉽게 소모될 수 있는지 체감할 수 있으니까 에너지를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는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기업 가운데서도 에너지 자급자족에 눈을 돌린 곳이 있다. 포스코는 제철 공정 중에 발생하는 가스를 전량 회수해 발전용 연료로 활용한다. 이로 인해 총 전력 소요량의 78%인 170만 kW를 자가발전으로 충당한다. 지난 6월에는 태양광발전 설비를 광양제철소 공장 지붕에 설치해 상업용 발전을 시작했다. 일반주택 500가구 정도가 연간 사용 가능한 2500MWh를 생산할 예정이다.

정부의 태양광 보급 지원 사업 덕에 ‘개인 발전소’를 설립해 한국전력에 전기를 팔거나 자가 생산해 사용하는 이들이 꽤 늘었다. 에너지관리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소’를 설립해 한국전력에 전기를 파는 사업자는 현재 450명, 자가용 태양광을 설치한 가구는 1만 호가량 된다. 정부는 자가용으로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는 가구에는 설치비의 50%를 지원해준다. 상업용으로 발전소를 설치하는 이는 설비비 지원을 못 받는 대신 한전에 전기를 팔아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한전에서 구입하는 전기 가격은 태양광 전기 생산단가보다 싸지만 그 차액만큼 정부가 보조해주는 발전차액지원제도가 있어 발전사업자 처지에서는 손해 보지 않는다.

유럽에서도 에너지 자급자족 유행

신재생에너지센터 관계자는 “발전차액지원제도 덕에 태양광발전 사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4억원가량 투자해 태양광발전 설비 50kW를 설치하면 월 300만~4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태양광 설비 수명이 15년가량 되기 때문에 4억원을 투자해 15년 동안 꼬박꼬박 월급받는 효과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고유가의 파고를 넘는 지름길은 자가발전을 하거나 풍력(위)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이다.

환경단체나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처럼 재생가능 에너지 생산에 뛰어드는 ‘개미 발전소’가 늘어야 고유가의 위협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미 발전소’가 늘면 에너지 과소비도 줄일 수 있고, 화석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낭비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발전소가 화석연료 에너지를 전력으로 전환하는 비율은 총량의 평균 30%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대기나 냉각수에 열을 빼앗겨 발전소에서 곧바로 사라진다. 그나마 생산된 전력량의 7%는 다시 송전선에서 사라진다. 화석연료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비효율적이다.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본부 양이원영 부장은 “개미 발전소가 늘면 궁극에는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높일 수 있어 화석연료에 기댄 국가 에너지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바꾸는 동력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화석연료의 종말’에 일찍부터 대비해온 독일이나 덴마크 같은 유럽 국가에서는 대형 전력회사 독점 체제에 맞서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개미 발전소’ 시스템이 꾸준히 확산되어왔다. 예컨대 독일 슈바르츠발트의 프라이암트 마을은 1990년대 후반부터 풍력발전기와 태양열발전기, 바이오가스 발효기 등을 이용해 마을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자급자족해 왔다.

지난해 이 마을에서 생산된 전기는 소비량 1200만㎾h를 충당하고도 230만㎾h가 남아 잉여 전력을 전력회사에 되팔았다. 자가발전을 잘 활용해온 나라로 꼽히는 덴마크는 세계에서 에너지 효율이 가장 높다. 자원이 빈약한 덴마크는 1980년대에 열병합 자가발전을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대형 전력회사가 만든 전력이 전국 생산량의 3분의 1도 안 된다. 덴마크가 세계에서 GDP 대비 에너지를 가장 적게 쓰는 나라가 된 배경이다.

에너지 자립 막는 정부 정책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런 트렌드와는 정반대로 가려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부는 2011년까지만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운영한 뒤 2012년부터는 한전 자회사를 중심으로 의무할당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발전차액지원제도가 사라지면 경제성이 떨어지는 재생가능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 사람은 거의 없다. 양이원영 부장은 “정부는 발전차액지원제도로 나가는 돈이 아까워 개미군단을 육성하기보다는 대형 전력회사가 의무적으로 재생에너지에 투자하게끔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나 정책으로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릴 수 없다. 지난해 탄광 보호 차원에서 책정된 정책보조금만도 1조원 가까이 되는데, 재생가능 에너지에는 그 돈의 10분의 1도 안 쓰려는 꼴이다”라고 비판했다. 독일이 재생가능 에너지 분야에서 선두를 달릴 수 있게 된 것도 발전차액지원제도의 덕이 크다는 평가다. 거꾸로 가는 한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이제 막 시작한 개미 발전소의 싹을 밟아버리고, 에너지 독립의 꿈도 날려버릴 공산이 크다.

기자명 안은주 기자 다른기사 보기 anj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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