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채무자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주빌리은행이 8월27일 출범했다. 사단법인 희망살림의 제윤경 이사(사회적 기업 ㈜에듀머니 대표)가 출범을 주도했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공동 은행장을 맡았다. 주빌리은행을 둘러싼 궁금증을 〈시사IN〉이 문답 형식으로 풀었다.

‘주빌리’란 무슨 뜻인가?
주빌리(Jubilee)는 기독교에서 채무자의 빚을 탕감하고 노예나 죄수를 풀어주는 특별한 해를 뜻한다. 2012년 11월 미국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에 참여한 이들이 추진한 ‘롤링주빌리(Rolling Jubilee)’ 프로젝트에서 이름을 따왔다. 채권자에게서 ‘빚 받을 권리’(채권)를 사들여 채권을 소각하는 운동이다.

주빌리은행은 은행인가?
아니다. 비영리단체다. 금융 소비자 운동, 소비자 경제교육 등을 하는 사단법인 희망살림이 2014년 4월부터 한국판 ‘롤링주빌리 빚 탕감 프로젝트’를 벌였다. 일곱 차례에 걸쳐 792명의 빚 51억여 원을 없앴다. 채권을 사들인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채권 보유 업체에서 기부를 받았다. 하지만 채권을 기부하려는 업체가 많지 않고 액수도 적었다. 주빌리은행은 채권시장에 직접 뛰어들기로 했다. 제윤경 희망살림 이사가 ‘롤링주빌리 대부’라는 이름으로 대부업자 등록을 했다.

 

ⓒ연합뉴스8월27일 장기 채무자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주빌리은행이 출범했다. 유종일 교수(왼쪽 두 번째)와 이재명 성남시장(왼쪽 세 번째)이 공동 은행장을 맡았다.
주빌리은행은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어떤 맥락인가?
부실채권이 거래되는 방식을 보자. 은행은 3개월 이상 상환이 이뤄지지 않은 부실채권을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등에 묶어서 팔아넘긴다. 이때 원금의 100%를 다 받는 게 아니다. 대부·대부중개·추심업체들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한국대부금융협회는 “5년 전에는 원금의 5~7%, 요즘은 10% 정도 가격에 거래된다”라고 했다. 이런 채권은 다시 여러 차례에 걸쳐 다른 업체에 매각된다. 매각이 거듭되는 오래된 부실채권일수록 가격이 떨어진다.

업체들은 이렇게 사들인 채권의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추심한다. 심지어 소멸시효(5년)가 지난 채권까지도 사들여 편법을 동원해 되살린다. 오래된 부실채권을 3~5% 정도에 사들여 탕감하겠다는 것이 주빌리은행이 내놓은 핵심 전략이다. 예를 들어 100억원짜리 채권을 주빌리은행이 3억~5억원에 사들여 소각하면 이 채권에 묶인 채무자들은 100억원어치 빚이 사라지는 셈이다. 대부·금융업계는 “비즈니스를 모르는 발상이다”라는 반응이다. 부실채권의 경우 연간 회수율이 업계 평균 3.5%이고, 5년을 추심해도 전체 액수의 15% 이상은 회수하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이려고 해도 돈이 든다.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건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일종의 수익모델이다. 그동안 빚 탕감 프로젝트가 빚을 전액 소각했다면, 주빌리은행은 채무자가 갚을 여력과 의사가 있는 경우 원금의 최대 7%까지 받을 계획이다. 나서서 추심을 하지는 않지만, 상환하고자 하는 채무자가 있다면 그 수익으로 다른 채권을 사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방안이다.

두 번째는 업체로부터 채권을 기부받는 것이다. 기존에 써온 방법이다. 지방정부에 대부업체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점도 도움이 되었다. 업체가 손해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오래된 악성 부실채권을 기부한 사례가 있다.

세 번째는 지자체를 통하거나 시민에게 직접 후원을 받는 방식이다. 현행법상 지방자치단체는 주빌리은행에 직접 예산을 쓸 수는 없다. 예를 들어 A시가 투입한 예산이 주빌리은행을 거쳐 A시민의 부채를 탕감해주었다면 일종의 유권자 매수로 간주되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 2014년 9월부터 빚 탕감 프로젝트에 뛰어든 성남시는 모금 독려 방식으로 우회했다. 3279만원을 종교계 등에서 모금 독려해 486명의 빚 33억원을 소각했다(2015년 1월 기준). ‘탕감 효율’로 따지면 100배가 넘는 셈이다. 서울시도 캠페인을 함께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참여를 검토 중이다. 주빌리은행은 계좌를 열고 직접 시민 후원도 받고 있다.

세 가지가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모델인가?
간단치 않다. 우선 주빌리은행이 사들이려는 채권은 소멸시효 5년이 지난 장기 부실채권이다. 그 기간에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가 5년이 지난 뒤 원금의 7%라도 자발적으로 갚으리라고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채무자의 선의에 기대는 ‘자발적 상환 모델’은 효과가 불투명하다.

대부업체의 채권 기부 모델은 어떨까. 주빌리은행은 출범 당일인 8월27일 1983명의 채권을 기부받아 소각했다. 출범 뒤 증권사 한 곳에서도 10억원가량의 채권을 기부받았다. 하지만 채권 기부 압력 역시 대형 대부업체에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보장이 없다. 주빌리은행이 유력 대부업체인 ㄹ업체에 기부 의사를 타진해보았지만 거절당했다. 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채권 매각이야 거래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겠지만(주빌리은행이 채권시장에서 사들이는 것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의미), 업계에서 기부하려는 의향은 크지 않은 것 같다”라고 전했다.

 

ⓒEPA2012년 11월 미국 ‘월가 점령 시위’에 참여한 이들(위)은 채권자에게서 채권을 사들여 소각하는 ‘롤링주빌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남는 것은 결국 시민 모금인가?
그렇다. 제윤경 이사는 “단체를 만든 가장 본질적인 목적은 캠페인이다”라고 말했다. 채무자들에게 ‘당신만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져서 도움을 구하도록 독려하는 게 주빌리은행의 목표다. 이를 통해 사회에 만연한 ‘채무자를 향한 비난’의 흐름을 돌리자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7% 상환’이라는 수치도 하나의 상징이다. “오랫동안 채무자를 힘들게 하는 부실채권이 정작 얼마나 헐값에 거래되는지 눈에 띄게 보여주겠다”라는 캠페인 성격이 크다.

채권 소각이 제한적으로 이뤄지더라도,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는 문제 제기가 여전히 있을 수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연체가 아무리 길어졌다고 해도 갚을 능력과 재산이 있으면 갚는 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주빌리은행은 채무자만큼이나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과 소득수준이 낮은 취약 계층일수록 채무의 덫에 잘 걸려든다.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과잉 대출을 해준 채권자도 채무자만큼이나 책임을 져야 하며, 현재의 ‘약탈적 대출시장’에서는 채무자의 고통이 비대칭적으로 크다는 것이 주빌리은행의 논리다. 부채 탕감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면, 한계 계층 채무자가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종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적 효용을 찾을 수도 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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