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정방폭포에는 “서불이 왔다감(徐市過之)”이라는 각자(刻子)가 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가 불로장생의 명약이 있다는 봉래산을 찾기 위해 동남동녀 3000명과 함께 우리나라 방향으로 탐사단을 보냈는데, 그 우두머리인 서불이 제주도에 들러 이 글을 새겼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IA는 AI와 달리 인간을 판단의 주체로 인정하고, 영화 <아이언맨>의 슈트(위)처럼 인간의 능력치를 끌어올린다.
죽지 않고 오래 살며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을 반신(半神) 혹은 인신(人神)이라 하며 동경하는 태도는 많은 문화권에서 등장한다. 오늘날 극장가를 지배하는 슈퍼히어로도 이러한 맥락에 닿아 있다.

현대 로봇공학과 인공지능 기술도 궁극으로는 인간의 강화를 지향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개념이 IA(Intelligence Augmentation ·지능 확장)다. IA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 지능의 대안으로 개발되던 AI(인공지능)와 달리, 인간의 능력 자체의 증강에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등 인공적 주체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판단을 내리는 대신, 인공지능보다 더 복잡다단한 맥락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을 판단의 주체로 인정하고, 기계적 장치나 알고리즘 등 인간의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역량을 증강(augment)하는 데 집중한다.

미국 국방고등연구원(DARPA)이 개발 중인 ‘직접신경 인터페이스(DNI)’가 대표 사례다. 인간 뇌의 시각 피질을 통해 직접 시각 이미지를 주입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구현되면 외부 디스플레이 기기가 없어도 사진이나 동영상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꿈과 환영, 그리고 현실이 뒤섞인,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 속 세상이 현실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엑소 스켈레톤(Exo-skeleton·외골격)’으로 대표되는 신체 강화도 IA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신불수인 축구선수에게 인공 발을 달아주거나, 더 무거운 걸 들 수 있도록 신체 근육을 강화한, ‘아이언맨 슈트’ 등으로 응용되기도 하는 기술이다. 미래형 군인 양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방위산업에서 특히 주목하는 기술이다.

 

ⓒAP Photo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 대학의 공학 학생이 발명한 ‘타이탄 팔’. 20131206
생물화학 물질을 활용해 인지능력을 강화하는 의약품인 누트로픽스(Nootropics)나 유전자 치료(Gene Therapy)도 IA의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인간의 기억력을 증진시키거나, 어두운 밤이나 깊은 바닷속에서도 시력을 향상시키는 등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경제 자본을 신체 자본으로 전환시킬 IA 기술

뇌와 사물의 연결을 통해, 인간의 신체 없이 사물만으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이미 검증되었다. 뇌가 감각을 느낄 때의 특정 전기신호 패턴을 읽어낸 후, 신발 바닥을 통해 땅바닥의 촉감을 느끼는 식이다. 디지털 기반의 전기신호로 구성된 인터넷이 인간의 뇌와 연결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 인간이 곧바로 연결되는 것이다. 인류가 꿈꿔오던 반신(半神)이 현실화되는 순간이다.

일련의 기술이 실현될 때 우생학의 부활은 심각한 걱정거리다. 권력이나 자본을 가진 소수는 인간 역량의 증강을 가장 먼저 누릴 가능성이 높다. 경제 자본이 이제는 신체 자본으로 전환되고, 이것이 다시 경제 자본과 문화 자본을 현격하게 증대시킨다. 반신과 머글(Muggle·보통 인간)로 나뉜, 새로운 신분제가 도래한다. 수백 년간 많은 이들이 피를 뿌려가며 구축해온 민주주의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위협받게 된다.

물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하지만 강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꽤 오래된 것이며, IA라는 큰 흐름을 타고 발전 중인 기술이 인간을 무서운 속도로 재발명해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재발명된 인간이 살아갈 미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일까? 어쩌면 전 인류가 함께 핵을 통제해왔던 것처럼, 인간의 재발명 과정을 엄격히 통제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자명 이종대 (IT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