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타리집에서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에 금정산성마을 전체가 진동할 지경이다. 한울타리집은 각기 다른 주택 4채가 한 울타리에 둘러앉은 집이다. 정희네, 민서네, 악동이네, 평상풍경집이다. 그중에서도 악동이네는 금정산성마을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다. 집 안에 계단 언덕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아이들 열댓 명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을 우르르 오르내리면 우당탕 쿵쾅 소리가 금정산성마을 전체에 울려 퍼진다.

한울타리집에서는 아빠들이 밤새 퍼마신 금정산성 막걸리 냄새도 진동한다. 금정산성마을은 금정산성 막걸리의 본고장이다. 마을 반상회가 있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술판이 벌어진다. 술자리의 주축은 한울타리집 아빠들이다.

원래 금정산성마을은 금정산성을 찾는 등산객들한테 술과 음식을 파는 식당촌이었다. 폐교 직전이었던 금성초등학교가 뜻있는 교사들의 노력으로 2008년 예술꽃 씨앗학교로 거듭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자녀들이 산과 들에서 자라나길 바라는 학부모들이 금정산성마을로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했다.

금성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교육공동체가 형성됐다. 자유로운 교육 환경을 찾아서 이 마을을 찾아왔는데 문제는 거주지였다. 대부분 불편한 거주 환경을 감수하며 전세나 월세로 살다가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 마을을 떠나갔다.

ⓒ윤준환위치: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238-1 대지 면적(4동 전체):718㎡(217.2평) 동별 연면적:121.68㎡(36.8평), 97.55㎡(29.5평), 112.55㎡(34평), 110.95㎡(33.6평) 용도 및 규모:단독주택 4동, 지상 2층 구조:목구조 외부 마감:현무암 타일, 시멘트 사이딩, 아크릴 페인트, 적삼목 사이딩 시공:한국SIP주택산업 설계·감리:리을도랑 아틀리에 건축가 김성률:리을도랑 아틀리에 대표, 부산대 대학원 건축학 석사, 동의대 건축학과 겸임교수, 대표작으로 제주도 시흥리 별장이 있다.

마을 조기축구회에서 공을 차던 아빠들 몇 사람이 의기투합했다. 네 가구가 함께 집을 짓고 아예 마을에 뿌리를 내리기로 했다. 그게 한울타리집이다. 이런 배경에서 지어진 한울타리집이 이 마을 어른과 아이들을 묶는 큰 울타리가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울타리집은 건축사무소 리을도랑 아틀리에 김성률 소장의 첫 작품이다. 김성률 소장은 부산·경남 지역에서 성장한 건축가다. 동서대학교와 부산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서울의 건축사무소에서 잠시 일했지만 낙향했다.

김성률 소장은 한국에서도 일본처럼 작은 집 짓기가 확산되리라고 내다봤다. 서울과 수도권뿐만 아니라 부산과 경남에서도 확산되기를 바랐다. 부산과 경남 지역의 동네 건축가가 되어 그런 지역의 변화에 일조하고 싶었다.

포부는 당당했지만 아직은 초보 건축가였다. 그때 한울타리집 설계 의뢰가 알음알음 흘러들어 왔다. 김성률 소장은 4가구 8명의 건축주들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고차방정식 프로젝트에 겁 없이 달려들었다.

주택 설계의 방향은 건축주가 꿈꾸는 삶의 모습을 건축가가 이해해야 올바로 결정된다. 그러자면 건축주가 먼저 자신이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직시해야 한다. 김성률 소장은 한울타리집 건축주 8명에게 건축 서적부터 나눠주었다. 수십 차례 설문지와 인터뷰를 통해 4가구가 각각 원하는 집의 밑그림을 그렸다.

쉽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위한 다른 교육을 찾아서 금정산성마을에 모였지만, 자신들을 위한 다른 삶이 무엇인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어떤 집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마당이 있는 집” 따위 막연한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윤준환정희네는 욕조에 누워서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천장에 창문을 냈다.

한 울타리이지만 각기 특색 있는 네 집의 설계

결과적으로 민서네는 실내에 고즈넉한 중정이 있고 층마다 계단이 짧은 다리처럼 놓인 아늑한 집이 되었다. 맨 위층은 발레를 하는 아이를 위한 전신 거울방으로 꾸며졌다. 악동이네는 계단 언덕을 중심으로 복도와 서재와 침실이 뒤섞여서 공간 활용이 변화무쌍한 말랑말랑한 집이 되었다. 1층 계단 맨 아래에는 실내외를 잇는 평상이 놓였다. 반면 정희네는 지극히 평범한 집이 되었다. 나중에 이사를 갈 수도 있다는 뜻을 반영해서다. 하지만 정희네도 욕실만은 욕심을 냈다. 욕조에 누워서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천장에 창문을 냈다.

평상풍경집이 조금 걱정이었다. 돈 때문이었다. 평상풍경집은 대지비를 제외한 설계비와 공사비 예산이 1억2000만원 안팎이었다. 이웃집보다 5000만원 가까이 적었다. 자칫 이 집만 왜소해질 수 있었다.

김성률 소장은 큰 삼각형 외벽 안에 작은 입방체 집이 포개진 형태로 평상풍경집을 설계했다. 착시효과를 노렸다. 정희네와 민서네와 악동이네도 물심양면 도왔다. 여분의 건자재를 아낌없이 평상풍경집에 몰아줬다. 모두가 경제적인 이유로 한 울타리 안에서 격차가 생기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 했다. 그건 더 이상 한울타리집이 아니었다.

시공은 지난했다. 금정산성마을이라는 외딴 곳에 제대로 된 집을 지어줄 시공사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지역이라는 한계도 작용했다. 김성률 소장은 엄마 아빠들이 집을 짓다가 집에 정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급기야 김 소장 본인이 현장소장 일까지 도맡았다. 어쩌면 첫 설계여서 가능했던 열정이었다.

한울타리집은 4가구가 하나의 대지를 공유하는 주택이다. 네 가족이 공유하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다. 서로의 삶도 공유하고 산다. 이미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일심동체까지는 아니다. 일부를 공유해야지 전부를 공유해서는 계속 함께 살아갈 수가 없다. 금정산성마을에서 시내까지는 자가용으로 고작 10분 남짓이다. 마치 도심 속 산골 마을 같다. 아빠들은 평일이면 금정산성마을에서 부산과 창원으로 각자 버스나 차를 타고 출퇴근한다. 어떤 엄마는 금정산성문화협동조합에 참여해서 마을일에까지 간여한다. 어떤 엄마는 친정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지낸다. 집은 그런 각자의 다른 삶을 보호해주고 보장해주는 울타리의 기능까지 해야 했다.

김성률 소장은 정희네와 민서네와 악동이네와 평상풍경집의 설계를 고집스러우리만치 서로 구분되게 설계했다. 안 그러면 뻔하게 지어서 뻔하게 사는 집장사 집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렇게 듀플렉스 설계를 피한 탓에 사실상 설계비는 거의 안 남았다. 그 덕분에 한울타리집은 4가구가 따로 또 같이 사는 주택으로 지어질 수 있었고.

이제 한울타리집은 마을만큼 큰 ‘작은 집’이다. 금성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금정산성마을이라는 교육 생활 공동체의 축소판이자 사랑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텃세를 부리던 마을 원주민들도 한울타리집이 들어서고 마을이 보기 좋아지면서 달라졌다. 집이 마을과 도시를 바꾼다. 오늘도 한울타리집에서는 아이들 떠드는 소리와 아빠들 막걸리 냄새가 난다. 사람 사는 향기가 난다.

기자명 신기주 (〈에스콰이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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