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메르스.’ 2015년 6월, 한국은 메르스 블랙홀에 빨려들었다. 모든 관심이 메르스에 빠져 있을 때, 성완종 리스트의 홍준표 경남도지사도 조용히 불구속 기소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상급식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경남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경남도청 마당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2015년 6월18일). 그동안 서명운동, 등교 거부, 급식비 납부 거부 등 바쁜 투쟁일지를 써온 경남의 경우 유상급식 전환은 ‘줬다 빼앗은’ 격이니 이에 대한 분노의 파장이 가라앉지를 않는 것이다. 하지만 무상급식의 무풍지대가 있으니 그곳은 바로 대구다.

대구시는 선별급식 원칙을 고수하면서, 40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에만 무상급식을 실시해 전국에서 최하위 무상급식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대구시 45.5%. 전국 평균 69.1%). 대구에서도 무상급식이 실시될 뻔했다. 우동기 대구교육감은 교육감 선거 당시 2015년부터 초등학교 의무급식 실시를 약속했다. 인근 경상북도도 무상급식이 이루어지고 있고, 2014년만 해도 무상급식은 대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속은 공중분해되었다. 올해 들어 경남이 선별급식으로 전환하면서 대구도 슬쩍 무상급식 정책을 덮어버린 형국이다. 대신 영·유아 교육과정을 일컫는 ‘누리과정’에 예산을 투하했다. 유아교육의 주체는 중앙정부라며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싸고 전국의 모든 교육감이 중앙정부를 향해 기 싸움을 벌이던 와중에 대구가 김을 빼버린 것이다. 결국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정권 친화적인 지역정치의 한계를 보여준 일이기도 하다.
 

ⓒ한지혜 그림
반면 대구교육청이 신경 쓰는 급식 정책은 ‘학교급식 잔반 줄이기 실천’과 ‘사랑의 도시락데이’ 운영이다. ‘골고루 다 먹기 운동’과 주 2회 이상 잔반 없는 날을 운영하기로 하면서 대대적인 결의대회를 여는 등 잔반 줄이기에 ‘올인’하는 양상이다. 무엇보다 ‘공짜 밥을 주면 아까운 줄 모르고 버린다’가 대표적인 무상급식 반대 논리이기 때문에 이를 증명해야 할 의무를 스스로 진 것 아니겠냐며 대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구 아무개씨는 지적한다.

물론 음식물 쓰레기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먹기’와 ‘쓰레기’를 같은 선상에 두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밥 먹는데 똥 얘기 하지 말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도 있지 않은가. 즐겁게 먹어야 할 한 끼에 굳이 쓰레기 이야기를 끼워넣는 것이 온당할까. 또한 다양한 음식을 경험하게 만들고 이를 평생의 식습관으로 가져가도록 하는 것이 ‘미각 교육’의 핵심 원리다. 학생들은 나물과 채소 반찬을 많이 남기지만 그럼에도 ‘잔반의 주범들’은 평생 함께해야 할 음식들이다. 그러니 그 잔반은 ‘쓰레기’로만 볼 수 없다.

사랑의 도시락데이,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또 하나의 중점 사업인 ‘사랑의 도시락데이’는 한 달에 한 번, 도시락과 함께 부모가 자녀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면 자녀는 감사의 답장을 써서 부모에게 전하는 것이다.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의 경우 무상급식 비율이 94.1% (2014년 현재)에 이르지만, 대구시는 52.7%로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하지만 도시락데이는 대구시 초등학교 219곳 중 94.9%인 208곳이 실시한다. ‘도시락데이’의 경우,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 평가도 있다. 하지만 자발적 참여도 아니고 교육 당국이 강제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도시락 마련이 힘든 가정(맞벌이·조손 가정 등)이 있을 수도 있고, 반찬의 수준 차이는 또 다른 논란거리다. 무엇보다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서조차도 무상급식을 실시하지 못하는데, 여기에 한 끼의 비용을 부모에게 다시 떠넘기는 일이기도 하다.

지역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을 이끌어온 ‘우리복지시민연합’의 은재식 사무처장은 보편적 복지의 감각을 일깨워준 무상급식의 경험이 대구시민들에게는 아예 없기 때문에 대구에서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감각이 마비된 것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대구의 강남으로 알려진 수성구 범물동에서 두 자녀를 키우는 주부도, 달서구 상인동에서 아이 셋을 키우느라 매달 35만여 원의 급식비가 빠져나가는 주부도 ‘밥값’은 부모의 당연한 의무라 말한다. 수성구 ㄴ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수성구 중에서도 이 학교가 있는 곳은 최근에 슬럼화가 진행되는 곳이어서 학년당 100여 명의 학생이 급식비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만약에 급식비를 미납하면 그 상황이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부모들이 급식비를 납부하려고 한다”라고 말한다. 급식비 미납 사실을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려 공분을 산 서울 충암고 교감 막말 사건도 대구에서는 일단 ‘부모 탓’으로 돌려진다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자비 없음’은 복지의 주요 대상인 노인들에게도 투영된다. 위에서 말한 두 주부는 기초연금이나 지하철 무상 이용 등과 같은 노인 복지도 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즉 부모 또한 자식의 책임이라고 여긴다. 보편적 복지 감각이 결여된 곳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나라도, 노인을 위한 나라도 꿈꿀 수 없다.

세금은 늘 모자란다. 그래서 세금을 어떻게 배치하느냐는 곧 정치의 문제다. 그 정치가 어떤 곳에서는 보편적 무상급식을, 또 어떤 곳에서는 선별급식을 만들어낸다. 모든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잘 먹고 잘 자라는 사회를 꿈꾸지 않는 곳은 결국 엘리트 육성에 힘을 쏟는다. ‘대구과학영재고’ 학생들의 미국 연수비용 ‘3억원’을 쾌척한(?) 대구교육청의 예산 배치가 그 일례다. 대구보다 훨씬 재정 자립도가 낮은 전북이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수학여행 경비를 지원할 때, 대구시는 ‘수익자 부담’을 내세우며 저소득층 청소년의 수학여행 경비를 지원하지 않았다. 영재고 학생들의 미국 연수에 지급된 ‘3억원’은 저소득층 학생 1500명의 제주도 수학여행 경비와 맞먹는다.

각자도생의 감각만 도드라지는 무감각의 도시 대구. 과연 그 무감각은 회복될 수 있을까?

기자명 정은정 (농촌·농업 사회학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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