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30일 싸이월드가 갑자기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올라왔다. 싸이월드가 방명록·일촌평·쪽지 서비스를 종료하기에 앞서, 사용자들이 데이터를 백업할 수 있도록 한 마지막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랴부랴 방명록 등을 백업했다. 아직 종료 언급이 없었던 사진첩 등 다른 자료까지 백업하는 사람도 있었다(방문자 폭주로 인해 싸이월드 측은 백업 기간을 10월5일에서 10일까지 닷새간 연장한다고 밝혔다).

싸이월드는 한때 국내 가입자 3500만명을 자랑하는 ‘국민 SNS’였다. 한 대기업 산하 연구소는 2004년 히트상품으로 싸이월드를 선정하기도 했고, 2008년에는 한 해 ‘도토리’ 판매액만 800억원을 넘겼다. 서비스 규모나 수익모델 모두 국내 최대이자 최고의 SNS였다. 하지만 잇따른 신규 서비스 론칭 실패, 해외에서의 고전, 스마트폰 전환 과정에서의 대응 미숙이 이어지자 유저가 이탈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싸이월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네이트온 메신저가 새로 등장한 카카오톡에 밀리고, 외산 SNS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인기를 끌면서 서비스가 급속히 위축되었다.

 

ⓒ싸이월드 홈페이지 갈무리싸이월드가 9월30일 일부 서비스를 종료했다.

변화에 잘못 대응해 사라진 서비스는 살아남은 서비스보다 몇십 배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서비스가 있다. 인터넷의 조상님 격인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유니텔 등의 PC통신 서비스, 아이러브스쿨·프리챌 커뮤니티·싸이월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중 프리챌은 이미 2013년 2월18일에 메일, 커뮤니티 등의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과거의 모든 데이터가 망실되었고, 이제 싸이월드가 뒤를 따르고 있다. 하이텔은 파란닷컴을 거쳐 다음에 통폐합되었고, 천리안도 포털화되었다가 올 10월1일 클럽, 블로그 등 다수 서비스를 정리하면서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지리라는 예상이 나온다.

발터 베냐민은 영화나 사진 등 당대의 뉴미디어를 보며 ‘기술 복제’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기술로 인해 언제 어디서든 복제될 수 있게 된 예술작품은 ‘지금, 여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고유성(uniqueness)과 진정성(authen -ticity), 즉 원본만이 가지는 ‘아우라(aura)’가 파괴된다고 보았다. 큐레이션이라는 미명 아래 펌질과 도용이 난무하는 오늘날 온라인 세상을 예견한 것 같은 날카로운 지적이다.

하지만 디지털 콘텐츠에도 원본은 있고, 그만의 아우라가 있다. 특정 콘텐츠를 올렸을 때의 기억과 경험 및 콘텐츠를 두고 나눴던 대화가 포스팅과 댓글 등의 형태로 함께 남아 있다. 당대의 스타일과 문화 코드가 녹아 있음은 물론이다. 이 모든 것들이 ‘추억’의 형태로 남아, 싸이 사진첩을 다시 열어보는 당신의 손과 발을 오그라들게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추억이 나오고, 디지털 콘텐츠의 아우라가 풍긴다.

같은 콘텐츠라도 ‘그릇’이 다르면 맥락이 바뀐다

특히 중요한 것은 개별 서비스들이 제공했던 유저 인터페이스(UI)와, 이를 통해 구현되는 사용자 경험(UX)이 만들어내는 아우라다. 콘텐츠를 다른 서비스나 게시판에 올리면, 같은 콘텐츠라도 느낌이 달라진다. 싸이월드를 백업하다 찾은 옛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본 사람은 그 미묘한 차이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싸이월드의 조그만 팝업창과 배경음악, 미니미 등 지금 보면 답답한 크기의 사진첩 등이 해당 서비스만의 고유한 사용 맥락을 만들고, 그 맥락을 타고 공유된 콘텐츠가 ‘그때, 그곳’만의 아우라를 구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특정 서비스만의 아우라가 돋보인다는 것은 그 서비스가 지금의 맥락과 유리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본의 아우라가 더욱 돋보이기 위해서는 해당 맥락이 추억 속 옛것이어야 한다. 살아 있는 서비스라면 당대의 맥락을 꾸준히 담아내고, 그 맥락 속에서 대화가 꾸준히 쌓아 올려져야 한다.

최근 다음카카오 사명 변경과 관련해 ‘다음’의 추억들이 회자되는 등, 디지털 공간에서 옛것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부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 시간이 더 흐르면 오늘날 인기 있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도 한때의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처지에서는 고유한 아우라를 유지하되 노스탤지어로 남지 않도록 시대와 계속 소통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일반 이용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흑역사를 두려워하지 말고 즐기면 그만이다.

기자명 이종대 (IT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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