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영덕, 원전 관련 공청회 단 한 번도 없었다


원전 부지에서 갈등이 반복되는 까닭

 

 

11월4일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시장에 오일장이 섰다. 장을 보려는 사람들이 오가는 강변길을 따라 원자력발전소 유치 찬성과 반대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이어졌다. “핵발전소로 지역 경제가 살아나면 울진은 벌써 시가 되었어야 한다!” “찬성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반대가 웬 말이냐” 따위다. “영덕 군민의 힘, 주민투표로 보여줍시다”라는 현수막을 단 트럭과 “불법 주민투표 참여하면 안 됩니다”라는 현수막을 단 트럭이 번갈아 읍내를 오갔다. 원자력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일주일 앞둔 영덕의 모습이다.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이름도 영덕 곳곳에서 보인다. 영덕군청 앞에는 한수원 스티커가 붙은 쌀가마니 10여 포대가 쌓여 있었다. 한수원이 이장들을 통해 동네 사람들에게 배포한 쌀가마니다. 영덕군 지품면 삼화1리 박형식 이장은 “추석 전쯤 한수원에서 동네 저소득층과 독거노인들을 지원하라며 쌀을 보내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삼화1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를 거부했다. 회유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반납된 쌀가마니가 군청 앞에 놓였다. 박 이장은 “(한수원이) 그전에는 인사 한번 안 오다가 주민투표 다가오니까 수박이며 복숭아, 쌀을 줬다. 원전 유치에 찬성하라는 뜻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백운해 영덕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 추진위원회 위원장은 ‘한수원의 투표 방해’라고 주장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단순한 지역사회 공헌 활동인데 타이밍상 오해를 산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한수원이 영덕 지역에 ‘사회공헌 사업’으로 지원한 쌀과 기부금은 총 4억2000만원이다.

ⓒ시사IN 조남진11월4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중심가에서 원전 백지화를 요구하는 주민들이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11월11~12일 이틀간 주민 찬반투표가 실시된다.

원전 관련 공청회, 단 한 번도 없었다

영덕은 2012년 9월14일 신규 원자력발전소 4기를 건설하기 위한 예정 구역으로 지정 고시되었다. 영덕에서 원자력발전 시설이 논란이 된 것은 네 번째다. 1998년과 2003년 두 차례 주민들의 반대로 원자력발전소 유치가 무산된 적이 있다. 2005년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이하 방폐장) 건립이 추진되었다. 당시 주민투표 결과 찬성 여론이 85%에 달했지만, 방폐장 건립은 경주로 결정되었다.

그 후 5년이 지난 2010년, 영덕은 다시 한번 원자력발전소 유치를 신청했다. 영덕군은 유치 신청 당시 원전이 들어설 3개 리(석리·매정리·노물리) 주민 399명의 찬성 서명을 받았다. 399명은 영덕 군민의 약 1%다. 군민 전체의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는 없었다(46쪽 상자 기사 참조). 2010년부터 2015년 11월 현재까지 영덕에서 원전 관련 공청회는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부족한 주민 의견 수렴이 갈등의 빌미가 됐다. 특히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반대 여론이 늘었다. 강구항 영덕대게거리에서 횟집을 하는 이 아무개씨(46)는 “여기는 관광지라 원전이 한번 들어서면 끝이다”라고 말했다. 영덕읍 주민 임정대씨(69)도 “그렇게 좋으면 (한수원) 자기네들 집에 짓지 뭐하러 영덕에 짓나? (원전이) 터져버리면 어떻게 되나”라고 말했다. 지품면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김 아무개씨(60)는 “임시로 지원금 받아봤자 뭐하겠나? 평생을 살 곳인데…”라며 반대 뜻을 밝혔다.

ⓒ시사IN 조남진영덕군청 입구에 원전 반대 단체가 꾸린 농성장. 영덕군의회 의장도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원전 부지로 예정된 석리 주민들도 처음에는 찬성 여론이 높았지만, 유치 신청 이후 5년 동안 불안과 불만이 쌓여갔다. 처음 약속했던 보상 규모가 달라져서다. 석리 주민 김태열씨(80)는 “처음에 영덕군에서 와서 (주민들) 이주를 해주는데 대지가 100평(약 330㎡)인 단독주택을 지어준다고 했다. 그런데 갈수록 말이 바뀌고 이제는 해준다, 안 해준다 말조차 없다”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0월20일 ‘영덕군 발전을 위한 10대 사업 제안’을 발표했다. 원전 온배수열을 사용한 첨단 열복합단지 조성, 농수산물 판로 확보, 원자력연수원 건립 등이 포함됐지만 구체적인 보상 규모나 이주 대책은 없었다. 한수원 관계자는 “정부가 영덕군과 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해나갈 계획인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약속하는 원자력발전소 유치를 통한 경제발전이 허상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영덕군의회 이강석 의장은 “인근 울진만 보더라도 원자력발전소가 10기나 확정됐지만 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지역에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 관광·농업 위주에서 원전 건설 인력을 대상으로 한 상업 위주로 경제 특성이 달라질 뿐 추가로 발전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소 유치 반대 여론이 확산되자, 영덕군의회는 지난 1월부터 넉 달 동안 원자력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원자력특별위원회가 4월 군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원자력발전소 유치 찬성은 35.7%, 반대는 58.8%였다. 군민 전체의 의견을 묻는 주민투표 실시에 찬성한 응답자는 65.7%였다. 결국 지난 6월8일, 영덕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다시 한번 제대로 ‘주민의 뜻’을 물어보자는 취지다.

정부는 영덕의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에 법적 효력이 없다는 태도다. 주민투표법 제7조 ‘국가의 권한 또는 사무에 속하는 사항은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들이댄다. 행정자치부는 이를 근거로 10월22일 영덕군에 공문을 보내 “민간단체가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의견 수렴 행위에 시설·인력·자금 등을 지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법률 용어인 ‘주민투표’를 사용하지 않도록 적극 안내해주기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투표장에 나가는 자체가 원전 반대 의견을 드러낸다는 점을 우려하는 반응이다.

‘대의 민주주의’니까 주민투표 필요 없다?

이희진 영덕군수는 정부 방침에 발을 맞췄다. 그는 10월30일 성명을 발표해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한 주민투표에 동참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원자력발전소 찬성파인 권태한 영덕발전위원회 위원장 또한 “우리나라는 대의민주주의다. 군민이 뽑은 영덕군수와 영덕군의회의 의견이 반영됐으면 충분하다”라며 거들었다. 하지만 이강석 영덕군의회 의장은 이희진 영덕군수의 주민투표 동참을 호소하며 10월21일부터 군청 앞 농성장에서 단식 중이다.

주민투표에 대한 정부 법 해석의 반박도 나왔다. 11월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는 기자회견을 열어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생존과 안전에 직결된 중대한 사안으로, 지방자치법에 의한 주민투표 대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정일 민변 변호사는 “설사 법적 효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민간 주도의 주민투표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닌데, 이희진 영덕군수가 ‘주민투표는 불법’이라고 주장해서 주민들이 불안해한다”라고 말했다. 해바라기 대표 김영희 변호사는 “사실을 왜곡해 주민들을 협박한 이 군수는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영덕군이 행정적 지원을 거부했기에 주민투표 준비도 쉽지 않았다. 김억남 추진위원회 총무국장은 “선거인 명부가 없어서 반대 서명으로 대신했다. 선거일에는 신분증만 있으면 선거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실무 인력이 부족해 환경운동연합이 연대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김 총무국장은 “행정절차에 따라 주민투표 청구 대표자 신청도 했지만 반려당했다. 전체 군민의 의견을 수렴하라는 요청을 어느 하나 받아주지 않더니, 주민투표를 앞두고 불법이라며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

추진위원회는 투표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영덕천지원전추진운영대책위원회 등 원전 찬성 단체에도 공문을 보내 참관 및 설명회 참여를 요청했으나 답변이 오지 않았다. 주민투표는 11월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 간 20개 투표소에서 실시될 예정이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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