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산업의 기본 철학은 개방과 공개 그리고 공유다. 하지만 인터넷의 이러한 개방·공개·공유의 철학을 정부나 기득권 세력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신뢰할 만한 정보인지 아닌지를,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절하게 걸러야 하는 것도 정보화 시대의 그늘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세 모자 성폭행 사건’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전모가 드러난 과정을 보면, ‘훈련받은 언론’이 어떤 구실을 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정보와 주장의 홍수 속에서 ‘누군가’ 사실 확인과 검증을 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을 달기 힘들다.

문제는 그 ‘누군가’가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 상당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단순히 개인은 그런 일을 담당할 수 없다거나 특정 조직이나 기업만이 그 구실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독립 저널리스트들의 출현은 전 세계적 현상이며, 그들의 활약은 기성 언론 조직의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운영 방식에 큰 자극을 준다.

그런데 유독 한국 정부는 ‘독립 저널리스트’들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광우병 촛불집회나 미네르바 사태,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 등을 거치면서 인터넷 정보 유통을 ‘괴담’ ‘중독’ ‘악플’이라 지칭하며 통제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결국은 위헌 판정이 난, 아무런 실효도 없었던 인터넷실명제 실시가 대표 사례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화면 갈무리인터넷을 달궜던 ‘세 모자 성폭행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전모가 드러났다.
언론 통폐합 이후 한국의 퇴행적인 언론 산업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기성 언론 조직들도 새로운 ‘언론’ 세력의 등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언론사에 대한 등록 기준을 강화하고 법으로 언론을 규율하려는 시도에 대해 두 손 들고 환영하는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기성 언론인들이어서다. 결국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저널리즘의 독립성이라는 기본마저 스스로 저버리는 양상이다. 최근 주목되는 인터넷 영상 제작자(크리에이터)들도 등록 요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기성 언론 사이에서 나온다 하니 이쯤 되면 ‘말할 수 있는 자격증’을 정부로부터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문체부에 등록된 인터넷 신문사 5950개

문화체육관광부는 8월21일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 제2조에 있는 인터넷 신문 등록 요건을 현행 ‘취재 인력 2명 이상을 포함한 취재 및 편집 인력 3명 이상’에서 ‘취재 인력 3명 이상을 포함한 취재 및 편집 인력 5명 이상’으로 바꾸고, 인터넷 신문 사업자에게 취재 및 편집 담당자의 상시 고용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국민연금·건강보험·산재보험 중 한 가지 이상의 가입내역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이미 등록돼 있는 인터넷 신문의 경우도 소급 적용되어 등록 조건을 맞출 수 있도록 1년 유예 기간을 둘 예정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인터넷 신문 1776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1~4인을 고용한 인터넷 신문사는 687개사로 38.68%였다. 문체부에 등록된 인터넷 신문사(인터넷 뉴스 서비스 사업자 200여 개 포함)가 2014년 기준 5950개인 걸로 어림하면 소규모 인터넷 신문사 약 2300개가 조직을 확대하거나 등록 취소를 감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작은 미디어들이 광고와 협찬을 요구하며 기업과 지자체를 협박하는 것이나 어뷰징 기사를 쏟아내는 문제는 별도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다만 이처럼 인터넷 신문 등록 요건을 강화하고 처벌 조항을 공표하는 것만으로도 인터넷 신문을 통한 저널리즘 및 정보 유통을 꿈꾸는 수많은 독립 저널리스트들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위정자들은 어쩌면 언론사 간의 밥그릇 싸움을 부추겨 언론 전반의 신뢰성에 타격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세월호 유족들이 대형 언론사들을 거부하고 ‘아프리카TV BJ’만 현장 취재를 허락한 이유가 무엇이었겠나. ‘기레기’는 언론사 종사자의 수와 관련 없다.

기자명 명승은 (벤처스퀘어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