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죽음에 빠져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쌍용차 노동자의 사망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었다. 11번째 죽음과 15번째 죽음이 여섯 달 안에 벌어지던 2010년 12월에서 2011년 5월. 살아 있는 것조차 버거운 날들이었다. 두렵고 무서웠다. 울면서 보도자료를 써대고 있었다. 2009년 파업 이후 조합원들의 건강과 실태를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그때 〈시사IN〉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파업 이후 처음으로 해고자 전수조사 기획 특집을 마련해 기사화했다. 객관적 수치는 우리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노출했지만 연대의 손길이 이어졌다. 이뿐이 아니다. 고비마다 제 일처럼 달려와 기사를 만들고 응원해준 기자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중요한 고비를 잘 넘겨오고 있다.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손해배상 문제를 줄기차게 이슈화했고, 결국 우리는 손배 문제를 노사 협의 안건으로 다루게 되었다. 특히 1년 정도 고정 지면을 허락해준 〈시사IN〉은 내게 ‘고마움’이다. 빅터 프랭클린이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것처럼 쌍용차 문제 반듯하게 해결하고 정갈한 글 한 편 〈시사IN〉에 쓰는 시간이 빨리 오길 바란다. 창간 8주년을 축하드린다.
김세윤 (방송작가) 영화 〈여고괴담〉에서 귀신 최강희는 9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졸업 앨범마다 그녀의 사진이 박힌 걸 뒤늦게 확인한 선생님이 겁에 질려 전화를 건다. “진주가… 학교를 계속 다니고 있어!” 〈시사IN〉에 8년째 글을 쓴다. 1년만 더 버티면 나도 〈잡지괴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 글을 읽고서야 그 사실을 눈치 챈 편집국장이 짜증스럽게 전화를 걸겠지. “창간호 필자가… 아직까지 남아 있었어!” 왜 학교를 떠나지 않았느냐고 묻는 친구에게 최강희는 말했다. “처음엔 졸업 앨범이 갖고 싶었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어. 난 나를 사랑해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던 거였어.” 나도 처음에는 내 글이 실리는 지면을 갖고 싶어서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내 글을 사랑해주고 이해해주는 친구가 〈시사IN〉 독자라는 게 참 좋았다. 이 근성 있는 잡지 한구석에 여전히 내 이름이 박히는 게 참 뿌듯하다. 그러니 지금 내가 남의 창간을 축하해줄 때가 아니다. 축하는 내가 받아야 한다. ‘경축 〈시사IN〉 필자 8주년!’
장정일 (소설가) 신간 소식이나 서평을 둘러보기 위해 집 앞 도서관에서 정기적으로 주간지를 살펴본다. 극보수 주간지와 진보 주간지의 확연한 특색은 이상하게도 전자는 책 소개가 아예 없거나 그것에 인색하다는 것이다. 소개하는 책도 후지고. 놈 촘스키 말마따나 “보수는 도서관에 가지 않는다”. 반면 〈시사IN〉은 후자 중에서도 책 소개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아쉽게도 지금은 한 꼭지가 줄었다!). 비판적인 정론으로 유명해진 〈시사IN〉이 간소한 서평 전문지 구실까지 도맡은 형국이다. 〈시사IN〉 창간 8주년에 감사드린다.
최정규 변호사 (〈시사IN〉 법률 고문) 저는 〈시사IN〉 기사를 가장 먼저 접하는 독자입니다. 법률 검토를 빙자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마감에 쫓기는 기자들을 괴롭히는 악역입니다. 재밌습니다. 마감이 다가오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어디에 있든 휴대전화를 자주 확인하는 버릇이 생긴 지 오랩니다. 기자들이 전화를 걸며 하는 첫마디는 항상 “변호사님, 바쁘신데 정말 죄송해요”입니다. 요즘 이렇게 변호사를 배려해주는 고객은 없습니다(게다가 〈시사IN〉은 고문료도 줍니다!). 가끔 갖는 술자리는 늘 즐겁고, 유익합니다. 이렇게 지낸 지 벌써 8년이 되었다니 감개무량합니다. 곁에서 지켜본 〈시사IN〉 구성원들은 성역이 없고 근성도 대단합니다. 그래서 소송이 빈발하고, 사건도 어렵습니다. 솔직히 제 능력에 벅찰 때도 있었고,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사IN〉의 고문변호사인 걸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시사IN〉 소송대리인으로 법원에 갈 때면 떳떳해서 좋습니다. 창간 여덟 돌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민은기 (서울대 작곡과 교수) 〈시사IN〉은 편집국장 브리핑부터 마지막 장까지 정성스러워요. 귀하게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좀 덜할 때도 있지만요…. 진솔하고 호소력 있는 정보 감사해요. 〈시사IN〉 창간 8주년, 축하합니다.
배춘환 (주부·‘노란봉투 캠페인’ 제안자) 2013년 봄, 〈시사IN〉을 처음 만났다. 지나치게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남편에게 균형을 잡아주겠다며 확인 차원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세상’을 보았고 지금은 내가 더 팬이 되었다. 다른 매체로 뉴스를 접하면서도 〈시사IN〉이 오는 수요일을 기다린다. 세상에 대한 〈시사IN〉의 관점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뉴스는 이웃의 이야기가 되고 종종 그분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2013년 겨울에 만난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이야기가 그랬다. 5년간의 무관심에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그래서 편지를 썼다. 그 후 목격한 노란봉투 캠페인은 세상 전체가 촛불로 밝혀지는 듯한 환희였다. 하지만 지금도 어떤 분은 고공 탑에서, 어떤 분은 단식으로 똑같은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음을 볼 때 가슴이 턱 막힌다. 몰랐으면 좋을 이야기였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자리가 몇 년 뒤 우리 아이들이 서 있게 될 자리일지도 모르기에 눈과 귀를 닫을 수가 없다. 그래서 봐야 할 곳을 보게 해주고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사IN〉에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마워 〈시사IN〉, 8주년 축하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시사IN〉은 기존 제도 언론에서 못하는 점을 제대로 긁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칭찬만 하고 싶은데, 언론으로서 제구실을 해요, 이거 중요합니다.
최상훈 (〈뉴욕 타임스〉 기자) 통치하는 자보다 통치받는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노력한 〈시사IN〉의 창간 8주년을 축하합니다. 경제와 이념 양극화로 찢기고, 선정적인 상업주의 언론에 실망하며, 질시와 냉소로 병든 한국 사회는 정도를 걷는 저널리즘을 요구합니다. 〈시사IN〉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캔디 고 (미국 로스쿨 학생) 한국은 정치·사회적으로 끊임없이 대중에게 두려움을 주입합니다. 대중을 위해 사실을 알려야 하는 언론이 기득권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항상 안타깝습니다. 한국 사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싶지만 직접 듣고 느낄 수 없는 외국인으로서 진실된 보도의 결핍에 좌절감을 느낍니다. 〈시사IN〉은 ‘정치적 압박으로 피상적 보도에 그치거나, 주요 정보를 누락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언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 많은 한국의 언론이 〈시사IN〉과 같이 진실 탐구에 노력하기를 소망합니다.
이한 (변호사) 모든 시민은 여건이 허락되는 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최대한 독립적인 언론을 하나 이상 구독해 공론장에 기여할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사IN〉은 그런 언론 중 대표 경우라 오래전부터 구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충직한 구독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만일 구독으로 조력할 더 적합한 언론이 있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바꿀 의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여전히 〈시사IN〉을 보고 있습니다. 활자에 둘러싸여 업무를 보는 까닭에 〈시사IN〉의 모든 기사를 자세히 다 읽지는 못하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를 자세하고 깔끔하게 설명하는 몇몇 기사를 주의 깊게 읽고 있습니다. 그 기사들은 종종 저를 감탄케 합니다. 내친김에 제언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각 기사의 핵심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해주는 파트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기사에서 자료를 인용하는 경우에는 자료의 출처를 독자들이 접근 가능하게 명기했으면 합니다. 구독자 스스로 공론장에 더 깊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도 언론이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권나무 (음악가·초등학교 교사) 〈시사IN〉은 항상 표지 사진이 매력적인 매거진이었습니다. 뜨거운 쟁점들은 뜨겁게 다루어져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주류 언론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슈를 〈시사IN〉에서 기사뿐 아니라 대문짝만한 사진들과 함께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표지에 실린 인물 사진들도 좋은 게 많았습니다. 은유적으로 어떤 사물을 표현한 점들도 마음에 남습니다. 저는 음악가이기도 하지만 교사로 일을 하고 있어서 특히 교육에 대한 글을 종종 발췌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조형근 (전 ‘시사모’ 부회장) 얼마 전 일이다. 학계와는 상관없는 분들과 하는 독서모임에서 한 분이 한국 학계의 실력 없음을 매섭게 질타하는 것이었다. 뜨끔해서 주섬주섬 변명을 늘어놓을밖에. 모두가 모두에게 화가 나 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분노하고, 늙은 386들은 싸우지 않는 청년들이 답답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국민과 공무원이, 여자와 남자가, 의사와 환자가, 지역과 지역이 서로에게 화가 나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분노, 이게 지금 우리 사회의 날 선 단면이다. 그 만인이 모두 제대로 된 언론이 없다며 또 울화통을 터뜨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한국 학계에 제대로 된 학자가 없지 않은 것처럼, 한국 언론계에 참언론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 몫을 감당하겠다 나섰던 게 8년 전 〈시사IN〉이었다. 감개무량해도 좋을 텐데 주마가편하고 싶다. 나도 답답해서 그렇다. 달려라, 〈시사IN〉!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시사IN〉은 밥맛을 떨어뜨린다. 세상을 향해 항상 날을 세우는 투덜이와 밥을 먹는 기분. 그래서 〈시사IN〉은 밥 다 먹고, 아니다, 보통은 술을 다 마시고 난 다음에 읽는다. 그때쯤이면 이놈의 투덜이도 귀엽다. 심야 지하철 가판대의 너, 이제는 오랜 내 친구.
김제동 (방송인) 제발 주진우가 일 좀 그만하는 시대를 보고 싶다.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진우가 누가 차로 밀어버릴까 봐 못 타겠다고 했을 때 가슴이 철렁하다가도 못내 마음이 짠했다. 주진우 건드리면 내가 가만히 안 있는다고 큰소리쳤지만 솔직히 나도 조금 무서웠다. 그런 마음으로 〈시사IN〉을 본다. 겁나면서도 ‘빽’이 있어서 든든하게 맞짱 뜨는 시라소니처럼. 시라소니는 벽이 없는 싸움판에서 죽었다. 돈도 없고 힘도 없지만 ‘가오’는 있는 사람들의 든든한 뒷벽. 〈시사IN〉을 응원한다. 진우, 너는 물론이다. 마약만 하지 마라. 다른 건 모두 내가 커버한다.
류승완 (영화감독) 〈시사IN〉이 내 영화보다 재미없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각종 음모와 배신·협잡이 넘치는 생동감 있는 드라마를, 매주 나오는 〈시사IN〉만큼 만들기가 힘들다. 내 영화를 〈시사IN〉보다 재미있게 만들기보다 〈시사IN〉이 다루는 내용들이 너무 평화로워서 재미없어지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은 〈시사IN〉이 재밌어서 오늘도 〈시사IN〉을 뒤적인다.
강풀 (만화가) 〈시사IN〉이 8년이나 버텼다는(이 경우엔 버텼다는 말이 칭송의 의미입니다) 것은 어쩌면 아직 제대로 된 언론이 살아 있다는 안도감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끝내 버티십시오. 이 혼탁한 세상에서 바위처럼 버티시기를 앙망합니다. 어디가 기준인가 헷갈릴 때 ‘저기 〈시사IN〉이 있다’라는 초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