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논평 삼가…청와대 나설 필요 없다는 내부 판단
"문제되는 일 없을 것" 기류…대통령도 언급 가능성 낮아


청와대가 여름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국가정보원의 해킹프로그램 구매 및 민간 사찰 의혹 논란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논란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따로 드릴 말씀은 없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들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언론 보도 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해당 해킹 프로그램의 구입·운용 실무 책임자인 국정원 직원이 '일부 사용기록을 삭제했다'는 석연치 않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이번 논란이 국민적 관심사로 급부상한 상황에서도 극도로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연합뉴스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온두라스 정상회담에서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온두라스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러한 청와대의 조심스러운 입장에는 아직은 추정에 따른 의혹만 무성할뿐 실체적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까지 나섰다가는 오히려 논란을 키우고 정쟁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사안이 야당이 제기한 '국가정보기관의 민간사찰 의혹'을 둘러싼 논란인데다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 구입 시기가 지난 총선과 대선 즈음이라는 점도 청와대가 신중함을 유지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더구나 청와대는 취임 첫해인 2013년 대선개입 논란을 일으킨 '국정원 댓글 사건'과 2014년 '서울시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사건'으로 장기간 홍역을 치렀고, 결국 작년 5월 남재준 원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기억이 생생한 상황이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이번 해킹 프로그램 논란에 대해 자신있어 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과거 국내 정치에 개입하며 국민 불신을 자초해온 국정원에 대해 개혁을 주문해왔고, 이런 분위기에서 국정원이 불법 민간사찰을 감행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판단에서다. 

국정원이 이번 논란에 대해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어 민간사찰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고 국회 정보위에 해킹프로그램 사용기록을 전면 공개하겠다고 밝히는 등 정면대응 기조를 보이는 것도 청와대의 이러한 내부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기에는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야당의 의혹 제기는 국정원과 현 정부를 흠집내기 위한 정략적 공세라는 여권 핵심부 전반의 비판적 인식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청와대는 국회법 거부권 정국을 마무리짓고, 노동개혁 등 4대 개혁과 경제활성화에 매진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해킹 정국이 국정의 속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선 안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박 대통령도 이번 사안을 비슷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여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21일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해킹정국에 대해 포괄적으로라도 언급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헌정회 임원들과 오찬을 한 자리에서 "(국회가) 이해득실 싸움에 매달리는 것은 정치본령에 어긋나는 일이고, 또 헌정사에도 오점을 남기는 일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 만큼 '국민중심 민생정치'를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번 논란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언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다시 해킹정국 공방의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참모는 "대통령께서 어떤 말씀을 하실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진실이 나와야 잘못을 수정하는 차원에서 말할 수 있겠지만, 현재는 의혹에 대한 야당의 공세 외에 드러난 게 없어 대통령께서 언급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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