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0일 소프트뱅크의 가정용 로봇 페퍼(Pepper)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첫 온라인 판매에 들어갔다. 준비된 물량은 1000대. 대당 가격이 19만8000엔(약 185만원)으로 싸지 않지만, 판매를 시작한 지 1분도 안 되어 다 팔려나갔다. 본격 판매가 시작될 내년까지 앞으로 몇 개월 동안은 매달 페퍼 500~ 1000대가 남다른 클릭 속도를 자랑하는 행운아에게만 돌아갈 것이다.

페퍼는 키 121㎝, 몸무게 28㎏의 가정용 로봇이다. 영유아만 아니라면 페퍼에 깔려도 누구든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을 만한 크기다. 다리에 달린 바퀴를 이용해 최대 시속 3㎞로 느릿느릿 움직인다. 손이나 몸통을 움직이는 속도도 적당해서 위협적이지 않다. 로봇이라면 응당 들려야 할 모터 소리도 그리 심하지 않다. 한 번 충전하면 12시간을 가는 리튬 이온 배터리를 쓴다. 〈우주소년 아톰〉의 나라 일본에서 나온 로봇답다.

페퍼에 탑재된 나오키 OS는 일본어·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 엔진이 들어 있다. 페퍼가 좀 더 귀엽고 센스 있는 말을 쓰게 하려고 개그맨 1800여 명이 소속된 일본 최대 예능 프로덕션 요시모토흥업에서 대화 콘텐츠를 확보했다고 한다. 언팩 행사에서 손정의 회장과 농담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페퍼의 능란한 화술은 여기서 나왔다.

 

ⓒAP Photo6월18일 일본 지바 현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가정용 로봇 페퍼를 공개했다.
페퍼의 진짜 무기는 ‘클라우드 서비스 이모션 엔진’이다. 인간의 표정과 목소리 등을 인식해서 감정을 파악하고, 인간과 주고받는 피드백을 통해 학습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통신하면서 더욱 정밀하고 효과적으로 학습한다. 페퍼의 춤을 보고 아이가 즐거워한다면 페퍼는 이 아이 앞에서 춤을 더 자주 춘다. 옷이 밝은 편인지 기분이 우울한 편인지도 알아맞힌다. 억지웃음인지 진짜 즐거워서 웃는지도 정확히 구분한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300년 앞을 내다보고 사업을 계획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알리바바, 세계 최대 모바일 게임회사 슈퍼셀 등에 투자하는 등 미래 비즈니스에 대한 혜안을 갖춘 손 회장이 가정용 로봇에 베팅한 까닭은 무엇일까?

로봇 시장은 미래의 유망한 금맥 중 하나다. 2015년 현재 세계 로봇 시장은 약 700억 달러, 우리 돈 7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 내 로봇 시장만 우리 돈으로 약 13조원 규모, 2035년에는 약 9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중 가정용 로봇 시장은 20년 내에 적어도 13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만큼이나 당연한 존재가 될 것”

소프트뱅크는 제조원가에 한참 못 미치는 200만원 수준으로 페퍼를 공급한다. 손 회장 본인도 밑지는 장사임을 인정한다. 다만 전용 클라우드 접속에 드는 비용 월 1만4800엔(약 13만원)과 보험팩 월 9800엔(약 9만원)을 합치면 유지비만 월 22만원대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여기에 앱 생태계를 구축해 부가수익 창출을 노린다. 지난해 9월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공개하고, 전용 앱 300여 개를 구축한 상태다.

내년 중 투자회사인 알리바바를 통해 전 세계에 판매할 페퍼는 아이폰 조립회사로 유명한 전자제품 위탁 생산업체(EMS) 폭스콘이 생산한다. 단순 협력이 아니라 아예 합작법인을 만들었다. 소프트뱅크가 60%, 알리바바와 폭스콘이 각각 20%를 출자했다. 합작법인의 한 축인 알리바바 마윈 회장은 “가정용 로봇이 자동차만큼이나 당연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아마도 미래의 역사가들은 2015년을 가정용 로봇 대중화의 원년으로 기록할 것이다. 인간과 일상을 함께 지내며 인간의 일을 돕고 말동무가 되며,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와 조언을 제공하는 가정용 로봇은 이제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조만간 이런 광고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여보, 부모님 댁에 로봇 한 대 놔 드려야겠어요.”

기자명 이종대 (아르스 프락시아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