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놓고 충돌하는 까닭
  • 천관율 기자
  • 호수 411
  • 승인 2015.08.04 01: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5년 하반기 최대 화두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다. 급격한 고령화 추세와 맞물린 임금피크제는 노·사·정이 1차적으로 맞닥뜨린 전선이다. 임금피크제를 놓고 벌어진 충돌에서 한국 노동시장의 풍경을 읽어낼 수 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2015년 하반기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7월21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낡은 노동시장 구조로는 절박한 과제인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하루 앞서 7월20일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표를 잃을 각오로 노동개혁을 해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의 수장이 정조준한 만큼 논의는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핵심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다. 김무성 대표는 7월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동시장의 5대 양극화’를 지목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 중장년과 청년의 세대 격차, 남녀 성별 격차, 고학력과 저학력의 학력 격차가 그것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이 이중구조 문제를 안고 있다는 현실 인식과, 이것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진단에는 좌우의 이견이 크지 않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 속한,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와 그 외의 노동자는 소득과 고용안정성에서 차이가 크다. 학자들은 이런 이중구조에서 처지가 나은 ‘대기업·정규직·조직노동’의 영역을 ‘내부 노동시장’이라고 부른다. 이 울타리를 경계로 노동시장의 작동 원리가 달라져버린다. 울타리 내부라고 마냥 평화로운 것은 아니지만, 울타리 외부는 만성적 저임금·고용불안정·실업에 시달리는 가혹한 세상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2017년부터 전 사업장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 정부의 ‘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의 핵심이 임금피크제인 이유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화두는 방대하고 복잡해서, 먼저 충돌하는 ‘좁은 전선’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유력한 후보가 임금피크제다. 정부의 ‘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의 핵심이 임금피크제였다. 노동계의 반발이 집중되는 이슈도 여기다. 7월2일, 한국노총은 총파업 결의안이 89.8% 찬성률로 통과되었다고 밝혔다. 한국노총·민주노총 양대 노총은 임금피크제의 직격탄을 맞는 공공부문과 금융부문 등을 중심으로 공동투쟁본부를 꾸리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설 태세다.

여러 유형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임금피크제는 정년 연장(또는 보장)과 임금 삭감을 맞교환하는 제도다. 여기서 임금피크제의 중요한 속성 두 가지가 확인된다. 첫째, 임금피크제는 연차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체계, 즉 연공급 체계에서만 의미가 있는 개념이다. 둘째, 임금피크제는 정년 개념이 있는 사업장에서만 유효하다.

‘연공급제’와 ‘정년’이라는 두 축이 존재하는 사업장은 대부분 내부 노동시장에 속한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온도차가 등장한다. 양대 노총은 임금피크제를 사활을 거는 이슈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외부 노동시장은 연공급도, 정년도 가져본 적이 없다. 임금피크라는 ‘좁은 전선’의 충돌에서 한국 노동시장의 풍경을 읽어내려면 ‘내부’와 ‘외부’의 분절 구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박근혜 대통령이 7월22일 인천신항을 방문해 노동자들을 만났다.
한국인의 암묵적 생애 계약, 연공급 임금체계

정년은 왜 내부 노동시장에서만 유효할까. 우리는 왜 정년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퇴직제도를 두었을까. 미국과 영국은 정년제도가 아예 없다.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퇴직이 노동자의 권리 개념이다. 연금 압박에 시달리는 정부가 퇴직연령(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려 하고 노동자가 반발하는 구도가 흔하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정부는 정년을 연장했다가 대규모 항의 집회로 홍역을 치렀다. 그런데 왜 한국은 노동자가 정년 연장을 원하고 기업이 반발할까.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연공급 체계가 공고하기로 손에 꼽히는 나라다. 연차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순수 호봉제가 대표적인 연공급 임금체계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성과급 체계가 어느 정도 도입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 임금체계의 연공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체로 노동자의 생산성은 나이가 들수록 증가하다가 어느 시점을 지나면 정점을 찍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직종과 개인 역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연구자들은 45세 전후를 평균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시점으로 추산한다. 반면 연공급 체계에서 임금은 나이가 들수록 올라간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같은 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한국노총 여의도 천막농성장을 방문했다.
어떻게 이런 거래가 가능할까. 연구자들의 답을 종합해 도식으로 그린 것이 오른쪽 <그림>이다. 그림에서 임금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한다(연공급). 생산성은 뒤집은 U자 모양으로 정점을 찍고 내려온다. 두 선을 겹쳐놓으면, 노동자가 젊었을 때에는 생산성보다 못한 임금을 받고 나이가 들면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도 서명한 사람은 없지만, 이것은 암묵적인 생애 계약이다. 노동자가 젊었을 때의 손실 A와 나이 들어서 얻는 이익 B의 크기가 같다면, 생애에 걸쳐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진 셈이다. 노동경제학에서는 이 모델을 ‘이연임금제’(뒤로 미뤄 받는다는 의미)라고 부른다.

이 모델은 기업 처지에서도 중요한 이득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노동규율 관리가 쉽다. 이 생애 계약에서 노동자는 최대한 오래 근무해야 본전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를 옮기지 않고, 해고를 피하려는 노력도 치열하게 한다. 연공급제에서 기업은 개별 노동자의 생산성을 일일이 측정하는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외상거래다. 먼저 ‘뽑아먹고’ 나중에 보상하니 비용을 뒤로 미룰 수 있다.

이제 왜 한국과 일본에 강제 퇴직제도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젊어서는 밑지게, 나이 들어서는 넉넉히 받는 것이 일종의 생애 계약이라면, A와 B가 같아지는 ‘거래 종료 시점’에서는 퇴직을 시켜야 기업의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의 내부 노동시장에서 실질적인 정년 연령은 53~54세로 추산된다. 노동경제학 연구자들은 보통 이 지점에서 A와 B가 같아지는 균형이 형성되었다고 간주한다(좌우 모두 이견은 있다).
 

고령화 쇼크에 흔들린 생애 계약

그런데 고령화 해일이 이 생애 계약을 덮쳤다. 2013년 국회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정년법)을 통과시켰다. 2016년부터는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2017년부터는 전 사업장에서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 정년 연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지만, 급속한 고령화 추세 때문에라도 더 미룰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데, 이 세대는 은퇴 이후 국민연금 수급 자격이 생길 때까지 7~8년 정도가 공백으로 뜬다.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은퇴자가 사실상 아무 대책 없이 쏟아질 예정이었다. 정년 연장 자체에는 여야 이견이 없었다. 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같은 65세까지 정년이 연장되리라는 관측도 학계와 정치권 모두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은퇴 연령과 연금 수급 연령을 맞추는 것은 생애주기 정책의 원칙 중 하나다.

외부 충격에 직면한 생애 계약은 어떻게 바뀔까. 한국노동연구원 안주엽 선임연구원은 “53~54세에서 ‘정산’이 끝난 셈이기 때문에, 이후 60세까지의 임금은 현재의 생산성에 맞춰 다시 계산하는 것이 맞다”라고 말했다. 직전까지 받던 고임금은 생애 계약의 산물이고 젊은 시절 저임금의 대가를 받은 것이므로 연장된 정년에서의 임금 기준이 될 수 없다. 노동시장에서의 현재 몸값보다 높아서 임금은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령화 추세가 정년 연장을 강제하기 때문에, 일종의 ‘생애 재계약’이 핵심 과제로 등장한다. 이때 가장 알기 쉬운 대응책이 임금피크제다. <그림>의 오른쪽 끝, 생애 재계약 영역을 보자. 정년 연장 구간에서도 기업과 노동자의 거래가 본전을 맞추려면 임금추세선이 뚝 떨어지면서 a와 b가 같은 면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 그림은 임금피크제 도입의 이론적인 근거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5월28일 임금피크제 공청회는 양대 노총의 현장 점거로 무산됐다. 가운데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이런 조정이 그래프의 세계에서는 합리적이라 해도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충격은 지나치게 급격하다. 그래서 다른 대안을 선호하는 연구자도 있다. 기존 생애 계약을 그대로 두고 정년 연장 구간에서 급격하게 계산을 맞추기(임금피크)보다는, 60세 정년이라는 ‘계약 구간 재설정’에 맞춰서 임금추세선 전체 기울기를 완만하게 조정하는 안이다. 임금의 연공성을 누그러뜨리는 형태가 된다. 이 외에도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피크를 맞교환(근로시간 피크제)한다거나, 연공급 임금체계를 아예 직무급·성과급 임금체계로 근본 개편하는 등 여러 대안이 논의되고 있다.

“재계약” 외치는 기업, ‘외상’은 갚았나?

매끈한 그래프는 노동자의 억울함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2012년 9월 국회 예산정책처는 ‘고령화가 근속 및 연공임금체계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예산정책처는 한국 기업이 연공급 체제를 선호한 데에는 고도성장기의 인구구조가 중요한 변수였는데, 이 지점이 기존 논의에서는 과소평가되었다고 지적했다. 고도성장기에는 청년이 넘치는 반면 고령 노동자는 많지 않았다. 이럴 때 기업은 연공급제라는 ‘외상 모델’이 단연 유리하다.

외상 거래에서 최대의 위협은 무엇일까. ‘먹튀’다. 청년 노동자를 상대로 외상을 당긴 기업이 고령 노동자의 연공급을 깎거나 퇴직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외상을 제대로 갚지 않을 수 있다. 기업이 이런 ‘먹튀’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오직 신뢰성과 평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런 외상 거래는 장기 평판과 신뢰를 신경 쓸 만큼 충분히 큰 기업에서만 성립한다. 연공급제가 내부 노동시장의 전유물인 이유다.

그런데 초고속 고령화가 이런 제약을 풀어주었다. 예산정책처는 이렇게 쓴다. “고령화라는 특수 상황은 그러한 행위(우리 표현으로는 ‘먹튀’)가 모든 기업에서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였다.” 고령화 비용을 명분으로 기업의 생애 계약 파기를 사회가 용인하는 순간, 기업은 기꺼이 ‘먹튀’를 택한다.  

재계가 말하지 않는 ‘동전의 이면’은 또 있다. <그림>을 보면, 기업은 외상 모델 덕분에 청년 노동자를 생산성보다 ‘A’만큼 싼값에 쓰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안주엽 선임연구원은 “기업이 말하는 대로 생산성에 맞춰 임금을 주려면 청년 임금을 30%는 올려야 할 거다. 기업들이 고령 노동자의 연공급은 비판하면서 이런 대목은 언급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6월16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2015 중장년 채용기업 박람회’ 참가자가 채용 게시판을 보고 있다.
정년법, 게임의 규칙을 바꾸다

민간 영역에서 노사 자율로 정년 연장 협상이 벌어질 때에는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를 맞교환하는 것이 일종의 ‘표준 모델’이었다. 그런데 국회가 60세 정년을 법으로 못 박으면서, 사용자 측은 임금피크제를 관철할 핵심 협상 카드를 잃어버렸다. 정년법 논의가 있던 2013년 4월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새누리당 이종훈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노동자 측이) 가만히 버티면 정년 연장은 그대로 된다는 것을 알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입법으로 사용자 측이 정년 연장이라는 협상 카드를 빼앗기는 만큼, 사용자 측에도 그에 상응하는 무기를 쥐여줘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 의견은 결국 관철되지 않았다. 정년법 제19조 2항은 “정년을 연장하는 사업장의 노사는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라고만 되어 있다. 선언 수준이다. 어떤 식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거나, 이를 지키지 않을 때 어떻게 처벌한다는 내용은 없다.

이 순간 게임의 조건이 결정적으로 바뀌었다. 노동계는 국회 입법이라는 가장 강력한 형태로 정년 연장을 따냈다. 이제 이 문제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이유가 없어졌다. ‘생애 재계약’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정년법 시행이 임박하자 정부는 궁여지책을 택했다. 6월17일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눈길을 잡아끄는 대목이 ‘취업규칙 변경 절차·기준 명확화’다. 취업규칙이란 노동자가 직장에서 적용받는 근로조건이나 복무규율을 말한다.

임금을 깎거나 해고를 쉽게 하거나 정년을 줄이는 등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을 ‘불이익 변경’이라고 한다. 불이익 변경을 하려면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근로기준법은 규정한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사회 통념상의 합리성’이 있을 경우 노동자 동의 없이도 불이익 변경이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2001년).

정부안은 사실상 이런 얘기다. 정년법에 따라 연장된 정년 구간에 임금피크제를 적용할 경우, 이는 ‘정년 연장과 임금 삭감의 맞교환’이므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해석하겠다는 의미다. 이러면 기업은 노동자의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 문제로 5월28일 공청회를 열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공청회는 양대 노총의 현장 점거로 무산됐고,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공청회장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올해의 노·정 관계를 예고하는 장면이었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6월까지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으나 7월 중순까지도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정부가 밀어붙인다면 법정 분쟁을 피하기는 힘들다. 소송이 동시다발로 벌어지면 사회적 갈등 비용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벌써부터 노동계와 정부·재계는 법정 공방에 대비해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대응 논리를 다듬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청년 일자리 늘려줄까

남는 것은 여론전이다. 정부가 택한 여론전의 핵심 슬로건은 ‘청년 일자리’다. 임금피크제를 통해 기업의 비용을 줄여주어야만 청년 고용에 숨통이 트인다는 논리다. 이것은 다소 옹색하게 뒤늦게 끼어든 논리다. 임금피크제는 정년 연장과의 맞교환과 생애 재계약 차원에서 논의되어왔다. 청년 일자리 증가 효과는 대체로 불투명했다.

국내외 다수 연구 결과는 청년 고용과 장년 고용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고 있다. 정부와 보수 언론의 주장과는 반대다. OECD는 2005년 ‘신(新)일자리 전략’을 내놓았다. 여기서 OECD는 장년 고용과 청년 고용이 서로 경쟁한다는 기존 가설을 폐기하고, 오히려 장년 고용이 늘 때 청년 고용도 따라서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국내 노동시장 연구 결과들도 유사하다. 박근혜 정부의 첫 고용노동부 장관인 방하남 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2012년에 대표 집필한 <기업의 정년 실태와 퇴직 관리에 관한 연구>에서 이렇게 썼다. “중·고령자 고용 증가가 청년층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증거가 없어 세대 간 고용대체 가설이 성립하지 않으며, 거꾸로 양자 간 보완 관계가 강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6월29일자 ‘이슈페이퍼’에서 “임금피크제가 청년 고용 창출에 미치는 영향은 경영계의 예측이나 정부의 기대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썼다.

근본적으로 기업이 판단하기에 일이 있어야 고용이 느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기존 비용만 줄인다고 고용이 늘지는 않는다. ‘고용 총량’이라는 한정된 파이가 존재하고 그걸 세대가 경쟁해 쪼개 갖는 모델이 아니라는 의미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더라도 민간의 고용 증가 효과는 사실상 ‘정부의 팔 비틀기’ 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고, 다만 인건비 총액이 정해져 있는 공공 영역에서 약간의 고용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반론도 있다. 다시 한번, 핵심 키워드는 내부 노동시장이다. KDI 윤희숙 연구위원은 “임금피크제와 청년 고용 이슈는 전체 노동시장이 아니라 결국 내부 노동시장을 두고 따지는 문제다. 여기는 진입장벽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해야 고용이 늘어나는 대체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체 노동시장으로 보면 청년 일자리와 장년 일자리는 서로 성격이 달라서 직접 대체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부 노동시장은 법률과 노동조합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정해진 자원을 두고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정년 연장이 결국 내부 노동시장 이슈인 만큼, 한정된 파이 모델로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얘기다. 이 논란은 아직 결론이 났다고 보기 힘들다.

‘거대한 재계약’의 첫 번째 진통

정부는 내부 노동시장과 외부(불안정 노동과 구직자)의 격차를 여론전의 지렛대로 쓴다. 노동계는 내부 노동시장 종사자의 처지가 상대적으로 낫다는 현실을 얼버무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태도가 정부와 기업이 파고들기 좋은 ‘약한 고리’가 된다. 진보 성향의 노동사회학자인 정이환 교수(서울과학기술대)는 “정년이 늘어나면서 연봉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일부 양보해 신규 고용 창출에 쓰자는 건 노조가 먼저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게 어떻게 청년 고용 창출로 이어지는지 보장하라고 요구하면서. 그래야 노동운동이 산다”라고 말했다.

2015년 임금피크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투는 ‘거대한 재계약’의 첫 진통에 해당한다. 고도성장과 넘치는 청년인구를 전제로 형성된 기존 계약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저성장·고령화 시대에 맞는 재계약 압력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정년 연장과 연계된 임금피크제는 단지 첫 시험대, 그것도 내부 노동시장이라는 좁은 영역에서 등장한 첫 관문이다. 상호 신뢰가 고갈 수준인 가운데, 거대한 과제를 풀어내야 하는 노·정 관계가 첫 단계부터 상생보다는 실력 대결로 치닫고 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