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형사 캐릭터는 〈공공의 적〉에 나온 강철중이었다. 적당히 부패한 경찰이지만 권력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래도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을 막무가내로 부둥켜안는 사내. 후속작들은 지지부진했지만 〈공공의 적〉은 강철중 캐릭터 하나만으로도 만점을 받을 만했다. 그로부터 13년 만에 강철중 못지않은 형사 서도철(황정민)을 만났다. 잠깐 도움을 받은 트럭 운전사가 대기업 건물 비상계단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을 알게 된 서도철은 끝까지 파고든다. 관할권도, 상부의 압력도, 뇌물도 통하지 않는다. 재벌과 내통하며 적당히 넘어가려는 상황을 알게 된 서도철은 내뱉는다. “경찰이 가오가 있지. 쪽팔리지도 않냐!”

광역수사대의 서도철은 적당한 속물이다. 강철중처럼 사소한 뇌물을 받거나 범죄자들을 털어 돈을 챙기지는 않는다. 나쁜 놈이 있으면 법을 무시하고 두들겨 패는 정도다. 그리고 승진해서 본청에 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강철중과 똑같이,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재벌 3세인 조태오(유아인)를 만났을 때, 서도철은 머리를 숙이지도 무작정 맞붙지도 않는다. 지켜볼 뿐이다. 조태오가 막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감을 믿고 달려든다. 막대한 뇌물로 흔들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쪽팔리지 않게 살아가자.’ 그것이 서도철의 규칙이다.


다행스럽게도 서도철에게는 믿음직스러운 팀과 가족이 있다. 사회복지사인 아내는 서도철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뇌물을 단호하게 물리친 아내는 서도철을 찾아온다. 따진다. 각자 일은 각자 알아서 하자고. 그리고 덧붙인다. 돈을 보고 순간이나마 흔들렸다고. 쪽팔렸다고. 서도철도 아내도 평범한 사람이다. 권력과 돈이 좋다는 것은 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선을 지키면서 살아간다. 〈베테랑〉이 흥미진진하면서도 가슴을 쿡쿡 찔러대는 이유는 사소하지만 날카로운 디테일이 곳곳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강철중에 비해 서도철이 더 현실적이고 공감이 가는 이유는 아내만이 아니라 팀 전체와 수많은 인간관계가 얽혀들면서 캐릭터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호쾌하고 후련한 ‘류승완표’ 액션 영화

류승완의 〈베테랑〉은 호쾌하고 후련하다. 재벌 3세의 악행. 그를 뒤쫓는 말단 형사. 간단명료한 구도 속에서 재기 넘치는 대사와 화끈하며 합이 딱딱 맞는 액션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러저러하게 재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핵심을 틀어쥐고 코미디와 액션으로 좌충우돌한다. 모든 것이 풍성하고 넘치는데도 직선으로 돌진하며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류승완의 이토록 신나는 영화를 만난 게 언제였던가. 〈부당거래〉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베테랑〉의 질주에 더욱 끌린다. 류승완의 영화는 역시 나오는 대로 말을 뱉고, 치고받아야 한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바닥에서 치열하게 구르며 얻어낸 리얼리티가 〈베테랑〉에는 진하게 배어 있다. 한마디로 ‘가오’다. 간만에 가오가 있는 영화를 만났다.

물론 〈베테랑〉의 해피엔딩은 판타지다. 재벌이 전직 경찰청장을 오른팔로 부리며 압박해 들어오고, 검찰과 경찰까지 마음대로 휘두를 때 일개 형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이토록 멋지게 재벌의 악행을 단죄하는 일은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영화, 픽션의 힘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하기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애절한 바람을 담아 당대의 영웅을 만들어내는 것. 거대한 시스템과 싸우다가 처절하게 무너지는 실패한 영웅이 아니라 당당하게 가족과 동료의 도움을 받으면서 최소한의 ‘정의’를 쟁취하는 것. 〈베테랑〉은 지금 대중이 원하는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기자명 김봉석 (영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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