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국정원 떳떳하다”, 야 “국정원 주장 거짓말 가능성”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스마트폰 해킹 의혹 논란이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국정원 직원의 돌연한 자살로 새 국면을 맞은 가운데 여야는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 여부를 둘러싼 공방을 이어갔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은 '대북 감시'라는 본연의 활동에 따른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고 불법적 사용은 없었다면서 즉각 이례적으로 국정원 현장 조사를 수용하는 등 정면 돌파할 태세다. 

특히 자살한 국정원 직원 임모(45)씨가 유서에서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밝힌 점을 강조하며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정원의 사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정치공세라고 방어선을 쳤다. 
 

ⓒ연합뉴스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왼쪽)과 정보위 소속 박민식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국가정보원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관련된 국정원 직원 임모씨가 자살하기 전 삭제한 자료가 모두 복원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국민정보지키기 위원장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가정보원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관련,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해킹과 관련한 추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왼쪽 부터 신경민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 안 위원장, 문병호 의원.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내국인 사찰이 없었다'는 국정원 입장을 반박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새로운 의혹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국정원 해킹 담당 직원의 자살을 "정치적 자살"이라고 규정짓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특히 임씨가 해킹 관련 자료를 삭제한데 대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달 내 국정원을 방문 조사하겠다던 기존 입장을 바꿔 '선(先) 의혹검증-후(後)현장조사'로 전환해 당분간 여야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정원 출신으로서 국회 정보위 새누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19일 여의도 당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자살한 임씨가) 삭제한 자료는 디지털 포렌식(디지털 증거물을 과학적으로 조사해 정보를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100% 복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정원 관계자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삭제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지금 확인 중"이라며 "나중에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국정원을 방문하게 된다면 그때까지는 확인이 될 것이고, 공개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국정원의 해명을 들어보면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떳떳한 것 같다"면서 "야당이 이번에는 헛다리를 짚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우 수석대변인도 "정치권은 국정원과 관련된 이슈만 불거지면 무조건 의혹부터 제기하고 압박하기 일쑤인데,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사실 관계 확인부터 하는 것이 순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수석대변인은 국정원 직원 자살 사건에 대해서 "최근 정치권이 국정원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이번 사건 발생 후 IT 전문가인 안철수 의원을 '국민정보지키기 위원장'으로 임명한 새정치연합은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 운용 과정에서 국내 민간인 사찰 가능성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라고 주장하며 추가 의혹을 제기했다. 
 

ⓒ연합뉴스19일 오전 경기 용인동부경찰서에서 국가정보원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관련된 유서를 남기고 숨진 국정원 직원 임모(45)씨의 유서가 공개되고 있다. 임씨는 유서에서

안 의원과 함께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인 신경민 의원은 "이탈리아 업체 해킹팀의 유출자료를 분석한 결과 발견한 로그파일에서 한국 인터넷 IP 주소 138개를 확인했다. 중복 건수를 포함하면 300건"이라며 "할당 기관은 KT, 서울대, 한국방송공사 같은 공공기관이고, 다음카카오 같은 일반기업도 있다"고 밝혔다.

신 의원은 "이 파일 내용을 갖고는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국정원이 주장하는 대로 연구개발과 대북용이라거나 (대상이) 고작 20명이라는 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주장했다. 

내국인 사찰은 전혀 없었다는 국정원의 설명을 뒤집을 수도 있는 중요한 단서라는 게 야당 내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새정치연합이 제기하는 한국 IP 의혹에 대해서도 "국정원과 무관하며, 해킹팀사(社)를 대상으로 한 디도스 공격으로 추정된다"고 새누리당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참고했다는 해킹팀의 유출 로그파일은 디도스 공격 등 외부 해킹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 해킹팀 자체 방화벽의 로그 파일로 추정된다"며 "야당이 제기한 의혹은 국정원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이와 함께 국정원 현장조사 이전에 국회 정보위원회 등 차원의 청문회를 열어 의혹을 해명하자고 요구하는 한편, 국정조사나 검찰 수사의뢰까지 언급하며 압박의 수위를 끌어올렸다. 

안 위원장은 "국정원 현장방문으로 모든 의혹이 해소된다는 것은 본질 호도하는 것"이라면서 "국정원 현장조사는 이런 선조치 이후 확인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사건의 실체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정원 방문 조사로 성과가 없을 경우 '면죄부'만 주게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같은 새정치연합의 태도에 대해 새누리당은 "현장 검증을 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는데, 야당에선 차일피일 미루면서 시간을 자꾸 끌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안보 문제를 하루빨리 종식시키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민간인 해킹 사찰 의혹 논란으로 공무원연금법 개정과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촉발됐던 충돌 국면에서 가까스로 벗어나는가 싶었던 여야 정치권의 갈등 전선 재확산으로 향후 국회 일정에도 차질을 빚을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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