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 정부보다 말리는 정부법무공단이 더 밉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피해자들 사이에서 정부법무공단에 대한 원성이 높다. 이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연달아 패소하는 데는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정부법무공단의 탓이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과거 권위주의 시절 군부대·안기부(국정원 전신)·경찰·검찰·보안사 등 국가기관의 고문과 학살, 가혹행위 등으로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뒤 정부 인권기관의 진상 규명과 법원의 재심 등으로 무죄가 확정된 이들이다.

정부법무공단이 홈페이지를 통해 자랑하는 국가 상대 손해배상소송(이하 손배소) 사건에서의 최종 승소 목록을 살펴봐도 실상은 잘 드러난다. 보안사의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 손배소,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사장 사형 사건 손배소, 비전향 장기수 사상 전향 강요 및 고문 구타에 대한 손배소, 전두환 정권 당시 보안사 수사관들의 불법감금 구타에 대한 손배소, 긴급조치 시절 국가의 불법행위 피해자에 대한 손배소, 인혁당 피해자의 국가 상대 손배소 상고심 등 누가 들어도 알 만한 굵직한 정부 상대 손배소 사건에서 정부법무공단은 국가를 대리해 변론에 나섰고, 주로 ‘시효만료’ 법리를 앞세워 승소했다. “국가가 반인권 위법행위를 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피해자들이 사건이 일어난 날로부터, 또는 진상 규명이나 재심 결정이 나온 날로부터 일정 시일이 지난 뒤에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시효가 소멸돼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줄 의무가 없다”라는 논리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정부법무공단은 ‘<민족일보> 사건’(위)에 대한 손배소 등의 재판에서 정부를 대리해 나섰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정부법무공단’은 2008년 2월 법무부 산하 국가 로펌으로 발족했다.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의 행정행위를 둘러싸고 국민과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과거에는 소송 수행청이나 법무부 내 송무부서에서 담당하던 방어 업무를 소송 전문 로펌을 따로 만들어 전담시킨 것이다.

정부법무공단은 당초 변호사 40명으로 꾸려졌다가 국가 소송 업무가 폭주하면서 2014년 60명으로 정원이 늘었다. 출범 후 최근까지 200여 개 정부기관과 법률고문 계약을 체결해 해마다 법률자문 2000여 건을 해준 것으로 나타났고, 한 해 1500건 안팎의 소송을 수임해 승소율 74%를 자랑한다.

정부법무공단이 승소한 사건 중에는 국민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한 것들도 있다. 2011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이끌어낸 금지금(金地金:순도 99.5% 이상 금괴) 사건 소송이 대표적이다. 금지금 사건은 금괴 수출업체가 국가를 상대로 낸 부가가치세 등 부과처분취소 소송으로, 정부법무공단이 승소해 부가가치세 3조원의 부당 환급을 막아 국가 예산을 지켰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해 친일파 후손이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낸 320억원대 땅 찾기 소송도 정부법무공단이 맡아서 승소했다.


 

ⓒ시사IN 조남진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정부법무공단.
4대강 사업 질주 기틀 마련해주기도  

공단의 이런 소송은 ‘국가 이익 보호’라는 설립 목적을 충실히 달성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공단이 정권 차원에서 드라이브를 거는 무리한 국책 사업까지도 방패막이로 나서 결과적으로 국고를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시민소송단이 제기한 4대강 수계별 취소 소송 및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가 낸 4대강사업권 회수 가처분 소송이 대표적이다. 이 소송 사건에서 정부법무공단이 잇따라 승소함으로써 4대강 사업이 질주하는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그 결과 수조원대 국고 낭비 등 폐해가 고스란히 후대로 넘어갔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한 법무부가 국가 로펌을 설립하면서 목적으로 내세운 ‘국민의 정당한 권리 보호’는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가 공권력에 의해 발생한 심대한 인권유린 사건들에 대한 공단의 적극적 대응과 피해자들의 패소가 이를 잘 보여준다.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평양으로 끌려간 안학수 하사의 동생 안용수 목사는 2009년 국방부로부터 40여 년 만에 형이 ‘포로이자 납북자’라는 공식 인정을 받은 뒤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동안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당했던 고문과 핍박, 불이익에 대한 배상을 받고자 했다(〈시사IN〉 제414호 ‘빨갱이 누명 쓴 가족 그들이 겪은 고문과 고초’ 기사 참조). 그러나 정부법무공단 소속 변호사가 정부 측 대리인으로 나서 시효만료를 주장했고 결국 기각 결정을 이끌어냈다. 이뿐 아니다. 해당 변호사는 별도의 보상 기관인 통일부 납북자피해보상 심의위원회에도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안 목사의 억울한 고문 피해에 대해 최소한의 보상을 하려고 해도 법무부 눈치 때문에 쉽지 않다. 통일부 재량으로 요양보상을 해주었다가는 나중에 공무원만 문책당한다. 안 목사가 배상 액수에 불복해 소송을 하면 또다시 정부법무공단이 맡아 대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문 피해자에 대해 국가가 잘못을 사과하기는커녕 피해 보상 요구에 대해서도 소송으로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의 이런 행위는 지나치게 비인도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고문 피해자 전문의인 손창호 나눔신경정신과 원장은 “국가 고문 피해자가 소송으로 가면 또 다른 고문을 당하는 것과 다름없는 심신의 피해를 입는다”라고 말했다.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피해자에 대해 야박하게 구는 정부법무공단의 역할은 ‘국가 예산 절감’이라는 기본 목적에는 부합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정부법무공단 출범 직후인 2009년 작성된 법무부 내부 문서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2007년 인혁당 사건, 2006년 최종길 교수 사건 등 과거사 관련 국가 소송에서 패소해 거액의 예산 지출이 발생한 것을 비롯하여 패소가 짙은 과거사 관련 소송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임. 국가 송무 수행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개선을 통해 패소율을 낮춰야 함.”

하지만 비인도적 국가 범죄가 국민에게 안긴 고통에 대한 배상을 오로지 ‘주판알’만 튕기며 외면하려는 것이 정부법무공단의 또 다른 설립 목적에 위배되는 건 아닌지 되짚어볼 일이다. 2009년 작성된 앞서의 법무부 내부 문서에는 정부법무공단의 설립 목적으로 ‘국가 이익 보호’와 함께 ‘국민의 정당한 권리 보호’도 적시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한 변호사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 피해자들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정권과도 관련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법원이든 검찰이든 법무공단이든 국가기관의 잘못을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분위기였지만 이명박 정권 이후 태도가 변했다”라고 말했다. 국가의 잘못이 명백하게 밝혀진 인권 피해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적극 다투지 않고 재심 과정에서 상고 포기도 했지만, MB 정부 이후 하급심이 배상을 결정한 사안조차 정부법무공단이 적극 뛰어들어 상급심에서 뒤집는 사례가 일반화됐다는 분석이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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