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교사도 한국 걱정
  •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 호수 425
  • 승인 2015.11.06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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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4일 ㅁ선생님이 연락을 해왔다. 한국 정부가 2017년부터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으셨단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정권의 역사 인식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 쉽다고 걱정하셨다. ㅁ선생님은 일본 중학교에서 36년째 사회과(지리·역사·공민(公民:정치·경제))을 가르치고 계신다. ‘청일전쟁’ 단원일 때는 본인이 만든 수업 노트와 자료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청일전쟁의 원인이 된 동학농민군 위령비와 유적지 사진까지 직접 준비했다.

ㅁ선생님의 수업은 청나라와 일본이 싸운 전쟁터가 한반도였고 조선인 농민의 희생이 가장 컸다는 데서 출발한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이 조선인을 학살한 사실을 숨기지만, 연구가 축적될수록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는 점도 전했다. ㅁ선생님은 본인이 참여하고 있는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과 같은 한·일 시민 교류 소개도 잊지 않았다.

ㅁ선생님은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 내용을 별도 자료로 준비했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과 토론을 벌여 의견을 나눴다. 교과서‘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과서‘로’ 가르친다는 교사로서의 신념을 실천한 결과다. 그때 학생들은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토론을 거친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내 생각을 중심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이 조금 싫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 문제를 생각하는 데 일본이 싫고 좋고는 관계가 없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의견을 펼쳤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5월25일 일본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서 역사학자 등이 위안부 문제의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국과 일본의 일부 인사는 국적을 불문하고 가해의 역사를 배운 학생들이 자학적인 역사관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학생을 만나는 선생님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배우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어른의 잘못을 지적하게 되고 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한다고 입을 모은다.

ㅁ선생님은 이러한 수업 방식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일본의 가해 사실, 즉 한국인의 강제징용이나 전쟁 포로 학대 문제에 관해서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을 좋아했던 선생님은 1980년대 초반 오사카에서 재일조선인 학생이 많은 반의 담임을 맡으면서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같은 생각을 하는 역사 교사들의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교과서에 없는 내용을 충실하게 가르칠 수 있었다.

1949년 일본 초·중·고·대학교 역사 교육자들의 모임 ‘역사교육자협의회’가 창립되었다. 현재 사회과 교육자 2000여 명이 소속되어 있는데, 협의회는 매년 한 차례 전국대회를 연다. 1970년대는 ‘민족의 과제’, 1980년대는 ‘평화 구축과 역사 교육’, 1990년대는 ‘지역, 평화와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사회과’가 중심 주제였다. 이와 더불어 각 지부에서는 매달 한 번 회원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고 부교재를 제작해서 공유한다. 협의회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ㅁ선생님도 일찍부터 교과서에는 없는, 피해와 가해를 함께 가르치는 평화·인권 교육이 가능했다.

더욱이 교사의 노력을 받쳐주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었다. 1980~1990년대까지는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의 재량권이 컸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 교육을 받고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수업하기도 쉽고 성과도 컸다. 특히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1993년 고노 담화 발표에 이어 1997년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 사실이 삽입되면서, 현장에서는 쉽게 일본의 가해 책임을 포함한 전쟁과 평화를 가르칠 수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은 기존의 역사 교과서가 자학적이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및 전쟁을 긍정하는 중학교 교과서를 펴냈다. 1999년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2000년대부터 정치권력이 본격적으로 교육 현장이나 교과서 채택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일부 학교는 수학 여행지를 히로시마, 오키나와에서 다른 곳으로 바꿔야 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 우익 성향의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새역모’가 8월15일 서명운동을 벌였다.

동아시아 시각이나 젠더 관점 도입하면 ‘반일’?

특히 2차 아베 내각이 들어서고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일선 교사들은 배포자료 한 장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교장이 수업 방식과 내용에 관해 일일이 지적하는 학교가 생기는가 하면, 익명의 시민이 ‘대동아전쟁 관련 시험문제와 수업 자료를 공개하라’고 학교에 요청하면 담당 교사는 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일본군 ‘위안부’라고 검색하면 역사적 사실의 부인은 물론 생존자들과 한국이나 중국을 폄하하고 혐오하는 내용들이 먼저 검색되는 등 일본 사회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결국 올해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새역모’의 계통을 잇는 이쿠호샤(育鵬社)가 전국 공립·사립학교에서 6.6%를 점유했다. 시민들은 전국적으로 아베 정권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쿠호샤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오사카 시 등이 신규로 채택하면서 이전에 4%였던 점유율이 6.6%로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초·중·고교 교사(퇴직 교사 포함)들이 교과서 출판에 나섰다. ㅁ선생님도 집필자로 참여한 마나비샤(学び舎)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다. 마나비샤는 학생의 눈높이에서 학생을 위한 교과서를 지향한다. 동아시아의 시각이나 젠더 관점을 도입해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10월19일부터 일주일 일정으로 ㅁ선생님은 마나비샤의 교과서를 들고 한국의 전주·광주 등을 방문했다. ㅁ선생님은 한·일 시민 교류 자리에서 마나비샤의 교과서 이념과 내용을 소개하고, 일본 내 38개 학교에서 채택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또 한국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였다. ㅁ선생님은 전주 일정을 마치며 “교류회에 참가한 한국 측 시민이 ‘일본에서 생명과 인권을 귀중히 여기고 여성, 학생, 동아시아의 역사를 중시하는 교과서가 선생님들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일본 측 참가자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한·일 양국 시민은 동학농민군, 의병투쟁, 3·1 독립운동에서부터 민주화운동까지 시민이 지켜온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자. 역사의 바늘을 되돌리는 국정화는 절대 안 된다. 함께 동아시아의 평화를 만들어가자고 의기투합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언젠가 ㅁ선생님이 한국과 일본의 중학생이 함께 동아시아의 역사 수업을 하는 장면을 그려본다(마나비샤 교과서를 ‘반일’ ‘매국’이라며 비난하는 일부 세력이 저자 신상털기에 혈안이다. 그 때문에 이 글에서도 실명을 밝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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