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루프는 백인우월주의의 산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는 게 대다수 미국인의 생각이다. 루프가 보여준 일련의 언행이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언행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 2월 자신의 이름으로 개설한 ‘최후의 로디지아인’이라는 웹사이트가 단적인 예다. ‘로디지아’는 현재의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일부 지역에서 소수 백인이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할 때 사용했던 이름이다. 흑인 차별의 대표적인 단어로 통한다. 이 사이트에는 2500자로 된 선언문이 나와 있는데, 흑인이 백인보다 열등하다는 걸 부각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또 인종차별의 상징이자 백인우월주의자의 증표인 남부연합기를 흔드는 이미지도 나온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중에는 한때 흑백 차별 정책을 실시해 전 세계의 지탄을 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기 문양이 박힌 재킷을 입은 모습도 있다. 백인우월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증표다.
미국 내 인종 혐오 그룹, 오바마 당선 뒤 급증
보수시민협회는 미국 내 최대의 백인우월주의 단체로 통한다. 현재 회원이 1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그 전신인 미국시민협회(CCA)의 역사는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시민협회는 20세기 초 흑인에 대한 테러를 일삼던 백인 비밀결사 조직 KKK의 간부 출신 고든 바움이 만든 조직이다. 1985년, 그가 지금의 보수시민협회로 이름을 바꿔서 재창설했다. 이들은 ‘미국은 흑백 결혼을 반대’하며 ‘흑인은 열등한 인종’으로 간주하고, 웹사이트의 한 섹션을 흑인에 의해 살해된 백인을 조명하는 데 할애한다. 남부빈곤법률센터 측은 “보수시민협회 사이트는 흑인에 의한 백인 범죄 문제를 우파 세력에게 전파하는 촉매제 구실을 했다. 루프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파놓은 토끼구멍으로 돌진하다 마주친 첫 관문이 보수시민협회 웹사이트였다”라고 지적했다.
루프의 범행 이후 미국 사회에는 재발 방지책 등에 대한 논의가 잇따른다. 하지만 제2, 제3의 루프가 나올 요인이 제거되지 않는 상황에서 방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 백인 외 타 인종을 극도로 혐오하는 인종 증오 그룹은 여전히 득실댄다. 남부빈곤법률센터에 따르면 2014년 현재, 미국 전역에는 인종 혐오 그룹 784개가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그 수는 2008년 대선에서 흑인인 오바마가 당선된 뒤 급증했다. 특히 루프의 고향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만 19개가 존재하는데, 보수시민협회도 그 가운데 포함돼 있다.
인터넷 발달과 더불어 온라인상에 각종 백인우월주의 사이트가 생겨난 것도 그들의 성장에 안성맞춤이었다. 현재 대표적인 백인우월주의 사이트로 ‘스톰 프런트’와 ‘데일리 스토머’가 꼽힌다. 스톰 프런트의 경우, 루프의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직후 14만 이상의 방문자 수를 기록했다. 웹사이트에는 그를 탓하기는커녕 영웅시하는 글이 빼곡하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이들 웹사이트에서 인종 증오적 폭력행위를 부추기는지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실제로 2013년 2월 흑인 교도관에 대해 폭력을 유도한 혐의로 백인우월주의자 윌리엄 와이트를 체포하고 기소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6월21일 인터뷰를 통해 “미국은 인종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말하면서 인종주의를 강력히 비판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의사당에 걸린 남부연합기를 철거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고, 아마존과 이베이·구글 등 일부 업체에서 남부연합기를 퇴출했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와 백인우월주의가 200년 넘는 미국 역사에 뿌리 깊이 박힌 만큼, 갈 길이 멀다. 1960년대 민권운동 이후 사회 전 분야에서 흑인 지위가 향상되었다고 해도 루프 사건과 같은 ‘백색 테러’의 위험은 상존해 있다. 흑인 작가 토레인 워커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지금도 모든 연령층에서 수만명의 딜런 루프가 가족과 미디어, 그리고 사회제도가 만든 백인우월주의라는 음식을 먹으며 미국 곳곳을 활보 중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