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 된 것이 우승보다 더 기쁘다”
  • 신호철 기자
  • 호수 43
  • 승인 2008.07.0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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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이 44년 만에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8)에서 우승했다. 스페인 축구는 스포츠 팬에게 기쁨을 줬을 뿐만 아니라, 카스티야와 카탈루냐의 오랜 지역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도 해내고 있다.
   
ⓒReuters=Newsis
스페인 축구대표팀 주장 카시야스(가운데)가 유로2008 우승컵을 치켜들고 있다.
요즘 스페인이 축제 분위기다. 스페인은 지난 6월2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로2008 결승전에서 독일을 1-0으로 누르고 44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스페인 축구대표팀은 요즘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1년8개월 동안 A매치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스페인 축구가 ‘잘나가는’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스페인 축구의 고질병이었던 지역 갈등이 해소된 점을 첫손에 꼽는다. 17개 자치주로 구성된 스페인은 카스티야·카탈루냐·바스크 등 서로 다른 역사와 언어를 가진 지역 주민 사이에 갈등이 깊다. 특히 카스티야 지방을 대표하는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와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FC 바르셀로나의 반목이 심했다. 스페인 국가대표는 항상 이 두 명문 구단 출신 선수를 중심으로 꾸려졌지만, 양측의 불화와 부조화가 팀워크를 깨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레알 마드리드 출신 선수가 바르셀로나 출신 동료에게 패스를 하지 않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은 달랐다.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이 지휘한 유로2008 대표팀 선수들은 인터뷰 때 유난히 지역 화합을 강조했다. 카탈루냐 출신의 스타 미드필더 파브레가스는 우승 인터뷰에서 “이것은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를 위한 승리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조국과 축구 전체를 위한 승리다”라고 말했다.

아라고네스 감독이 세계적 스타 라울 곤살레스를 대표팀에서 방출하고 카시야스를 주장에 임명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었다. 상징적인 ‘레알 마드리드맨’ 라울 곤살레스와 달리 카시야스는 마드리드 출신이면서도 바르셀로나 선수들과 잘 어울려 대표팀을 하나로 만들었다. 선수 대표로 우승 트로피를 든 카시야스와 대회 MVP에 뽑인 사비 에르난데스(카탈루냐 출신이다)는 스페인 우승을 이끈 쌍두마차였다.

프랑코 독재 때 지역 갈등 깊어져

물론 스페인 우승의 원인을 모두 정치적인 것이라 볼 수는 없다. 스페인 언론인 마르벨 베르두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스페인이 우승한 가장 큰 원인은 예전과 달리 자국 리그(프리메가)를 떠나 프리미어 리그 등 외국에서 활약하는 스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결승전 결승골을 넣은 토레스는 영국 리버풀에서 뛴다. 좁은 스페인을 떠나 다양한 축구 문화를 접목한 것이 우승의 원동력이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그 역시 “결과적으로 이번 우승이 스페인 사회 통합에 기여한다”라는 데는 동의했다.

이번 스페인 대표팀에서 레알 마드리드 선수는 2명, 바르셀로나 선수는 3명뿐이었다. 대표팀 선수 출신이 다양해진 것은 결국 마드리드-바르셀로나로 집중됐던 지역 갈등이 완화되는 효과를 낳았다. 네 골을 넣어 득점왕에 오른 비야는 열다섯 살 때까지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에서 살았던 변방 출신이다. 세냐는 브라질 출신으로 대회 직전 귀화했다. 이런 순혈주의 퇴색 바람도 지역 갈등 극복과 관련이 있다.
스페인이 우승해 가장 득을 본 사람은 스페인 총리 호세 사파테로일 것이다. 6월29일 스페인 우승이 확정된 순간 바르셀로나 시민은 카탈루냐 국기가 아니라 스페인 국기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카탈루냐 지방에서 스페인 국기를 흔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역 갈등 해소에 정치력을 쏟아온 사파테로 총리에게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었을 것이다.

   
ⓒReuters=Newsis
영국은 잉글랜드(위)를 비롯해 4개 지역 대표 모두 유로2008에 출전하지 못했다.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의 지중해 쪽 지방에 자리잡은 카탈루냐는 스페인어와 함께 카탈루냐어를 공용어로 쓴다. 인구 700만명인 카탈루냐는 상공업과 무역이 발달해 스페인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과 경제적 이권이 맞물려 카탈루냐 주민 중에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바라는 사람이 적지 않다.
2006년 6월18일 카탈루냐 주정부는 주민 투표를 통해 자치권 확대 법안을 통과시켰다. 과세권, 예산집행, 사법권, 이민제도 등을 지방정부가 관할하는 내용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되자 사회당 호세 사파테로 총리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사파테로 총리가 바로 카탈루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우파는 “국가를 분열시키려 한다”라며 사파테로 총리의 사퇴를 주장했다. 사파테로는 “자치권 확대가 지역 갈등을 완화해 오히려 스페인 사회를 통합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유로2008 결과만 놓고 보면 사파테로의 말이 더 맞는 듯하다.

아랍 언론 <알자지라>는 7월3일자 기사에서 “이번 우승은 스페인이 지역 갈등을 과거로 보내고, 미래를 열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라고 썼다. 스페인의 ‘카스티야 대 카탈루냐’ 지역감정은 한국의 영남 대 호남 지역 감정과 유사한 면이 있다. 지역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든 것이 독재정권이었기 때문이다.

두 지역 간의 갈등은 1479년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이 병합한 이래 500년간 이어져 왔지만, 무엇보다 근현대사에서 벌어진 비극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을 때, 수도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한 카스티야 주민이 프랑코를 지지한 반면, 카탈루냐는 프랑코 독재에 반대하는 인민전선의 거점이 됐다. 이후 6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이어졌다. 내전 동안 희생된 민간인이 100만명이 넘는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르포 <카탈루냐 찬가>를 써 카탈루냐 주민의 저항을 묘사했고, 열네 살 이후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했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그려 프랑코군의 잔학성을 폭로했다. 1939년 프랑코군이 바르셀로나를 점령하면서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반식민지가 됐다. 카탈루냐어는 사용이 금지됐고 카탈루냐 문화를 담은 축제도 금지됐다.

영국, ‘단일 축구대표팀’ 구성 난항

축구는 억압받는 카탈루냐 사람들에게 정치적 에너지를 대리 발산케 해줬다. 카탈루냐 지방에는 축구 대표팀으로 FC 바르셀로나·에스파뇰·힘나스틱 등이 있는데, FC 바르셀로나가 가장 대표적이다. FC 바로셀로나의 문장은 바로 카탈루냐 전통 국가 문장을 담았다. 카탈루냐 사람들의 FC 바르셀로나에 대한 애정은, 마치 전두환 독재 시절 광주 사람들이 해태 타이거즈를 사랑했던 것과 비슷하다. 어떤 정치학자는 FC 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 사람의 저항의식을 고취시킨 것이 아니라 무마시켰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번 유로 대회 우승에서 나타난 스페인 축구의 성취는 여전히 지역 갈등의 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국의 현실과 대비된다. 잉글랜드는 유로 대회 지역 예선에서 크로아티아에 거푸 지면서 탈락해 아예 본선에 나가지도 못했다. 영국은 월드컵과 유로 대회에 잉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스코틀랜드 4개 팀으로 나뉘어 출전하고 있다. 축구 종주국으로서 4개 팀 출전은 자존심이자 전통으로 여겨지지만 자원이 낭비되는 면도 있다. 웨일스의 긱스 선수는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월드컵에 나가보지 못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수준에 맞먹는 스코틀랜드 선수들도 하나의 국기 아래 뛰지 못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현재 2012년 런던 올림픽에 4개지역을 통합한 ‘단일 영국 축구대표팀’을 내보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단일팀 감독에는 알렉스 퍼거슨 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 물망에 오른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축구협회의 반대로 아직까지는 단일팀 구성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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