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절망, 30대의 방황, 40대의 도전을 담은 진솔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책이 있다. 1952년에 태어난 이 책의 주인공은 22세 때 “아파도 아파할 시간이 없었다”. 26세에 “최고 권력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었고, 28세 때는 “청춘의 끝자락에서 고통의 문”이 열리는 것을 알았다. 29세 때는 “절망과 울분 그리고 외로움의 나날”을 겪었다. 30세에 “어머니의 유지”를 이었고 34세에 “독한 마음”을 먹었다. 저자는 ‘박근혜 연구회’이고 책이 나온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이던 2012년 가을, 대통령 선거 석 달 전이다. 과거 박근혜 후보가 썼던 일기와 “2004년부터 시작한 싸이월드의 다이어리”에 대한 분석 등이 담겨 있다.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재단사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제 몸에 불을 질렀을 때, 고작 22살이었다. 이 무렵 박근혜 대통령의 나이는 18살이었고, 4년 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며 “아파도 아파할 시간”이 없는 날들을 보낸다. 박종철은 1964년생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띠동갑이다. 제5공화국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불법 연행되어 고문을 당한 뒤에 숨졌다. 당시 경찰은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고 했는데, 그때 박종철의 나이가 23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파도 아파할 시간”이 없었던 때와 시기가 비슷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제공〈/font〉〈/div〉대공분실 안 가로 123㎝, 세로 74㎝, 높이 57㎝의 욕조에서 대학생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다 숨졌다. 위는 당시 현장검증 장면.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바다에서 침몰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이 바다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절망하고 좌절하는 스무 살이 될 기회마저 사라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었다. 어른들이 “가만히 있으라” 하니 가만히 있었던 착한 학생들이다. 세월호 침몰 당일 7시간을 어디서 보냈는지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10대 시절을 청와대에서 보냈다.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의 저자 소개에는 대통령의 10대가 이렇게 소개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부모님의 국정 운영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국가 운영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난나〈/font〉〈/div〉 〈a target=

전태일과 박종철은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고, 단원고 학생들은 스무 살이 되지도 못했다. 그 기간을 무사히 절망하고 방황하고 도전한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의 절반을 보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포털에서 ‘박근혜’라고 검색했을 때, 가장 최근 뉴스는 “박근혜 대통령 손 피하는 모습 영상”이다. 그다음 기사는 “벌금·과태료 세수 부족 메우나? 박근혜 정부 2년, 6조 거둬”가 강조되어 있다. 바로 밑 기사 두 개의 제목은 각각 “산케이 유죄 받으면 박근혜 7시간 의혹, 모두 심의 대상”이고, “박근혜 대통령 비방 글 올린 누리꾼 추적 나선 경찰”이다.

영웅 스토리에서 결국 삭제되는 장면과 사람들

영웅신화나 설화에는 공식이 있다. 영웅은 출생이 남다르다. 알에서 태어나거나 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영웅은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힘이 아주 세거나, 두뇌가 명석하다. 그러면서도 위기와 시련을 겪는데, 위기와 시련을 주는 쪽이 외부에 있기도 하지만 간혹 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마침내 영웅은 조력자를 만나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자가 된다. 영웅 스토리에서 결국 삭제되는 장면들은 전태일, 박종철, 세월호, 김연아의 손…. 이런 종류의 사람들과 이야기다.

나는 바닷가에서 태어났다. 이름에 영웅과 수컷을 뜻하는 단어 ‘웅’이 들어간다. 아버지가 탯줄을 바닷가에 던졌다고 한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처럼 민주화에 기여한 바 없고, 노동으로 ‘산업화’에 참여한 적이 없다. 스무 살 때 등단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 8년 만에 등단했다. 32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994년에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가입하고 1997년 12월 정치에 입문했다. 나도 가끔 생각한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기자명 백상웅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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