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하는 안보만 따지자면 이순신보다 원균이 더 그럴듯하다. 지금의 합참의장 격인 도원수 권율이 이순신에게 “부산의 왜군을 치라”고 했을 때 이순신은 “안 된다”고 했다. 이순신을 모함하며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그제야 수군 단독으로 왜군을 치는 것이 어렵다고 한 이순신이 옳았음을 알았다. 그러나 자기가 한 말 때문에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정벌에 나섰다가 죽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7년6개월 동안 보수 정치권력은 항상 원균과 같은 ‘전투형 군인’을 독려해왔다. 군대라는 용어에 이미 전투를 하는 조직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여기에 또 전투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역전앞’ ‘족발’처럼 동어반복이다. 이런 무의미한 동어반복은 북한군에게 전투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한국군 일선 전투원들에게는 최전방으로 나가 적극 싸우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오랜 남북 대치 상황에서 나름 축적해온 군사 대비의 합리성이 이 대목에서 붕괴되고, 원균처럼 한국군은 패배를 거듭하게 된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2010년 3월의 천안함 사건, 같은 해 11월의 연평도 포격사건, 그리고 최근 전방에서 벌어진 북한의 지뢰 도발사건의 공통점은, 한국군이 북한에 기습을 당해 피해를 입고 제대로 반격하지 못한 전투라는 점이다. 반대 사례로는 2009년 11월 대청도에서 우리가 북한 함정을 격파한 대청해전이 꼽히는 정도다. 그 외에는 실제 교전은 물론이고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으로 전략적 수준에서 도발을 감행하거나 사이버전으로 우리의 기간망을 교란하면, 수세적 방어 이상의 어떤 대책을 세우기도 어려운 패배가 이어졌다. 그 결과 국가의 안전보장은 훨씬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요구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일련의 상황 전개는 보수 정권이 국가안보에 성공하고 있는지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한다. 한국군의 기술과 장비로 달성하기 어려운 북한에 대한 ‘적극적·능동적 억제’, 북한 내에서 남한에 우호적인 세력과 연합해 북한 내부 유격전을 전개한다는 이른바 ‘분란전’ 교리를 채택한 것으로 알려진 ‘제4의 전쟁’,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징후를 포착하면 25분 내에 이를 선제공격으로 제압하고 결과까지 확인한다는 한국형 킬체인(kill-chain) 같은 개념은 사실 군 내부에서조차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들이다. 이렇게 말이 앞서면 우리의 군사 능력을 초월한 과도한 목표를 부여하고, 일선 전투원들에게 과도한 대응을 주문해, 결과적으로 군사적 실패를 자초한다. 권율이 원균에게 내린 무리한 지시가 오늘날 반복되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방산 비리를 통해 확인되었듯이 예산에 비해 방만하고 과도한 무기 도입이 고질적인 사업비 부족으로 이어져 국방 전체가 부실해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징병된 전투원에게 직업군인 수준의 높은 전투 기량을 강요하다 보니 각종 구타와 가혹행위라는 반인권 사건이 속출했다. 이제는 군이 전투 발전은 고사하고 현재의 전투력을 유지하고 관리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 많은 군사 전문가들의 우려다.

전작권 전환 반대 이유 “한국군을 못 믿어서”

이는 국민의 군에 대한 의식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전환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60%가 넘었고,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유세 때 예정대로 돌려받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전작권 전환이 무기한 연기될 즈음의 국민 여론은 51%가 전작권 전환을 반대했다.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를 분석해보면 “한국군을 못 믿어서” 작전권 전환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새로운 이유로 등장하고 있다. 연일 병영 내 사고와 비리, 군의 무능력이 드러나는 걸 본 국민이 “저런 한국군에 작전지휘권을 맡기는 건 불안하다”라는 게 전환 반대 의견의 3분의 1 정도다. 이것은 지난 7년여 동안 보수 정권이 말한 안보 의지라는 게 구체적인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보다 더 후퇴했다는 징후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선동적인 애국주의에 힘입어 집권한 보수 정권이 보여주는,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지나친 과시욕이다. 북한을 압박하고 모멸감을 주기 위한 군사정책을 선호하다 보니 현실성 없는 군사정책이 남발되었다. 예컨대 천안함 사건의 경우 해군이 왜 경계에 실패했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원래 최전방 접적(接敵)수역은 작고 기동성이 뛰어난 고속정이 경비하는 곳인데 왜 대형 함정인 초계함을 투입했느냐 하는 것을 살펴야 한다. 그것은 보수 정권 초기에 공개적으로 북한에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국방부가 공언한 새로운 작전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실효성 없는 과시욕이 궁극적으로 대형 참사로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최고지도자들이 북한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앞세우다 보니 군사적 전문성이 결여되고 전쟁 감수성이 무디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역이 면제된 대통령·비서실장·국무총리·국정원장·안보수석·안보비서관 등등 군대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모르는 사람들이 안보정책의 주류 집단을 형성한 것이 그렇다. 여기에다 군 내부에서도 과거 정권의 엘리트 군인을 제거하고 합동작전에 관한 비전문가들로 합참 조직을 변질시킨 것은 더더욱 치명적이었다. 천안함 사건 당시 대장인 합참의장, 소장인 작전부장, 준장인 작전처장, 대령인 합동작전과장이 합참의 작전부서 근무 경력이 없는 합동작전의 문외한이었다. 전임 한민구 합참의장과 최윤희 현 합참의장은 전방 작전부대의 지휘관 근무 경력조차 없다. 자신이 소속된 군의 작전도 모르는데, 하물며 이들이 합동작전을 지휘·통제한다는 건 애당초 무리였다.

셋째, 역설적으로 보수 정권은 국가 자원을 국방비에 투입하는 데도 인색했다. 군의 임무 수행 수준은 더 높이라고 하면서 돈줄은 막아버렸다. 국방 재원의 배분에서 시스템이 교란되면서 부실과 비리가 만연되는 상황으로 나아갔으나, 보수 정권은 이를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오히려 안보를 앞세운 한탕주의 세력이 국방을 농단하는 것을 방치하거나 조장했다.

넷째, 미군에 대한 의존이 지나쳐서, 한국군이 전장 작전의 판을 짜고 실행하는 능력이 더 퇴보했다. 연평도 포격사건이나 이번 지뢰사건에서도 드러나듯이 군 수뇌부가 미군에게 “쏠까요 말까요”를 물어보고 의존하려는 행태는 미군이 보기에도 비정상적이었다. 전작권 전환 결정으로 모처럼 한국군 내부에서 배양되기 시작한 작전 기획 능력이 보수 정권에 들어와서 다시 퇴보한 것도 한국군이 전장을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잠식해버린 것이다.

이런 사정들을 검토해본다면 안보는 보수가 잘한다는 기존 상식을 수정해야 한다. 오히려 안보를 과도하게 앞세운 결과 합리성이 붕괴되는 원균식의 전투형 군대, 과시적인 행태에 몰두하는 군대를 두고 안보를 잘한다고 착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일이다.

기자명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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