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분양과 청약을 구분 못하던 기자가 여기 있다. 사건·사고 현장만 쫓아다니다 덜컥 건설부동산부에 둥지를 틀었다. 밥벌이하려면 뭔가 써야 했다. ‘꺼리’를 찾아 나선 길에서 ‘청약통장을 구한다’는 광고를 봤다. 서울 지하철 답십리역 인근 전봇대마다 전단이 붙어 있었다. 부동산 백치가 보기에도 합법 같지 않았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청약통장 삽니까? 그 주택청약통장 말이죠? 얼마쯤 받을 수 있나요?”

“통장 이름이 뭡니까? 개설연도부터 말해보세요.”

다급한 나와 달리 수화기 건너편 사내는 느긋했다. 내겐 1순위 청약통장이 있다. 장가도 가고 싶고, 이게 있어야 집(아파트)을 살 수 있다고 해서 일찌감치 만들어놓았다.

“10년 됐고, 본인 명의로 된 집 없고, 애가 한 명? 오케이. 얼마까지 되는지 알아보고 바로 전화드리리다.”

청약통장은 2007년 ㄱ은행에서 만들었다. 10년은 안 됐지만, 그사이 아이가 생겼고 무주택자로 살았다. 사내에게 한 말이 다 거짓은 아니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만납시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설명해드리지요.”

ⓒ시사IN 장일호서울의 한 주택가 전봇대에 붙어 있는 청약통장 매매 광고.

사내(이하 ㄱ씨)는 상상했던 모습과 달리 말끔했다. 잠깐 인사를 나누는 중에도 ㄱ씨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저처럼 통장 팔겠다는 사람이 많은가 봐요?”

“통장 만들었는데 필요 없는 사람들 있어요. 그냥 연립 살겠다는 그런 분들이 많이 찾아요.”

부동산 업자들은 기본 7~8개, 많게는 수십 개씩 청약통장을 사 모은다. 사들인 통장으로 청약 넣어서 로열층 걸리면 2배 넘게 남는다. 잭팟이 터질 때까지 돌릴 총알을 사들이는 셈이다. ‘로열층 걸리면 2배’라니. 그 대목에서 눈빛이 흔들렸다.

눈치 챈 ㄱ씨는 웃으며 “모르고 덤볐다가 1, 2층 걸리면 나가리예요. 아무도 안 쳐다봐 그거”라며 통장을 넘기고 현찰을 쥐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임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내 통장(120회 납입·무주택자·자녀 1명)으로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은 얼마일까.

“3000만원.” ㄱ씨가 잘라 말했다.

이야, 3000만원씩이나. 적지 않은 금액이다. ㄱ씨는 “3000 주고 나는 100, 내 밑에는 50 먹는다. 이 정도면 잘 챙겨주는 거다”라고 말했다. 통장을 건네면 거래가 시작된다. 먼저 약속한 현금이 ‘권리금’ 명목으로 입금된다. 통장에 부었던 돈은 통장 주인 몫이다. 넣어둔 돈을 챙기고 ‘청약할 수 있는 권리’를 웃돈을 받고 파는 셈이다. 계약은 통장 주인이 진행한다. 통장을 사들인 업자는 때가 되면 계약금과 중도금을 보내고 통장 주인은 그 돈으로 아파트 계약을 한다. 전매제한 기간이 끝나면 바로 통장 매입 업자 앞으로 소유권을 이전한다. 이때 발생하는 등기비와 각종 세금도 모두 통장 매입 업자가 부담한다.

생활 정보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ㄱ씨는 “계약하러 오갈 때 드는 기름값, 밥값까지 챙겨준다. 따로 신경 쓸 건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ㄱ씨는 오늘 내로 3000만원을 쏴줄 수 있다며 통장을 달라고 재촉했다.

“이렇게 통장 파는 거, 불법이라던데, 걸리면 어쩌죠?”

기다렸다는 듯 ㄱ씨가 대답했다.

“자, 아파트 신청을 해요. 인터넷으로 하잖아. 통장 주면 현금으로 갖고 와. 수표도 다 세탁해. 그걸로 잔금 내. 깔끔하지. 다 현금이고. 자본주의 세상에서 누가 뭐라고 해. 본인이 술 먹고 까발리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내가 통장을 내놓지 않고 1시간가량 머뭇거리자 ㄱ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보고 전화해.” ㄱ씨의 말이 짧아졌다. “3000, 큰돈이야. 장이 섰을 때 팔아야지, 언제 꺼질지 몰라. 꼭 전화해.”

적발 건수와 처벌 실적이 형편없이 낮은 이유

ㄱ씨는 어디에나 있다. 생활 정보지와 인터넷에도 통장 살 테니 넘기라는 이가 넘쳐났다. 서울 구로구 차이나타운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도 그중 하나였다. 생활 정보지에 당당히 이름을 걸고 청약통장을 구하고 있었다.

대림역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10분쯤 걸어가니 허름한 부동산 사무실이 보였다. ‘청약통장 매매’ 문구가 간판에 걸려 있었다. 청약통장 팔겠다고 하니 나이 지긋한 주인장이 살갑게 맞았다. 거래 과정은 이전 ㄱ씨의 설명과 같았다. 하지만 감정가는 달랐다. 2000만원밖에 쳐줄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이름 걸고 하는 중개업소인 만큼 믿고 거래할 수 있다고 했다. 단속 걱정을 하자 주인장은 “내가 요즘 일주일에 3개씩 사고팔아. 아무도 단속 안 해. 지금 정부가 경기를 살리려고 하잖아. 단속을 왜 하겠어?”라며 되레 나의 무지를 꾸짖었다.

직접 통장을 사고팔기 부담스러운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판매책을 알선해주기도 한다. 연락처를 받아 브로커를 연결해주거나, 개인적으로 아는 브로커의 연락처를 알려준다. 청약통장 매매나 불법 전매와 같은 시장 교란 행위는 ‘분양 장사’가 잘되고 ‘집값이 급등’하는 지역에서 성행한다. 1년 새 집값이 3배 올랐다는 서울 마곡지구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2차 분양가가 생각보다 높게 나와 ‘꾼’들이 빠져나가 청약통장 시세도 떨어졌다. 분양가 공개 전에는 당첨권 통장이 1억원에 거래됐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2005년 판교 신도시 분양 예정지에서 성남세무서 직원들이 청약통장 불법거래 현장 단속을 하고 있다.

청약통장 거래는 사고판 당사자는 물론 거래 알선과 광고행위자 모두 처벌 대상으로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받는다. 불법 거래 청약통장으로 당첨됐을 땐 적발 시 해당 주택 공급 계약이 취소되며 최대 10년 동안 청약 자격이 제한된다. 게다가 업자가 청약통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잠적하면 꼼짝없이 뒤집어써야 한다. 거래하다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도리가 없다.

그뿐 아니다. 팔려나간 통장은 아파트를 ‘더’ 비싸게 만든다. 얹어준 돈이 배 아픈 꾼들은 웃돈에 웃돈을 얹어 아파트를 팔아넘긴다. 안 그래도 혼탁한 부동산 시장에 먹물을 끼얹는 셈이다. 통장을 넘기고 받은 돈은 누군가의 등골이다. 통장이 아파트 ‘장사’꾼들에게 넘어가는 순간, 집이 간절한 누군가의 꿈도 날아간다.

정부도 문제를 알고 있다. 하지만 제재나 감시가 쉽지 않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국에서 적발된 불법 거래 사례는 149건에 불과하다. 개인 간 은밀한 거래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광고만 해도 처벌할 수 있다지만 대부분 ‘대포폰’을 이용하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다. 적발 건수와 처벌 실적이 형편없이 낮은 이유이다.

2007년 봄 처음 청약통장을 개설한 날, 빈 통장에 10만원을 붓고 은행을 나서는 길에 짜장면을 사먹었다. 보잘것없는 통장이지만 언젠가는 내 집의 밑천이 되리라 생각했다. 새 아파트 이삿날을 떠올리며 호기롭게 짜장면을 입에 넣었다. 8년이 지났다. 많은 부동산 정책이 쏟아지고, 청약제도도 변했다. 짜장면을 먹으며 자축했던 귀한 밑천은 투기꾼의 일회용 총알 신세로 전락했다. 푼돈에 팔려나간 내 집 마련의 꿈은 꾼들의 호주머니에 쌓여가고 있다.

기자명 반기웅 (머니투데이방송(MTN)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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