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권을 국민에게 ‘어떻게’ 돌려줄 건데?
‘잘못 던진 폭탄’에 물 건너간 비례대표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각각 ‘오픈 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정치 개혁의 중요한 과제로 내걸었다. 여당은 유권자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유권자의 표심을 의회 구성에 그대로 반영하겠다고 외친다. 8월5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두 제도를 한 테이블에서 일괄 논의하자고 제안하면서, 두 제도의 조합에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명분만 보자면 취사선택과 조합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국민 참여를 보장하는 투명한 공천제도와 유권자의 사표를 방지하고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의 결합이다. 실제로 지난 2월 중앙선관위도 정치권에 두 제도의 도입을 권한 바 있다.
 

ⓒ연합뉴스8월5일 문재인 대표(맨 왼쪽)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새누리당의 ‘오픈 프라이머리’를 한 테이블에서 일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두 제도가 지향하는 정치적 효과와 지형은 다소 상이하다. 공천과 의석 분배는 서로 다른 영역임과 동시에, 연관된 영역이다. 서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양당제·단순다수제인 미국에서 시행된 오픈 프라이머리와 다당제·비례대표제에 뿌리를 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각기 다른 계보를 가진 제도다. 두 제도의 결합을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어떻게’ 돌려줄 건데?

오픈 프라이머리의 핵심은 공천 과정에서 유권자가 직접 정당의 후보 선출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19개 주가 선택한 방식이다. 우리말로 ‘완전국민경선제’로 풀이되는 오픈 프라이머리는 우리에게 아주 낯선 제도는 아니다. 2002년 대선 때 정치권에서 국민참여경선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바 있다. 지난 2월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선거에서도 일반 국민의 참여가 병행되기도 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이 같은 국민참여경선의 전면적인 도입을 의미한다. 그런데 제도 도입의 효과가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원내교섭단체를 이루는 모든 정당이 한꺼번에 시행해야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총선과 대선에 앞서 동일한 날에 경선을 실시하고, 선관위가 경선 관리를 맡는다는 내용의 안을 제시한 바 있다.

역선택 문제 때문이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은 동시에 다른 정당에 속하거나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공천에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소선거구제처럼 각 선거구의 표본이 작을수록 이 같은 ‘작전’은 더 용이할 수 있다. 협소한 표본에서 특정 정당만 오픈 프라이머리를 시행할 경우 결과적으로 선거 전체가 왜곡될 우려도 있다.

제도 자체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현직 의원에게 좀 더 유리하다. 정치 신인은 기존 현직 의원에 비해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가 현저히 부족하다. 진성 당원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정당정치의 본래 목적과도 배치된다.

이 점 때문에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에 적극적인 김무성 대표에게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공천권이라는 리더십의 핵심 요소를 놓는 대신, 공천에 개입하려는 청와대와 친박을 견제할 목적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현역에게 유리한 제도인 만큼 비박계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당의 권력 지형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대신 김무성 대표의 힘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권력의 축을 자연스럽게 당 지도부보다 개별 의원으로 옮아가게 한다. 권력을 유권자가 획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유권자가 정당 대신 의원에게 권력을 전가하는 셈이다. 정당이 스스로 공천을 좌우할 수 없게 되면서, 전략적인 안배도 불가능하다. 선거와 의정 활동 전반에서 ‘개인’이 돋보이는 정치 지형으로 옮아가게 한다. 자연히 제도의 지향점 자체가 정당정치의 강화를 꾀하는 권역별 비례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유권자 표심을 의회 구성에 반영한다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다당제와 비례성 확보에 초점을 맞춘다. 제도가 시행되는 원리는 다소 복잡하다. 권역별로 의석수를 할당해두고,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조정하는 제도다. 야당에서 주장하는 ‘독일식’ 권역별 비례제를 도입할 경우, 권역별 정당 득표에 맞춰 의석수를 조정한다(〈시사IN〉 제390호 ‘판도라의 상자 선관위가 열다’ 기사 참조). 결국 지역구 의원 개개인보다는 다양하게 분파된 ‘정당’에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하기 쉽다. 인물 선거를 병행하지만, 최종 의석수는 정당 지지율이 결정한다.
 

ⓒ연합뉴스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의 현수막. 새누리당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정치 개혁의 방법으로 내세운다.
오픈 프라이머리와 달리, 권역별 비례대표는 당의 리더십에 더 큰 힘을 부과한다. 유권자의 열망에 따라 다당제가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각 유권자가 각 정당의 정책과 노선을 선택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도 7월26일 권역별 비례제 도입과 의원 정수 확대를 주장하며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다당제를 활성화시키자고 하는 것은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제1야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다당제를 확보하는 것보다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남 지역에서 의석을 확보해 새누리당의 영남패권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지금 같은 승자독식 구도에서는 영남 지역 유권자가 야권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모두 사표가 되어버린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제1야당에 영남 지역의 교두보와 같다.

반면 새누리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찬성했다가는 지역구 의석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역 의원 처지에서 오픈 프라이머리는 반갑지만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부담스럽다. 이 때문에 여당 내에서는 최소한 현상 유지, 아니면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고 지역구를 늘리자는 기류가 강하다. 김무성 대표가 야당에 오픈 프라이머리를 제안하면서도, 비례대표 숫자는 늘릴 수 없다며 버티는 것도 이런 당내 여론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오픈 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함께 실시하자고 ‘빅딜’을 먼저 제안한 것도 새누리당의 이런 기류를 감안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기묘한 동거’에 대한 회의론

문제는 지향점이 다른 두 제도가 실제로 결합이 가능한가, 그리고 결합했을 때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느냐다.

변수가 많다. 세부 조율에 따라 제도의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의석수가 어떻게 나뉘는지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질 수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모든 지역구에 100% 완전국민경선을 도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는 일정 정도 전략공천 비율을 설정하는 방식을 궁리 중이고, 여당 내에서도 완전국민경선 대신 당내 선거를 뒤섞는 혼합형에 대한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이미 국민경선제는 모바일 투표 논란과 역선택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전력도 있다. 야당의 경우 계파별로 국민참여경선에 대한 시각차도 상당한 데다 “원칙적으로 정당정치에 위배된다”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또 다른 변수도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제가 당장 도입되더라도, 현행 소선거구제 아래서 시행할 수밖에 없다. 246개 지역구에서 완전국민경선을 치르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게 소요된다. 경선 관리를 선관위가 직접 맡는 안이 나오기도 했지만, 정당의 내부 경선을 선관위가 맡는 것에 반대 의견이 많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사정은 비슷하다. 권역별 비례대표는 다당제의 가능성을 높인다. 정당 간 연정이나 비공식적인 협력이 가능해야 정부가 원하는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다. 결국 권역별 비례제 도입으로 권력구조 전반이 바뀔 공산도 크다. 현행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등장할 수 있다. 개헌만큼이나 큰 효과를 갖는 변화다.

결국 권역별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 대통령단임제, 완전국민경선이 함께 시행될 경우 각각 효과가 다른 제도끼리 ‘기묘한 동거’가 이뤄진다. 상호 충돌을 피하기 위해 권역별 비례제와 오픈 프라이머리의 일부만 수용할 경우 제도 도입의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8월6일 김무성 대표가 문재인 대표의 ‘빅딜’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제도 도입의 공은 국회 정치개혁 특별위원회로 넘어갔다. 정치권에서는 낙관론보다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조율해야 하는 이슈는 많지만, 시간이 모자란다. 당장 20대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 기준도 8월13일까지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지향점 다른 두 제도가 보여주는 딜레마

청와대의 반응도 변수 중 하나다. 공식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의원들 사이에서 오픈 프라이머리를 지지하는 발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나마 청와대 정무특보인 김재원 의원이 8월7일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려면 조금 더 일찍 준비했어야 한다”라며 늦은 감이 있다는 의견을 표한 정도다. 청와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해 오픈 프라이머리의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빅딜도 결국 청와대에서 실현 불가능한 옵션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향점이 다른 두 제도가 함께 논의되는 것 자체가 한국 정당정치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정당인가 인물인가, 양당제인가 다당제인가. 어떤 구조에 어떻게 더 힘을 실을 것인지가 1987년 개헌 이후 계속 제기되어온 문제다.

현재 논의 중인 두 제도를 각각 일부만 취해서 결합하는 것은 결국 이 딜레마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일종의 ‘유예’와 같다. 미적미적하다 결론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로 인해 가장 만족스러운 쪽은 유권자보다는 현상 유지를 바라는 상당수 현역 의원들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