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마침내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을 최종 확정했다. 청정전력계획은 2030년까지 미국 내 발전소의 탄소배출량을 32%까지 줄이는 내용이다. 일부 정치권과 석탄 업계에서는 해당 조치를 무산시키기 위한 전면 행동에 나선 상태다. 이른바 ‘환경 대전’이다.

8월3일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미래와 미래 세대에게 기후변화보다 더 큰 위협은 없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미국이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청정전력계획을 가리켜 ‘범세계적 기후변화 투쟁에 맞서 미국이 취한 가장 중요한 단일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가 예상보다 강화된 규제안을 발표한 것은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정상회의에서 다른 나라들에 탄소 배출 감축을 압박하기 위한 사전 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청정전력계획에 따르면, 미국 50개 주 발전소들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05년 대비 32% 줄여야 한다. 또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비중도 당초 22%에서 28%로 상향 조정된다. 이를 위해 각 주는 2016년까지, 늦어도 2018년까지는 자체 실행 계획을 연방 환경보호청(EPA)에 제출해야 하고, 이런 준비를 거쳐 2022년부터 시행된다.

ⓒAP Photo8월3일 오바마 대통령이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32%까지 줄이는 내용의 ‘청정전력계획’을 발표했다.
각 주의 사정이 다른 만큼 탄소배출량 목표도 다르다. 이를테면 애리조나 주처럼 재생에너지 활용률이 높은 주는 50% 이상 감축해야 한다. 하지만 켄터키·웨스트버지니아·와이오밍 등 석탄 의존도가 높은 주들은 21% 이하로 감축 목표를 정할 수 있게 했다. 또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해 탄소 배출 한도를 채운 주와 남긴 주가 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는 인센티브 제도가 도입됐다.

현재 탄소 배출의 주범은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소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화력발전은 미국 전력의 3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천연가스(30%)는 석탄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절반가량에 그친다. 그 밖에 탄소 배출이 전무한 원자력 19%, 수력 7%, 그리고 풍력 및 태양에너지원이 5%를 각각 차지한다.

계획대로 탄소 감축이 시행되면 석탄 업계가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현재 미국에는 화력발전소 1400여 개가 가동 중인데, 이번 계획이 실현되면 화력발전소 수백 개의 도산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청정전력계획은 지난해 6월 초안이 발표됐다가 그간 공화당과 석탄 업계의 강력한 반발로 차질을 빚었다. 지난 3월 공화당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는 50개 주 주지사들에게 서한을 보내 불복종을 권장했고, 실제로 최소 6개 주에서 보이콧을 선언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6월 연방대법원은 환경보호청이 2011년 발표한 화력발전소 유해가스 배출 제한규정이 주 권한을 일부 침해한다고 판시하면서 오바마 행정부는 초안의 일부를 수정해야 했다.

결국 청정전력계획 최종안은 ‘환경보호청이 주 권한을 침해한다’는 반대 측 논리를 감안해 주별로 탄소 감축 재량권과 신축성을 강화하고, 최종 시행 시기를 2년 늦췄다. 그러면서 탄소배출량 최종 감축 목표를 당초 30%에서 32%로 상향 조정했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셈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기후변화 담당자 폴 블레드소는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하면서 “이번 계획은 규제가 일부 완화되긴 했지만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는 오히려 강화됐다. 기술적으로나 법적으로 전보다 훨씬 옹골차다”라고 평가했다.
 

ⓒAP Photo탄소 배출의 주범은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소다. 사진은 미국 뉴햄프셔 주의 화력발전소.
오바마가 알래스카를 방문하는 까닭

계획을 차질 없이 실천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넘어야 할 장애물은 만만치 않다. 상하 양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결사반대를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공화당 의원이나 주지사 가운데는 석탄산업 의존도가 높은 주 출신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현재 미국 50개 주 가운데 26개 주가 석탄을 생산하는데 와이오밍·웨스트버지니아·켄터키·펜실베이니아·텍사스 등 16개 주의 석탄산업 의존도가 높다. 모든 권한과 수단을 동원해 이번 계획을 저지하겠다고 위협한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켄터키 주 출신이다.

공화당 의회는 ‘의회재검토령(CRA)’에 따라 관보에 게재된 지 60일 안에 표결을 통해 정부 발표안을 무력화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정치 분석가들은 매코넬 원내대표가 의회재검토령에 따라 이번 계획을 지연작전 차원에서 회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청정전력계획 최종안은 1963년에 최초 발효된 청정공기법(Clean Air Act)에 근거한 규제안일 뿐 법은 아니다. 따라서 법원의 판단이나 대통령에 의해 번복되거나 폐기될 수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들은 모두 이번 계획에 거부감을 나타낸 상태다. 유력 주자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기후변화 문제는 주의 권한을 빼앗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라며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내년 11월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계획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반대파들은 각 주의 발전소 탄소배출량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환경보호청이 아닌 주 정부에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3월 하원 청문회에 나온 로런스 트라이브 교수(하버드 로스쿨)는 환경보호청 시행령을 가리켜 “미국 헌법을 불사르는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트라이브 교수는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오바마 대통령의 은사이기도 하다.

현재 웨스트버지니아 주를 비롯해 11개 주에서 환경보호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환경보호청의 규제안이 주 권한을 침해하는지에 대해 연방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겠다고 나섰다. 석탄산업 의존도가 높은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패트릭 모리시 검찰총장은 정치 전문 웹진 〈폴리티코〉를 통해 “환경보호청은 탄소배출량 감축에 대한 특별한 권한이 없는데도 왜 이런 무리한 조치를 취했는지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 달리, 어느 주라도 이번 규제안을 거부할 경우 환경보호청은 해당 발전소에 대해 직접 규제를 가할 수 있다. 환경보호청의 규제 대상은 주가 아닌 발전소인 만큼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어서다. 뉴욕대 로스쿨 리처드 레베스즈 교수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와의 인터뷰에서 “청정전력계획 조치가 시행되면서 소송이 줄을 잇겠지만 (반대파들이) 승리하긴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찬반 양론이 분분한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은 8월 마지막 주에 알래스카를 방문해 북극권 기후변화 문제를 부각할 예정이다. 그는 2009년 집권한 후 국민 개인보험을 담보한 오바마 케어, 동성결혼 합법화, 이란 핵협상 타결 등 국내외 핵심 현안을 잇달아 해결했다. 그런 그가 1년6개월 남은 임기 동안 난제 중의 난제로 꼽히는 탄소배출량 감축 문제까지 해결하는 치적을 쌓을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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