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국정교과서를 위한 무리수, ‘국가의 거짓말’


역사학자들이 안 쓰니 군인이 교과서 쓰나


교과서 집필진 비공개가 올바른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확정됐다. 20일간의 행정예고 기간이 끝나자마자, 교육부는 확정고시를 강행하며 재빠르게 국정교과서 만들기에 착수했다. 행정예고 기간 교육부에 접수된 32만1075명(전체 67.7%)의 반대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확정고시를 인정할 수 없다며 불복종 운동에 나섰다. 검정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돌리는 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중심으로 3일을 기록했다.

11월2일 15:00 이틀 앞당겨진 확정고시

20일 동안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교육부는 11월2일 자정까지 국민 의견을 받아야 했다. 확정고시는 11월5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교육부는 2일 오후 3시, 바로 다음 날 확정고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야당은 행정절차법 위반이라며 반발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오후 2시에 교육부에 반대 서명 40만여 건과 국정화 반대 의견서 1만8000여 건을 전달한 참이었다. 의견 접수는 애초부터 받을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같은 날, 교육부 담당팀 사무실의 의견접수용 팩스가 꺼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전 국민 의견을 청취한다며 그나마 딱 한 대 마련해놓은 팩스조차 제 기능을 안 한 셈이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늦게 들어온 의견은 새벽까지 직원들이 확인했다”라고 해명했다. 교육부가 공개한 ‘행정예고 의견 수합 현황’에 따르면 인원 수 기준으로 국정교과서 반대는 32만1075명, 찬성은 15만2805명으로 집계됐다.

ⓒ시사IN 이명익11월3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시민 300여 명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집회를 열었다.

11월2일 21:30 정부서울청사 앞

대학생과 시민들이 다음 날 확정고시 기자회견이 있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때 침묵시위 ‘가만히 있으라’를 제안했던 용혜인씨(25)가 SNS에 올린 글이 사람들을 불러냈다. “모여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에 남깁시다. 역사를 통제하겠다는 시도를 막아냅시다.” 그렇게 모인 대학생과 시민 100여 명이 밤을 지새웠다. 새벽녘 추위에 대비해 시민들은 온몸에 담요를 두르고, 종이 상자를 깔고 앉았다.

11월3일 11:00 “99.9%가 편향 교과서 선택”

정부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했다. 기자회견에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황우여 부총리와 함께 나와 담화문을 발표했다. 황 총리는 파워포인트까지 준비해왔다. 그는 15분 동안 국정화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핵심은 색깔론이었다. 황 총리는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고등학교가 전국에 세 곳밖에 되지 않는다며 “고등학교의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 역사 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미안합니다’라는 문구를 들이댔다.

뒤이어 황우여 부총리는 국정교과서 제작 과정을 인터넷으로 공개하는 등 투명하게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친일·독재 미화 같은 역사 왜곡 우려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고려할 때 그런 교과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성숙했다면 좌편향 교과서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역질문에는 다른 말을 했다. “역사 교육은 국가를 유지하는 혼이고 골격이기 때문에 (중략) 정상화는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시사IN 신선영왼쪽부터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11월3일 18:00 학생의 날에 국정화 반대 나선 청소년들

‘학생의 날’이기도 한 이날 청소년들도 나섰다. 바뀐 교과서로 수업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다. 국정화반대청소년행동 소속 학생 10여 명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확정고시는 민주주의와 역사 교육을 죽이는 일입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도 새로 써야 하나요?” “무엇이 부끄러워 감추려고 하나요? 국정교과서를 반대합니다”라고 직접 쓴 종이를 들었다.

시민들도 불복종의 촛불을 들었다. 같은 시각 세종로 파이낸스센터 앞에는 시민 300여 명이 모여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집회를 열었다. 한 여중생은 학원에 빠지고 집회에 나왔다며 발언대에 섰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우리 청소년들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합니다.”

11월4일 11:00 주변 만류에 첫 기자회견부터 빠진 국정교과서 대표 집필진

역사교과서 편찬 책임기관으로 지정된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교과서 편찬 기준과 집필진 구성 방식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에는 김정배 국편 위원장(75)과 함께 대표 집필자로 초빙된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76)가 나왔다. 또 다른 대표 집필자인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69)는 참석하지 않았다(최 명예교수는 11월6일 자진사퇴했다). 국정교과서 첫걸음부터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박한남 국편 기획협력실장은 “(최 명예교수를) 집으로 모시러 갔으나, 걱정하는 이들이 참석을 만류해 오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연합뉴스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

대표 집필자는 6명으로 각각 선사시대, 고대, 고려, 조선, 근대, 현대를 맡는다. 국편은 “대표 집필자 6명이 거의 확정됐다”라면서도 신형식·최몽룡 명예교수 외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어느 정도 완료하고 공개했을 때 장애가 없을까를 판단해야 하기에 시기의 적합성은 과정을 보면서 정하겠다”라며 교과서 개발이 끝날 때까지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국편은 근현대사는 정치학자·경제학자·군사학자 등이 참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다음 날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출석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군에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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