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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와 코빈의 인기비결, MMT란 무엇인가?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와 영국 노동당 신임 대표 제러미 코빈은 ‘현대통화이론(MMT) 학파’의 경제정책을 펼치려 한다. 기존 경제학의 ‘교리’를 파괴하는 MMT의 논리와 현실화 가능성을 따져보았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15년 11월 09일 월요일 제4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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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샌더스, “부의 독점은 비도덕적이고 그릇된 일”


샌더스와 코빈의 인기비결, MMT란 무엇인가?

 

제레미 코빈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법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국가인 미국과 영국에서 정치권력에 도전 중인 버니 샌더스(미국 민주당) 경선 후보와 제러미 코빈(영국 노동당)의 정책적 공통점은 대담한 ‘정부 지출 확대’다. 그러나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수입(주로 세금에서 나온다)과 같은 규모로 지출해야 한다(재정균형)’는 것이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에서 일종의 ‘자연법’처럼 합의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당들이 벌이는 예산 협상 주제는 언제나 ‘재정균형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이다. 보수 성향 정당이 ‘당장 정부 지출을 감축하고 세수를 늘려야 한다(긴축)’고 주장하는 반면 진보 성향 정당은 ‘경제가 회복될 때까지 긴축을 연기하자(재정 비둘기파)’라고 주장하는 정도다. 이런 나라들에서 샌더스와 코빈은 ‘재정균형 원칙’을 아예 무시하는 듯한 거대 규모의 정부 지출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다. 매우 이례적인 사태다.

특히 샌더스 진영은, 부자 증세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긴 하지만(세수를 올려 재정균형을 이루겠다는 의미), 내심으로는 ‘재정균형’이라는 ‘교리’ 자체를 믿지 않는 것 같다. 샌더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미국 상원 예산위원회의 민주당 측 자문위원에 임명된 스테파니 켈튼 교수(미주리 대학)는 “재정흑자는 경제 전반에 극히 파괴적이고, 재정균형 역시 위태로운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라고까지 주장한다. ‘경제를 살리려면 재정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아니라 ‘재정적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소리다.

 

  애바 러너 교수(왼쪽)는 현대통화이론 학파의 선조 격이다. 스테파니 켈튼 교수(가운데)와 랜달 레이 교수(오른쪽)는 현대통화이론 학파의 핵심이다.  

애바 러너 교수(왼쪽)는 현대통화이론 학파의 선조 격이다. 스테파니 켈튼 교수(가운데)와 랜달 레이 교수(오른쪽)는 현대통화이론 학파의 핵심이다.

 

MMT 학파는 왜 재정적자를 적극 추진하나

스테파니 켈튼은 같은 학교 랜달 레이 교수, 텍사스 대학 제임스 갤브레이스(<불확실성의 시대> 저자인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아들) 교수 등과 함께 ‘현대통화이론(MMT:Modern Monetary Theory) 학파’로 불린다. MMT 학파에 따르면, 대다수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와 학계를 잠식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은 ‘정부와 경제 간의 관계’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이론이다. 이들의 학문적 선조 격인 애바 러너는 이미 1930~1940년대에 ‘재정은 기능일 뿐(Functional Finance)’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재정정책은 ‘정부 지출=정부 수입’이라는 도그마가 아니라 ‘적절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이뤄지는 가운데 고용을 극대화한다’는 국가 목표에 ‘기능적’으로 적절하게 운용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MMT의 주장은 주류 경제학의 교리에 비춰볼 때 매우 이단적이다. 그들은 어떤 논리적 경로를 따라 이런 파격적 결론에 이르게 됐을까.

<그림 1>은 MMT 학파의 대표 인물인 랜달 레이 교수가 주장하는 주류 경제학의 오류를 도표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 1>을 보면, 민간 부문(가계와 기업)이라는 통에 든 현금이 정부라는 통으로 쏟아지고 있다. 현금이 민간 부문에서 정부로 유입되는 경로는 두 개다. 하나는 세금, 다른 하나는 ‘정부 차입’이다. 정부는 민간 기업이나 은행에 국채(‘돈을 빌린다’는 의미의 증서)를 넘기는 대신 현금을 받는 방법으로 차입한다. 이렇게 정부로 유입된 돈은 다시 민간 부문으로 돌아간다. 하나는, 정부 지출을 통해 민간 기업의 상품을 사들이거나 가계에 복지급여를 지급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 차입금의 원금 및 이자 지급이다.

 

   


 

 

주류 경제학은 민간 부문의 현금이 정부 때문에 바닥나는 경우를 우려한다. 현금이 줄어든 만큼 ‘현금을 빌리는 가격(이자)’은 올라서, 기업들의 사업 의욕을 저하시키고 이에 따라 국민생산(소득) 역시 줄어들 것이다. 정부가 지나치게 많이 징세하거나 차입하면 그렇게 된다. 특히 정부의 차입은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원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세금 징수를 늘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점에서 민간 부문의 현금은 크게 줄어들 것이며, 미래 세대의 부담도 가중될 것이다. 주류 경제학이, 민간에서 정부로 흘러들어 가는 자금 규모의 최소화(재정균형 내지 재정흑자)를 주장하는 이유다. 이른바 작은 정부다.

“정부는 현금 부족으로 파산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MMT는 ‘현금이 민간에서 정부로 흐른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현금은 ‘국가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MMT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다. 실제로 현대 국가에서는 정부만이 현금을 발행하고 순환시킬 수 있다. 이는 결국 ‘정부는 결코 현금 부족으로 인해 파산하지는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물론 가계나 기업은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상태가 유지되면 파산할 수밖에 없다. 현금의 사용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는 현금의 발행자다. 정부 지출에 필요한 현금을 ‘벌어들일’ 필요가 없다. 그냥 찍어내면 그만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펄쩍 뛸 주장이다. 주류 경제학에서 현금은 재화와 서비스를 쉽고 효율적으로 교환하기 위한 매개물이다.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그 가치가 오르내리는 상품이기도 하다(현금의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 바로 인플레이션). 그래서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현금이라는 중요한 상품’의 가치를 엄격하게 유지하는 일이다. 그래야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이 혼란에 빠지지 않고 경제가 순조롭게 발전할 수 있다. 다만 행정부는 경기 활성화로 정치적 인기를 얻기 위해 현금을 많이 발행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현금 발행의 주체인 중앙은행의 (정치로부터) 독립성이 통화정책의 원칙으로 강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MMT에게 주류 경제학의 이런 주장은 정부의 통화 발행을 금기로 만들어 재정 운영을 망친, 그릇된 도그마에 불과하다. 예컨대 10t 탱크들에 우유(현금)를 가득 채워놓은 낙농업자(정부)가 왜 슈퍼마켓(민간 부문)에 우유를 사러 가야 한단 말인가. 또한 각국 정부들은 빌려서 지출한다. 그냥 현금을 발행해서 사용하면 될 텐데 왜 빌려야 하는 것일까? 집안을 청소하기 위해 일부러 이 방 저 방에 쓰레기더미를 던져놓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레이 교수 등 MMT 학파의 생각을 표현한 <그림 2>(아래)는 <그림 1>이 거꾸로 뒤집힌 형태다. 위에 있는 정부 부문에서 아래의 민간 부문으로 ‘정부 지출’ 및 ‘차입금 이자’라는 형태로 돈이 쏟아진다. 또한 정부는 <그림 1>과 달리 ‘현금을 담는 통’이 아니라 ‘현금 발행기’로 그려졌다. 다만 정부가 민간 부문의 통에 흘려보내는 현금의 규모에 상응하는 양으로 민간 기업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지 못한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적절한 양의 현금을 밖으로 빼주는 통로가 필요하다. MMT에 따르면, 그 수단이 바로 세금과 정부 차입이다.

정부 차입의 경우, 민간 부문의 기업가들이 국채를 사면, 그만큼의 돈이 정부의 ‘국채 계정’(<그림 2>에서 민간 부문의 왼쪽에 새로 그려진 통)으로 옮겨진다. 이런 과정에서 민간 부문의 현금이 줄어들면서 물가 인상이 억제된다. 국채의 상환 만기가 돌아오면, 현금은 다시 민간 부문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MMT에 따르면, 정부 차입(국가 부채)이 늘어났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계와 기업이 부채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파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현금을 언제든 얼마든지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파산할 수 없다. 국채 계정에 기록되는 ‘차입(국가 부채)’은 ‘장부상 기록’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더욱이 민간 부문의 처지에서 볼 때, ‘국채 보유의 증가(국가 부채의 증가)’는 민간이 가진 금융자산 가운데 현금(이자 없는)보다 국채(이자 있는)의 비중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예컨대 1억원 상당의 현금을 보유한 가계가 그중 5000만원을 정기예금 계좌로 입금했다고 해서 해당 가계의 부(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MMT는 정부 지출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부가 민간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공공재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도로와 철도, 건강보험, 학교, 인공위성 등 민간에서는 생산하기 어렵지만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민간 경제에 필수적인 재화들이다. <그림 2>에서 공공재는 민간 부문의 받침대로 그려진다.

지금까지 MMT 학파의 견해를 보면, MMT가 재정적자를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조치로 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정부 지출이 늘어나야 민간의 현금 보유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과 가계는 이렇게 늘어난 현금을 지출(투자와 소비)해서 경제를 작동시킬 것이다. 장부상으로는 국가 부채가 늘어나겠지만, MMT의 시각에서는 민간의 수중에 있는 총체적 부가 늘어났다는 표시일 뿐이다. 이와 반대로 재정흑자 정책을 시행하면, 정부의 금고에 현금은 늘어나겠지만, 민간 부문의 현금은 오히려 줄어든다. 이 경우, 민간 부문이 이전 시기의 지출을 유지하려면 저축해뒀던 자산을 소비로 돌리거나 은행에서 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MMT는 지속적인 재정흑자와 재정균형이 필연적으로 불황과 금융위기(민간의 부채 증가로 인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MMT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가 재정적자 및 양적완화로 급한 불을 끄면서 부각되었다. 주요국마다 통화량이 금융위기 이전의 3~4배로 늘어났지만 인플레이션은커녕 디플레이션 조짐마저 나타나는 상황에서도, 주류 경제학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며 긴축정책을 각국 정부에 압박했다. 이랬으니 적극적인 재정적자와 감세(민간 부문의 현금 보유 증가)를 주장하는 MMT가 돋보였던 것이다.

진보학자들도 MMT 수용에는 ‘신중’

MMT가 옳다면, 고용·인플레이션·세금·예산·중앙은행 등에 대한 주류 경제학적 상식들은 모두 오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경제학계의 이단아로 취급받는 것이 당연하다. 대규모 정부 지출을 주장하는 비교적 진보적 경제학자들도 MMT의 핵심 논지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는 꺼려한다. 사실 너무 파격적이다. 폴 크루그먼 역시 불황기에는 몰라도 어느 정도 정상적인 시기까지 대규모 재정적자를 시행하면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버니 샌더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스테파니 켈튼이라는 것이 알려졌을 때 펄쩍 뛰었다. 이론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실제로 정책화되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MMT가 지금까지 성역처럼 수호되었던 주류 경제학의 주요 교리들을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다. 제2차 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자본주의 황금기’를 이끈 것은 케인스주의였다. 이후 지금까지는 통화주의를 기본 줄기로 한 주류 경제학이 학계와 정책 입안자들의 두뇌 한가운데를 점유하고 있다. MMT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만한 이론인지, 아니면 주변부의 비주류 경제학으로 머물다 사라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샌더스와 코빈을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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