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경원선 기공식에 얽힌 ‘미스터리’

“5·24 조치 재검토할 때 되었다”

아무리 봐도 어색했다. 전체 구간이 아니고 남쪽 구간만 잇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대통령이 나서서 주관할 필요가 있었을까. 지난 6월25일자 국토교통부·통일부 공동 보도자료에 나와 있는 기공식 예정일자는 7월 말이었다. 자료에는 나오지 않지만 주관자도 애초에 국무총리로 돼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8월5일로 늦춰졌고, 대통령 주관 행사로 격상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8월5일 오전 강원도 철원에서 있었던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 기공식 얘기다. 8월20일 이후 남북 간에 전개된 일련의 상황들을 이해하려면 이날의 기공식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야 한다.

경원선의 남쪽 구간만이라도 잇자는 제안은 금년 초 통일준비위 업무 보고 때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보고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북 관계는 사실 절벽에 가까웠다. 지난해 10월의 1차 고위급 회담이 10월 말, 11월 초의 2차 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무산된 후 북한은 남한 측의 대화 제의를 철저히 묵살했다. 그렇다고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인 올해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더구나 대통령 임기 절반을 넘어서는 해이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게 올해 초의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 구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통일부 제공8월22일 남측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북측의 김양건 대남 담당 비서·황병서 총정치국장(오른쪽부터)이 남북 고위급 회담에 나섰다.

 


이 사업은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공식 화답함으로써 일사천리의 과정을 밟게 된다.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국토부가 전문기관의 기술조사 용역을 실시했고, 5월26일 국무회의에서 경원선 복원계획이 마련됐다. 그리고 6월25일 제273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는 남측 구간 복원사업에 대해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지원하기로 확정했다.

경원선 남쪽 구간 중 신탄리와 백마고지 구간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연결됐고 백마고지역에서 군사분계선까지 11.7㎞만 남았다. 이 중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백마고지~월정리 구간인 9.3㎞뿐이고 남방한계선에서 군사분계선 사이 2.4㎞와 북측 구간은 북한과 협의해야 한다. 그래서 1단계로 9.3㎞(사업비 1291억원)를 복원하면서 DMZ 및 북측 구간과 관련해 북한과 협의할 계획이었다. 이것이 대략 6월 중순까지의 상황이다. 그런데 그 뒤에 극적인 상황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북한의 호응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측은 심지어 남측 구간 건설을 위한 기공식에 북측의 해당 분야 고위급 인사(건설상 또는 내각 총리)가 방문할 수 있다는 언질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당연히 정부에서는 소동이 벌어졌다. 기공식 계획을 전면 수정하는 한편 북측 인사를 초청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행사 일정이 7월 말에서 8월5일로, 행사 성격이 국무총리 주관 행사에서 대통령 주관 행사로 변경된 내막이다. 7월 중순 이후 북측에 대한 초청장이 비공식으로 발부됐고 북측은 이를 접수했다. 기공식이 열리는 8월5일 깜짝쇼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AP Photo평양 외곽의 농촌 풍경.

 


6월 중순부터 시작된 남북한의 밀월기에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슈가 있다. 바로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월 통일대박론을 터뜨린 이후 갈고닦은 ‘도농복합단지 구상’이다. 일명 ‘북한판 새마을사업’ 또는 ‘새마을사업 Ⅱ’ 구상으로 불린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구상이 구체성을 띠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28일 드레스덴 선언부터였다.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공동 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세 가지 원칙이 세워졌다. 그 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가 결성됐다. 특히 지난해 10월13일에 있었던 제2차 회의는 대북정책과 관련한 백화제방식 아이디어 분출로 주목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판 새마을운동’

그런데 드레스덴 선언과 이 회의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대통령이 유달리 집착하는 개념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북한 농촌에 도농복합단지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드레스덴 선언에서 세부 실천사항으로 제시됐던 이 구상이 2차 회의에서는 대통령의 모두 발언 때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올해 1월 통일부가 발표한 민생·환경·문화의 3개 소통로 구상에서도 역시 문화를 제외한 민생과 환경은 바로 도농복합단지, 즉 북한판 새마을운동 사업으로 연결된다. 급기야 7월26일 통일부는 과거 쌀·비료 지원에 초점을 맞추던 남북협력기금의 사용 기준을 민생개발 협력 사업 중심으로 바꾸고, 이를 다시 보건의료 협력, 농·축산 협력, 산림·환경 협력 등으로 세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한 사업이 바로 북한판 새마을운동, 즉 도농복합단지 구상인 것이다. 1970년대 농촌 새마을운동을 보면 주택개량·산림녹화·도로·상하수도·보건의료 사업 등과 함께 농어촌 수익 증대 사업까지 동시에 진행했다.

 

북한의 4군데가 도농복합단지 협력 대상으로 거론된다.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이점은 분명히 있다. 종전의 쌀·비료 지원이 퍼주기 논란이나 피로증, 유엔의 대북 제재 등과 마찰을 빚을 소지가 있는 데 비해 이 프로젝트는 물품 지원보다는 개발 협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 분란의 소지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부의 기획안대로라면, 남쪽의 민간단체가 북쪽 파트너의 협력을 얻어 북한 마을에 도농복합단지를 조성하면 정부는 단지당 20억~30억원을 지원한다. 또 남북 관계의 진전에 따라 대규모의 복합영농단지 조성도 구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상에 맹점이 있다. 이 사업은 남쪽의 민간단체나 기업이 북한의 농촌에 직접 들어가서 일정 기간을 같이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만큼 남북 간에 신뢰가 구축되어야 가능한 사업인데, 이명박 정권 이래 최악의 남북 관계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경원선을 북한까지 연결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이 사업 역시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변화는 올해 3월부터 시작됐다. 3월은 각 정부 부처의 한 해 업무 보고가 끝나고, 새해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달이다. 정부의 대북 자세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통일부에서 나타났다. 전임 류길재 장관이 학자 출신으로서의 한계에 머물렀다면 신임 홍용표 장관은 그것을 뛰어넘는 유연함을 보여줬다. 당국 간의 공식 라인에만 의지하지 않는 양상이었다. 경원선 복원의 주관 부서인 국토교통부 역시 3월부터 북측과의 간접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우리 정부의 자세가 달라지자 북측의 변화도 감지됐다.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경원선 북측 구간 연결과 관련해 우리 측이 생각한 것은 원산까지였다. 그런데 이를 마식령 스키장까지 연장하자고 제안한 것은 북측이었다. 경원선 복원이 가능해지면, 박근혜 대통령의 또 하나의 숙원 사업인 DMZ 생태평화공원이 자연스럽게 철원 근처에 들어설 수 있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역시 현실감을 갖게 된다. 2018년의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남북협력을 생각하면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과제이다. 경원선이 연결되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선수단과 관광단이 그것을 타고 마식령 스키장을 관광할 수 있다. 이 같은 협력을 토대로 한두 개 종목을 백두산에서 분산 개최하는 일은 2022년 중국이 개최하는 동계올림픽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중국은 2022년 동계올림픽을 대부분 장백산에서 치름으로써 ‘장백산 공정’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따라서 남북이 힘을 합쳐 미리 ‘백두산’을 알린다는 의미가 있다.

경원선 문제에서 돌파구가 열리자 이산가족 문제 역시 의견 조율이 가능해졌다. 조건부나 대가를 따지기에 앞서 이미 고령인 이산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므로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할 인도적 사업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연합뉴스8월5일 박근혜 대통령이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역으로 가는 경원선 열차에 탑승했다.

 


도농복합단지 구상 역시 애초에 우리 측이 제안한 것에 대해 북한이 수정 제의하는 식이었다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우리 측의 원래 구상은 500세대 규모로 두 군데를 조성해주는 것이었다. 북측은 이에 대해 200세대 규모로 줄이는 대신 이미 발표한 19개 개발구 중에서 4~5군데를 시범단지로 하는 방안을 수정 제안했다고 한다. 첫 번째가 개성공단 배후지역이다. 남북 근로자 5만4000명이 사용하는 물품을 생산하는 것만으로 수익성이 보장되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는 함경북도 청진경제개발구다. 이곳은 단천·무산 등의 자원 매장지와 김책제철소, 청진항을 연계해서 자원개발구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가 원산의 현동공업개발구다. 현동은 금강산 관광지구와 백두산 관광지구를 연결하는 동해안 관광 벨트의 중심지다. 관광산업과 연계한 민속공예품 생산기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이 함경북도 어랑농업개발구다. 어랑은 19개 개발구 가운데 북청, 숙천과 함께 3대 농업개발구로 분류돼 있는 곳이다. 이미 농업과학 관련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어서 과수농업단지에 적합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왼쪽 지도 참조). 북측이 제시한 이 네 지역의 특징은 기존 지역개발구와의 연계 개발이나 맞춤형 개발이 가능하고, 남측 민간 중소기업이 북측 파트너와 사업을 진행하면서 BOT 방식(도로·항만·교량 등의 인프라를 건조한 시공사가 일정 기간 이를 운영해 투자비를 회수한 뒤 발주처에 넘겨주는 수주 방식)으로 상환하게 함으로써 퍼주기 논란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민간이 할 수 없는 인프라 개발은 정부에서 뒷받침하면 된다.

다시 지뢰 사건 대응의 미스터리를 살펴보면…

지난해 드레스덴 선언 이후 초지일관 도농복합단지 구상을 밀어붙여온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부친의 유지인 ‘새마을운동’을 북한 농촌에서 구현한다는 점에서 개인적 감회와 기대가 남달랐으리라 여겨진다. 바로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후에 전개된 일들을 생각해보면 그림이 좀 더 분명해진다.

먼저 8월4일 경기도 파주 인근 철책선 바깥에서 터진 지뢰 사건과 그다음 날(8월5일) 정부가 보인 이상한 대응의 상관관계다. 8월5일은 남북 관계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가 한꺼번에 진행된 날이다.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평양을 향해 출발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강원도 철원에서 경원선 남측 구간 기공식에 참석했다. 또 예정대로라면 북측에서 고위급 인사가 내려올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전날인 8월4일 파주 인근 철책선 안에서 지뢰가 터져 우리 측 부사관 두 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며칠에 걸친 조사 결과 북측 목함지뢰라고 판명이 났다고 하지만, 올해 들어 몇 차례 반복되는 공교로운 사건이었다. 즉, 남북 간에 뭔가 성사가 되려는 기색이 보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파투가 나곤 해왔다는 것이 일각의 갸웃하는 시각이다. 따라서 지뢰 사건 하루 뒤 정부가 보인 수수께끼 같은 모습도 이해가 된다. 대통령은 예정대로 기공식을 거행하고 통일부는 북측에 대화를 촉구하는 전통문을 보냈다. 지뢰 사건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남북 간 흐름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조사 결과 북측의 목함지뢰라고 판명된 이상 대응은 불가피했다. 결국 대북 확성기 공세가 펼쳐지고, 북측은 8월20일 두 차례에 걸쳐서 대남 포사격을 하며 판을 키웠다. 그런데 유심히 볼 것은 두 차례 모두 의도적으로 사람이 없는 비무장지대에 발사했고, 동시에 대화파로 분류되는 김양건 대남 담당 비서가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어가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왔다는 점이다. 내용도 눈에 띄고 군부가 주도할 법한 국면에 그가 등장하는 형식도 이례적이다. 결국 북한의 의도는 처음부터 김양건을 내세워 ‘대화를 통한 사태 수습과 관계 개선의 출로 열기’에 방점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남쪽이 첫날의 제안을 무시하자 다음 날 이번에는 개인 서한까지 보내며 대화를 재차 촉구한 것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무박4일간의 밀고 당기기라는 진통을 겪은 후 북측의 유감 표명이 나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있는 그대로라면 북측의 유감 표명이 단지 남쪽의 원칙적이고 강경한 입장에 눌렸기 때문이라고만 보는 것은 아전인수에 가깝다. 8월4일 지뢰 사건 이전까지 남북이 같이 꾸어온 꿈이 없었다면 북측이 그렇게 유연하게 나오지 않았으리라는 게 중론이다. 8월27일 김양건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대담에서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은 이번 사태에 대한 북측의 시각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남과 북은 애당초 이번과 같은 비정상적 상태에 말려들지 말았어야 한다. 북남 관계의 발전을 바라지 않는 세력들이 존재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에 대해 각성 있게 대하여야 한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