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엠넷’의 쇼는 계속된다


3년 만에 돌아온 ‘탑밴드’ 시즌3

 

원더걸스의 유빈이 씨스타의 효린을 앞에 두고 리듬을 탔다. “보라고 여긴 없어 너의 씨스타. 래퍼란 타이틀은 소유 못해. 가사도 못 쓰잖아. JYP에서 잘리고 난 뒤 잘돼서 축하해. 그때 왜 잘렸는지 알아? 알아서 추측해.” 효린도 지지 않고 랩을 받았다. “(가슴을 추켜올리며) 견딜 만해 이런 빅 사이즈. 떴다 하면 가버려 유빈의 삑사리. 네 랩 NO답. 실력 보정해. 길이 안 보이니깐.” 대표적인 두 현직 아이돌의 랩 디스(disrespect·무례) 배틀 현장. 지켜보는 심정이 조마조마하다. 다른 참가자들은 유빈에게서 의외의 면모를 봤다며 관전평을 쏟아냈다. 여자 래퍼들의 경연인 Mnet 〈언프리티 랩스타(언프리티)〉의 한 장면이다. 이 ‘독한 승부’의 승자는 효린. 유빈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날의 영상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다른 출연자 간 ‘디스 배틀’도 마찬가지다. 〈언프리티〉는 금요일 밤 케이블 음악채널 Mnet에서 방영 중이다. 같은 시기에 방송 중인 Mnet의 〈슈퍼스타K 7(슈스케)〉은 항상 편성되던 금요일을 피해 목요일 밤으로 시간대를 옮겼다. 2010년 〈슈퍼스타K 2〉는 평균시청률 최고 18.1%를 기록하며 서바이벌 오디션 붐을 일으켰다. 시즌이 거듭되면서 익숙한 구성과 참가자들의 실력 부침 등으로 위기를 겪기도 했다. 현재 시청률은 〈언프리티〉와 비슷한 수준이다. 〈언프리티〉는 2%대(닐슨코리아). 〈슈스케〉는 Mnet 기준으로 1%대다. 동시 방영되는 tvN과 합하면 3%대다. 최근 종영된 〈헤드라이너〉까지 Mnet에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세 개 공존했다. 〈헤드라이너〉는 힙합, 일렉트로니카, 하우스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다루는 국내외 DJ 11개 팀이 벌이는 ‘디제잉 서바이벌’이다. 프로그램 자체는 호평이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경연 프로그램이 같은 시기에 몰려 관심이 한 군데 집중되기 어려웠다.

 

ⓒ Mnet 제공<슈스케>(사진)의 서바이벌 포맷은 지상파의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 <탑밴드> 등의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쳤다.

경연 형식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음악 전문 채널 Mnet의 트레이드마크다. 기점은 〈슈스케〉였다. 과거에도 경쟁 포맷을 도입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주로 상위권의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었다. 〈슈스케〉는 본격적으로 ‘탈락자’에 집중했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을 통한 흥미 유발, 참가자의 사연을 부각시키는 스토리텔링식 구성, 문자투표를 통한 시청자의 참여, 몰입도가 높은 경쟁구도 등 여러 흥행 요소를 버무려 지상파를 능가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슈스케〉의 서바이벌 포맷은 지상파의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이상 MBC), 〈탑밴드〉(KBS), 〈기적의 오디션〉 〈K팝스타〉(이상 SBS) 등의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쳤다. Mnet도 자체적으로 〈보이스 코리아〉 〈보이스 코리아 키즈〉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추가로 제작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Mnet 〈슈스케〉와 SBS 〈K팝스타〉 정도다. 대신 Mnet은 음악 장르를 세분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작곡가 서바이벌 〈슈퍼히트〉, 우승 상금 5억원의 트로트 서바이벌 〈트로트엑스〉, 밴드 서바이벌 〈MUST 밴드의 시대〉 등이 있었다.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건 힙합 서바이벌 〈쇼미더머니〉였다.

힙합이라는 장르에 초점을 맞춘 〈쇼미더머니〉

〈쇼미더머니〉는 시작 당시 일반적인 음악 오디션과 달리 힙합이라는 하나의 장르에 초점을 맞추었다. 심사위원이 있되, 본선에서는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이 공연 비용을 결정하고 그에 의해 탈락 여부가 결정되었다. 한동철 Mnet 국장은 〈쇼미더머니 4〉 기자간담회 당시 “이 프로그램을 처음 기획할 때 힙합이 좋고 랩을 들으면 신나는데, 대중이 이런 부분을 잘 모른다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좀 알려보자는 게 기획 의도였다”라고 밝혔다. 로꼬, 지조, 매드클라운, 아웃사이더, 스윙스, 소울다이브 등의 래퍼가 힙합에 생소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유명 가수들의 피처링까지 더해진 〈쇼미더머니〉의 경연 곡은 음원 사이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한국문화산업협회 학술지 〈문화산업연구〉 보고서는 “그동안 일부 주류 뮤지션을 제외하고는 마니아 성격이 강해 폐쇄적 장으로 여겨졌던 힙합이 10대부터 시작하는 주요 음악 소비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은 공헌으로 볼 수 있다”라고 정리했다(‘〈쇼미더머니 시즌3〉를 통해 살펴본 한국 힙합의 진정성’).

 

ⓒ Mnet 제공<언프리티 랩스타>(위)에는 걸그룹 래퍼가 대거 참여해 ‘랩 디스 배틀’을 벌여 화제를 모았다.

좋은 취지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만 이어지는 건 아니다. 장르의 확산이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장르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부른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쇼미더머니〉는 논란을 먹고 자랐다. 남성 래퍼들의 여성 혐오 가사가 대표적이다. 아이돌과 비(非)아이돌의 대결구도, 실력보다는 육탄전으로 마이크를 차지해야 하는 생존 방식 등 선정적인 대결 환경이 구설에 올랐다. 제작진 역시 화제성만 강조한다는 시선에 대해 ‘그런 부분이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김봉현 음악평론가는 “(제작진은) 힙합신(Scene)의 파이를 키우거나 알려지지 않은 래퍼를 알렸다고 하는데, 출전한 래퍼 개개인이 수혜를 얻은 것과 힙합신의 그것은 별개일 수 있다. 이상적인 얘기일 수도 있지만 힙합이 로컬에서 자연스럽게 안착되고 음악문화가 라이프스타일로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대중화되어야 하는데, 주류에서 단지 ‘핫하다’는 이유로 막 내보내다 몇 년 하고 말아버리면 대중은 유행이 지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라고 꼬집었다.

프로그램에서 자주 도입하는 래퍼 간 디스전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 상대를 면전에서 깎아내리는 방식은 흥행에 도움은 되지만 인신공격에 가까운 내용으로 힙합에 대한 이미지 자체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강일권 음악평론가는 디스가 힙합의 전부인 양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힙합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주입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동철 Mnet 국장은 “디스는 힙합 문화의 한 부분이고 랩을 하다 비속어나 은어를 사용할 수도 있고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최근 방영 중인 〈언프리티〉는 걸그룹 래퍼가 대거 참여해 화제를 낳았다.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은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든다. 각 트랙의 프로듀서가 제시하는 미션을 통해 트랙의 주인공이 가려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영구 탈락자가 발생한다. 〈쇼미더머니〉의 스핀오프(파생된 프로그램) 격이었던 지난 시즌, 출연진의 직설적인 화법과 대결구도로 의외의 흥행을 낳았고 Mnet은 서둘러 새로운 시즌을 기획했다. 매 회 화제를 연출하고 있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지난 시즌 방송을 본 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여자 힙합계의 툴 자체가 빈약한 상태에서 억지로 참가자를 찾다 보니 디스에 집중하거나 랩 실력보다는 외모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보였다”라고 혹평했다.  

〈헤드라이너〉는 Mnet이 진작부터 예고한 대로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이대화 음악평론가는 “제작진이 대담하게 보여준 것 같다. 이쪽이 요즘 핫한 분야라고는 해도 누가 하고 있는지 잘 몰랐는데 그런 부분을 알리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아쉬운 건 출연 DJ에 대한 섭외가 늘거나 인지도가 높아진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예상보다 반향이 적었다”라고 말했다. 힙합이나 EDM 등 최근 Mnet이 주목하는 장르는 트렌드를 반영한다. 김작가 평론가는 “힙합도 일렉트로닉도 서브컬처 쪽으로는 확고한 시장을 가지고 있다. 록페스티벌보다 잘되는 게 일렉 축제다. 힙합은 아이돌과 가장 맞닿아 있고 일렉트로닉도 댄스클럽에서 많이 소비된다. 둘 다 폭발력에 대한 충분한 가능성은 가지고 있다. 다만 스타일로 소비되어야 하는데 트렌드로 소비되다 보니 프로그램이 지나가면 다소 공허해지거나 장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생길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 Mnet 제공<쇼미더머니>(위)의 본선에서는 관객이 공연 비용을 결정하고 그에 의해 탈락 여부가 결정된다.

장르가 다양해졌지만 ‘서바이벌’ 포맷은 여전

다양한 트렌드의 음악을 보여주는 Mnet은 어떤 장르를 다루건 서바이벌이라는 포맷을 포기하지 않는다. 경쟁이라는 요소가 재미 면에서 유효하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 이전, 정보 전달을 위주로 하는 힙합 프로그램 〈힙합 더 바이브〉가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반향을 일으키진 않았다. 서정민갑 음악평론가는 “지상파에도 순위 프로그램이나 지명도 있는 음악 프로그램이 있지만 국내 시장에서 반향을 일으키는 건 Mnet이다. 제작 노하우도 있고 공중파에서 할 수 없는, 직선적인 편집을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중 광고나 음원 판매 등을 통해 실제 수익을 거두고 있는 건 한두 개 정도일 테고, 해외에 포맷을 판매해 수익을 얻는 전략인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대화 음악평론가는 “Mnet 자체가 서바이벌 포맷으로 성장했다. 식상해질 때까지 계속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최근 〈슈스케 7〉의 음악 수준에 놀랐다. “실력 있는 친구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고 편곡이나 디렉팅을 잘해서 개별 뮤지션의 장점을 잘 살려주는 것 같았다. 첫 회 를 보고 깜짝 놀랐다. 출연진 수준으로는 역대급이다.” 한데, 시청률은 예상보다 저조하다. 자주 구사하는 ‘악마의 편집’이 적다. 개인의 사생활 노출도 줄였다. 오랜 기간 무명의 설움을 겪은 허각, 볼트를 쥐고 노래한 박시환 등 시즌마다 부각됐던 참가자의 사연이 줄었다. 극적인 내러티브나 감동적 스토리 위주로 구성해오던 데서 탈피한 것. 트렌드는 면전에서의 ‘독한 디스’다. Mnet은 EDM 걸그룹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듀스101〉과 가수 및 어린이가 참여하는 서바이벌 쇼 〈위키드〉를 준비 중이다. Mnet의 서바이벌 실험은 계속된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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