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역사학자 90%좌파” 발언의 뿌리


10년 전과 확 달라진 대통령의 역사인식


국정화 교과서가 수능부담 줄인다?


주체사상 가르치는 금성 교과서 뜯어보기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여의도에 내건 현수막 내용이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현행 교과서가 좌편향됐다며 “친북 사상을 퍼뜨리는 숙주”라고 했다. 반면 야당은 정부·여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목적을 ‘친일·독재 미화’로 규정했다. 실제로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실려 있는지, 양쪽 주장이 어디서 갈리는지 논란의 핵심을 짚었다.

교과서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치나?

현재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모두 주체사상을 싣고 있다. 보수색이 짙은 교학사 교과서도 비중 있게 다룬다. 북한이 김일성 독재 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다. 비판적인 맥락으로 쓰지 않은 교과서는 하나도 없다. 이는 ‘북한 사회의 변화와 오늘날의 실상’을 살펴보라는 2009년 교육과정 개정과, ‘분단 이후 북한의 변화 과정을 서술’하라는 교과서 집필 기준에 따른 것이다. 이들 교과서에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9월에 발표된 2015년 교육과정 개정은 아예 북한의 변화와 관련된 학습 요소로 ‘주체사상과 세습 체제’를 명시했다.

 

 

보수가 주체사상을 가르친다며 가장 많이 언급하는 교과서는 금성출판사판 407쪽 ‘더 알아보기-주체사상의 성립과 그 역할’(〈그림 1〉)이다. 이는 ‘북한, 세습 체제를 구축하다’라는 단원의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의 성립’이라는 소주제에 딸린 자료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천명되면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 및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을 포함한 대목 전체가 2013년 11월 교육부가 내린 수정명령을 반영해 2014년 1월 교육부의 최종 승인을 받은 내용이다.

 

6·25 전쟁의 책임이 남북한 모두에게 있는 것처럼 가르친다?

논란이 되는 대목은 미래엔 317쪽 ‘탐구 활동’에 실린 역사학자 김성칠의 증언(〈그림 2〉)이다. 이 자료 중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동기로 본다면 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들은 피차에 서로 남침과 북벌을 위하여 그 가냘픈 주먹을 들먹이고 있지 아니하였는가.” 교육부는 이 자료가 6·25 전쟁의 책임이 남북 모두에게 있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북한의 남침을 직접 보여주는 자료로 교체할 것을 명령했다. 현재 미래엔 교과서는 이 자료를 ‘북한군의 전투 명령’으로 대체했다.

교육부가 문제 삼는 문장 바로 뒤에 “인민공화국에서의 끊임없는 남침의 기획과 선전은 이미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고 또, 이미 실천을 통하여 분명히 되고 말았으니 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라는 표현이 있다. 남한에도 전쟁을 부르짖은 이들이 있었음을 증언하는 내용도 이어진다. 집필자인 한철호 동국대 교수(역사교육과)는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라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실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앞쪽에 김일성과 스탈린이 남침을 논의하는 사료가 이미 실려 있어서 ‘오해할 소지’도 크지 않다. 한국전쟁에 대해 남침이라 쓰지 않은 교과서는 하나도 없다.

 

 

북한은 국가 수립, 남한은 정부 수립으로 가르친다는 건 무슨 얘긴가?

현행 8종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쓴 교과서는 하나도 없다. 집필 기준이 그랬다. ‘2009년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보면, “8·15 광복 이후 전개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파악한다”라고 되어 있다.

오히려 교육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이라 표현하지 않도록 수정을 권고한 적이 있다. ‘교학사’ 교과서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건국의 출발을 하게 되었다”(307쪽)라고 쓴 채 2013년 8월 검정을 통과했다. 이에 대해 2013년 10월 교육부는 “대한민국은 제헌 헌법에도 명시하고 있듯이 3·1운동 결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수립되었음. 따라서 건국이란 용어는 적절하지 않음. 집필 기준 등에 의거하여 ‘건국’이 아닌 ‘정부 수립’ 등으로 수정 필요”라고 권고했다.

그런 교육부의 방침이 바뀌었다. 10월2일 교육부는 “북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남한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서술하여, 마치 북한은 ‘국가’를 수립하고 남한은 온전한 국가가 아닌 ‘정부’를 수립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9월 발표된 2015년 교육과정 개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모두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바꿨다. ‘정부 수립’에서 ‘건국’으로 한 발짝 이동한 셈이다.

건국이 언제인가를 두고 현재 두 가지 해석이 대립하고 있다. 헌법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고 되어 있는 만큼 대한민국이 세워진 시점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는 관점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명확히 해야 북한에 대한 남한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대체로 전자가 진보, 후자가 보수의 주장으로 논란이 계속돼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3년 9월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협의회’가 교육부의 수정 권고나 지시에 따르지 않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수정명령을 내려도 집필진이 소송을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교육부가 호소하는데?
 

현재 교과서는 교육부가 2013년 11월 내린 수정명령을 반영해 2014년 1월 최종 승인을 받은 버전이다. ‘교학사’ 교과서가 오류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교육부는 2013년 10월 ‘교학사’ 251건을 포함해 검정을 통과한 8종 교과서 서술 829건에 대해 수정·보완을 권고했고, 이에 따라 발행사가 제출한 수정·보완 내용 중 41건에 대해 수정명령을 내렸다. 일부 저자들이 수정을 받아들이지 않자 교과서 발행사들이 저자 동의 없이 교육부 명령에 따랐다. 그해 12월 교학사, 리베르스쿨을 제외한 6개 출판사(금성출판사, 두산동아, 미래엔, 비상교육, 지학사, 천재교육) 집필진 11명이 33건 수정명령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

집필진은 수정명령이 적법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수정명령이 실질적인 내용 변경을 가져오는 경우에는 심의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이번 수정명령은 기간도 짧고 심의 과정도 투명하지 않아 절차를 거쳤다고 보기 어려우며, 내용도 사실상 특정 관점을 강제해 재량을 일탈한다는 주장이다. 미래엔 집필에 참여한 원고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8개월 검정 과정에서 전혀 문제 삼지 않았던 부분을, 교학사 교과서가 문제가 되니까 전체 교과서를 일괄해 수정명령을 내렸다. 심의에 누가 참여했는지도 공개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1, 2심 재판부는 절차와 내용 모두 교육부의 재량권 안에 있다고 봤다. 10월1일 집필진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교육부는 집필진이 소송을 반복하는 것이 검정제의 ‘근본적인 한계’라며 국정화의 논거로 든다. 그러나 소송 제기는 시민의 권리다. 집필진이 대법원에서도 패소하면 교육부의 수정명령은 그대로 인정된다. 집필진이 승소한다면 수정명령이 부당했다고 사법부가 확인하는 것이 된다. 국정화 도입이 필요한 이유와는 관련이 없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인데, 교육부의 수정명령을 따르는 편이 낫지 않나?

교육부가 수정명령을 내린 내용을 보면 “오해할 소지가 있으므로”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북한 토지개혁의 한계를 ‘무상 몰수, 무상 분배’라고만 하지 말고 좀 더 상세히 서술하라는 요구(〈그림 3〉)가 대표적이다. 교과서의 특수성을 감안한 인식이다. 하지만 특정 사관을 강제하거나 사상 검증 성격이 있는 요구 등(“김일성이 활동한 동북항일연군 분량이 많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 서술을 추가하라” “북한 인권 문제를 사례를 들어 상세히 써라”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의 주체를 명확히 하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혼재돼 있다.

 

금성출판사 407쪽 ‘더 알아보기-주체사상의 성립과 그 역할’의 경우, 수정 전부터도 “1970년대 이후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천명되면서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라는 서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북한 학계의 주장에 따르면, 주체사상은~”이라는 표현은 “북한 학계에서는 주체사상을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라고 수정했다.

기존에 문제 삼지 않은 대목을 거론하며 국정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수정명령에서는 문제 삼지 않은 ‘보천보 전투’ 대목(두산동아 247쪽)을 국정화 논란 과정에서 뒤늦게 문제 삼았다. 교육부는 “‘보천보 전투’에 대해 신문 호외와 함께 ‘김일성 이름도 국내에 알려졌다’는 등의 서술을 해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보천보 전투’ 확대·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라고 색깔론을 제기했다. ‘이름이 알려졌다’라는 사실 기술을 ‘김일성 우상화’라는 가치판단과 뒤섞어버렸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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