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기, 두 아이돌의 발언이 나란히 구설에 올랐다. 시작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Mnet 〈쇼미더머니 4〉에 출연한 위너(WINNER)의 멤버 송민호가 일대일 배틀에서 한 랩이었다. “MINO(민호)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 이 유명한 놈을 이용해서 해결해봐.”

MBC 라디오 〈푸른 밤 종현입니다〉의 진행자인 그룹 샤이니의 종현이 라디오에서 한 말도 뒤늦게 회자됐다. “아 그 뭔가, 축복받은 존재잖아요, 여성은. 모든 예술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두 사람 모두 ‘여성 혐오’ 혹은 ‘여성 비하’가 연상되는 발언이라는 지적을 받지만 결은 조금 다르다. 두 사람의 간극은 여성 혐오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 질문을 남겼다.

 

<상남자 만화>는 ‘여성 혐오 만화’의 계보를 잇는다. 이 밖에도 사례는 양손으로 꼽아도 모자랄 만큼 많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여성 혐오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 페미니즘 관련 도서로 기획전을 열기도 했다.
‘여성 혐오’는 일종의 유행어가 되었다. ‘김치녀’로 통칭되는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의 여성 혐오는 이제 그들의 공고한 정체성이고,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이슬람 테러 집단 IS에 가담한 김군을 비롯해 ‘IS보다 위험한 무뇌아적 페미니스트’라는 글을 쓴 김태훈 칼럼니스트, ‘니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아 몰랑 사귈 수가 없어’라는 가사로 노래 부르는 가수 브로 등 많은 이가 여성 혐오라는 단어로 묶인다. 언론에서도 쉽게 써온 ‘아몰랑’이라는 말 역시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로 알려졌다. 데이트 폭력을 다룬 페이스북 만화 〈상남자 만화〉는 ‘여혐(여성 혐오) 만화’의 계보를 잇는다. 벚꽃 구경 가자는 여자친구에게 남자는 “아가리 여물어 ××아”라고 외치며 주먹으로 가격한 뒤 “거울을 봐, 네가 꽃이잖아”라고 말한다. 사례는 양손에 꼽아도 모자랄 정도로 많다. 크든 작든 ‘여성에 대한 부정적 기류’를 총칭하는 말로 여성 혐오가 쓰인다.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의 공저자인 윤보라씨(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수료)는 “여성 혐오라는 기저 심리에서 표출되는 다양한 층위의 조롱·멸시·차별·공격 등이 모두 여성 혐오로 손쉽게 뭉뚱그려지는 형국이다”라고 진단했다.

‘미러링’ 방식의 패러디가 드러낸 ‘여성 혐오’

여성 혐오와 관련된 이슈가 늘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최근 페미니즘 추천도서로 기획전을 연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50위권 안에는 페미니즘 관련 책이 약 10종 포함됐다(7월16일 기준). 1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3위)에 이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4위)는 2012년 출간된 구간이지만 최근 다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특히 상반기 사회서적 베스트셀러인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남자들이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말을 만든 미국의 비평가 리베카 솔닛의 저서다. 추천도서 목록에서 눈에 띄는 책 중 하나는 〈이갈리아의 딸들〉이다. 1996년 한국에 출간된 노르웨이 소설로,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 체계가 완전히 바뀐 ‘이갈리아’라는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나온 지 20년이나 지난 책이 갑작스레 관심을 받게 된 건 최근 등장한 ‘메갈리안’ 때문이다.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위)는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의 패러디다. 여성 혐오 발언에 문제 제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메갈리안은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과 메르스의 합성이다. 태생지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이하 메갤)다. 지난 6월, 메르스 확진자와 같이 비행기를 탄 한국 여성 2명이 격리를 거부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 후 ‘메갤’에는 ‘역시 김치녀다’ ‘한국 여자들이 나라망신 다 시킨다’라는 식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후 잘못된 정보였다는 게 밝혀지자 분노한 여성 유저들이 그간 인터넷상에서 이뤄진 여성 혐오 내용의 주체만 바꾼 미러링(거울처럼 똑같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한다.

여성을 비하하는 뜻의 ‘김치녀’가 ‘김치남’으로 바뀌고 가슴 작은 여자 대신 성기 작은 남자를 비하하기 시작했다. 여자가 성(性)을 이용해 이득을 챙긴다는 뜻의 ‘보슬아치’는 ‘자슬아치’로 대체됐다. 그동안 행해진 ‘혐오’를 그대로 돌려줘 그 민낯을 까발린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활동하는 이들이 〈이갈리아의 딸들〉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메갈리안’이 되었다. 여혐러(여성 혐오자)의 주된 공격 레퍼토리인 군대 문제, 데이트 비용 전가 등에 맞서 성매매, 데이트 폭력 문제를 조롱했다. 여성 혐오에 대한 대응이 처음은 아니다. 올 초 SNS상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해시태그를 달아 선언하는 운동이 있었다. 이번과 같은 ‘네거티브’ 방식은 낯설지만 즉각적인 반향이 컸다.

‘김치녀’가 통용될 때는 별다른 제재가 없던 ‘디시인사이드’가 메갤에서 욕설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며, 한때 김치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게 하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방식에 대한 회의도 있다. 여성 혐오를 혐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남성 혐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애초 구분이 모호하다.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의 공저자 임옥희 객원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여성이 자신의 주도권을 위해 폭력과 혐오를 활용한다면, 그 점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묻는다. 이어 ‘남성과 여성 사이 혐오에서 권력관계의 비대칭성을 생각해본다면, 남성들이 보여준 혐오에 대한 여성들의 흉내 내기를 패러디로 볼 수는 없을까’라며 긍정하기도 한다. 현재의 메르스 갤러리는 남녀 분투의 장이다. 여성 혐오 이슈는 쉽게 성 대결 구도로 이어진다. 대형 여성 커뮤니티와 일베 간 오가는 크고 작은 ‘커뮤니티 대란’ 역시 성 대립의 양상을 보인다.

이런 과정에서 진중권 동양대 교수마저 ‘여혐러’로 몰렸다. 일베 회원들의 여성 혐오 행태에 조목조목 일침을 가하던 그로서는 뜻밖인 셈이다. 여성 비하 발언으로 논란이 된 개그맨 그룹 옹달샘에 대한 발언 때문이다. 반여성 혐오를 위해 조직된 임시 연대체 ‘페페페’와 벌인 트위터 설전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옹달샘 멤버의 방송 하차를 요구하며 방송국 앞에서 1인 시위를 해왔다. 이들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허지웅 평론가와 진중권 교수를 비판했는데, ‘개인을 위협하는 집단의 무지와 싸워온 진보적 명사가 왜 젠더 이슈는 빙빙 돌리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였다.
 

ⓒFeFeFe 트위터정규 편성이 확정된 KBS의 <나를 돌아봐> 출연자 장동민에 반대하며 ‘페페페’ 회원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옹달샘 논란 당시 진중권 교수는 장동민에 대한 대중의 비판은 정당하다면서 ‘광대는 질펀하게 쌍욕도 할 수 있지만 그 표적이 자신보다 사회적 약자일 때 의도와 상관없이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페페페’가 장동민뿐 아니라 최근의 진보 진영 내 데이트 폭력 이슈에 대한 발언을 요구하자 진중권 교수는 “제가 무슨 노동당 윤리위원장도 아니고 자연인으로서 저는 님들에게 발언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고 반박했다. 침묵을 곧 동조로 여기고 답변을 강요하는 이들의 방식은 큰 지지를 얻지 못했다. 여성 혐오자로 낙인 찍는 일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 여성 혐오자는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후 ‘페페페’는 데이트 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의 당사자로 지목돼 사과하고 활동을 접었다.

이 ‘낡은 새로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성주의 연구자들은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어떻게 읽어낼지 고민 중이다. ‘혐오의 시대’를 주제로 다룬 반연간지 〈여/성이론〉은 여름호에서 그 원인을 짚었다. 조주영씨(서울시립대 철학과 박사 수료)는 ‘관용의 역설:우리는 무엇을 참아내야 하는가?’라는 글을 통해 “여성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는 기저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국가에, 성별 분업체계에 의존하며 혜택을 얻는다는 생각이 놓여 있다. 낮은 경제성장률과 고용률을 특징으로 하는 현재의 탈산업화 사회에서, 기존에 있던 (경제적으로) 의존적 여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지속시키기 벅찬 남성들이 그 분노를 오히려 여성의 의존성에 돌리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전통적 남성성의 혼란이 불러온 현상이라는 의미다. ‘여성과의 경쟁에서 좌절한 루저’로 여성 혐오자를 바라보던 시각에서 좀 더 확장됐다.
 

<쇼미더머니 4>에 출연 중인 위너의 송민호(위)의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랩은 ‘여성 혐오’라는 지적을 받았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지금의 현상을 ‘낡은 새로움’이라고 본다.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에서 그녀는 “여성 혐오는 공기와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화되었을 때만 우리는 공기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문제는 여성 혐오 자체가 아니라 지금 여기다”라고 말한다. 고대 신화에도 여성 혐오의 기운이 있었다. 그만큼 지속된 역사다. 다만 윤보라씨의 지적처럼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나누어 보상과 처벌을 반복하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질서가 여성을 통제하는 매우 오래된 방식이지만, 현재의 여성 혐오 현상은 거의 모든 한국 여성을 나쁜 여자로 만든다.” 그가 보기에 일베에서는 ‘일부 여성’이라는 ‘최소한의 체면치레’마저 사라졌다.

현재 페이스북에는 메르스 갤러리를 잇는 ‘메갈리아 4’ 페이지가 운영되고 있다. 또 다른 페이스북 페이지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패러디다. ‘메갈리아 4’는 미러링이 아니라 여성 혐오 발언에 문제 제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행동하는 메갈리안’ 프로젝트를 통해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이들은 “메르스갤이 남혐(남성 혐오)으로 비추어지는 이유는 일부 여성들만 욕한다고 주장하던 기존 담론들이 실은 여성 전체를 향한 혐오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힌다. 이어 “메르스갤을 공격적이며 과격한 혐오 표현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여성 혐오 발언의 수준 또한 공격적이며 과격하다는 자각과 이에 대한 반성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메르스 여파가 남긴 건 엉뚱하지만 메갈리안이다. 여성 혐오에 대응하는 방식이 진화하고 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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