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 이후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한 주택시장 활황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리얼투데이(부동산 리서치 업체)에 따르면, 11월에만 전국적으로 11만4474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전달(10월)에 비해 2배 정도로 늘어났다. 지난달 말에 나온 KDI의 〈부동산시장 동향〉(2015년 3분기)은 올해 전국의 아파트 분양 물량이 모두 49만 호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2000~2014년 분양 물량 평균(27만 호)의 2배에 가까운 수치다. 이처럼 주택 공급이 폭증했지만 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KDI 보고서는 지난 3분기의 주택 매매 가격이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4.1% 인상된 것으로 계산했다.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은 일단 성공했다. 주택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가격까지 인상된 것이다. 집값이 조만간 더 떨어질 것이라는 ‘합리적 기대’ 아래 주택 구입을 미루며 전세로 버티던 수많은 무주택자들도 ‘빚내서 집 사자’ 대열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대통령 선거의 주요 이슈 중 하나가 집값이었다. 당시에는, 은행에서 빌려 주택을 산 가구들이 집값 하락으로 부채 상환에 실패하면, 수요의 전반적 하락과 은행의 재무 악화에 따라 온 나라가 불황 및 심지어 금융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부터 집값 올리기에 나섰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를 폐지하고 주택 취득세율도 내렸다. 올해 들어서는 재건축·재개발 기준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각각 완화 및 폐지했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은행에 갚아야 하는 1년 동안의 원금과 이자를 차입자의 소득으로 나눈 수치)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행 대출금을 담보 주택의 가격으로 나눈 비율)을 완화했다. 한마디로 주택 공급자(건설회사·다주택자 등)의 이윤 동기를 강화하는 한편 주택 수요자들에게는 자금을 제공한 것이다.

ⓒ대림산업 제공10월23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 견본주택 앞에 방문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무서운 독을 더 무서운 독으로 제압하는 정책이었다. 국가경제 차원에서 집값 하락이 무서운 현상인 이유는 가계부채라는 폭탄을 터뜨릴 뇌관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빚내서 집 사라’ 정책으로 집값 하락이라는 뇌관의 불을 잠시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가계부채 폭탄의 덩치는 더 키우고 말았다.

11월3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간(2014년 10월~2015년 9월 기준) 은행의 월평균 가계대출 증가액이 6조3000억원에 달했다. 2012년 1월에서 2014년 8월(DTI·LTV 규제 완화) 사이 월평균 증가액은 1조8000억원에 불과했다. 가계대출의 월 단위 증가 속도가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를 주도한 것이 가계대출의 70% 이상으로 추정되는 주택담보대출이다. 지난해 164%로 집계된 가계부채 비율은 이미 주요국(2013년 기준으로 영국 154%, 일본 129%, 미국 114%)보다 높은 수준이었는데 더욱 나빠졌으리라 보인다.

지난 9월6일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실태(2015년 6월 말 기준)를 보면, 유사시 사고를 내기 쉬운 ‘위험 대출’의 비중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 100조원 가운데 집값의 60% 이상을 빌린(LTV 60%) 가구의 대출 규모가 42조5000억원이다. 또한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 상환으로 소득의 절반 이상을 내야 하는(DTI 50%) 대출 규모도 19조7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LTV 60%와 DTI 50%를 동시에 초과해 위험이 중첩되어 있는 대출도 9조7000억원 규모다. 지난 7월 박근혜 정부가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을 내놓은 이유는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에 따른 위험성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 초부터 ‘스트레스 금리’ 제도 실시될 계획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 가운데 내년 초부터 신규 대출에 대해 실시될 계획으로 주목되는 것이 바로 ‘스트레스 금리’ 제도다. 변동금리 대출의 경우, 이후 금리 인상을 가정해서 상환 능력을 따져보고 대출 규모를 조정하겠다는 취지다. 예컨대 연소득 3000만원의 직장인이 ‘현재 4%’의 변동금리로 2억원을 빌리러 은행에 갔다고 가정하자. 그는 매년, 원금 중 1000만원씩과 함께 이자 800만원(2억원의 4%)을 상환하기로 했다. 이 경우, 그의 DTI(연간 상환금인 1800만원÷연 소득 3000만원)는 60%다. 가까스로 대출받을 수 있는 수치다. 그러나 은행 측은 앞으로 이자가 오를 경우에 대비해서, 현재 금리(4%)에 ‘스트레스 금리’ 3%를 합친 7%로 상환 능력을 다시 따져보자고 한다. 금리 7%면, 매년 분할 상환키로 한 원금 1000만원과 이자 1400만원(2억원의 7%)을 합쳐서 그의 연간 원금 및 이자 상환금은 모두 2400만원에 달하게 된다. 이렇게 계산한 ‘스트레스 DTI’는 80%(2400만원÷3000만원)까지 치솟는다. 결국 이 직장인은 대출 규모를 줄여야 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스트레스 금리’와 ‘스트레스 DTI’ 등에 대한 세부 규정을 연말까지 결정해서 발표할 계획이다.

한편 금융 당국은 지난달부터 은행들의 ‘아파트 집단대출’에 대해서도 부실 대출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은 발주에서 입주까지 큰돈과 오랜 기간이 필요한 사업이다. 원칙적으로 건설사 측은 공사에 필요한 자금 중 상당 부분을 입주 예정자들로부터 ‘중도금’ 형식으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입주 예정자들은 새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현재 소유한 주택을 팔거나 전세금을 찾기 전까지는 목돈을 마련할 수 없다. 그래서 건설사 측이 분양 계약자들을 대신해서 은행으로부터 ‘입주자 집단’의 중도금을 대출받는(집단대출) 것이 보통이다. 분양 계약자들은 입주할 때 비로소 중도금을 낸다. 현재 규모가 100조원에 달하는 집단대출에서는, 은행이 계약자들의 신용을 각각 심사하지 않기 때문에 부실 대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금융 당국의 규제로, 은행들이 일부 사업장에 집단대출을 꺼리거나 금리를 올리면, 전체 주택 분양시장이 받을 타격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금융 당국이 뒤늦게나마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럽고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시장 상황은 만만치 않다. 올해 분양 물량이 과거 10년치 평균(25만~27만 호)의 2배에 달할 정도로, 주택시장이 공급과잉 상태다. 그만큼 집값의 하방 압력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내년엔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국내 금리까지 오를 가능성이 큰데, 가계부채 규모는 부풀대로 부풀어오른 상태다. 더욱이 중국 등 이머징마켓의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고 있어서 이로 인한 국내 가계의 소득 불안정성 역시 심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8월 이후 열심히 ‘집값 올리기’에 나섰다가 고작 17개월 만에 ‘건설사와 수요자 동시 압박’으로 조변석개한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이 어떤 결말에 이를지 조심스럽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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