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8일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 새누리당 국회의원 다섯 명이 주최한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국회 대토론회’가 열렸다. 국회 토론회 치고는 이례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100석 넘는 자리가 가득 차고, 간이 의자를 펴고도 자리가 모자라 서서 듣는 청중도 꽤 있었다. 청중 중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 일대의 자영업자들이 많았다. 2017년 사법시험 폐지가 확정된 이후 신림동 고시촌은 신규 유입이 끊겨 쇠퇴 징후를 보이고 있다.

축사를 하러 나선 정치인과 법조인은 앞다투어 사법시험 존치론을 주장했다. 여러 축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가 있었다. 이른바 ‘개천용(개천에서 나는 용)’ 코드다. 검사 출신인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은 “나는 불도저 기사의 아들이었다. 공정한 사법시험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새누리당 법사위 간사인 이한성 의원은 “농부의 아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가천대 출신”, 발제를 맡은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는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자기소개부터 한 후에 사법시험이 자신을 이 자리에 있게 했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회라기보다는 ‘개천용 경연대회’ 같았다.
 

ⓒ시사IN 조남진사법시험 폐지를 재검토하자는 주장이 지난 4월 재보선을 거치며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위는 서울 신림동 고시촌.
사법시험은 2017년을 끝으로 폐지가 예정되어 있다. 이를 재검토하자는 주장이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4월 국회의원 재보선 때부터다. 신림동 고시촌이 속한 서울 관악을이 보궐선거 지역구가 되었고, 야당 텃밭에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지역 자영업자들의 현안이기도 한 사시 존치 공약을 내세워 승리했다. 5월28일자 〈동아일보〉는 법조인 양성제도를 주제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1면에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응답자의 74.6%가 사법시험 폐지에 반대했다. 사법시험과 로스쿨 중 하나로 제도를 단일화한다면 사법시험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67.9%였다(로스쿨 선호 23%). 여론은 사법시험을 눈에 띄게 선호하는데, 핵심 이유는 로스쿨이 사법시험보다 불공정한 제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같은 보도에서 로스쿨 졸업자가 취업할 때 집안 배경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은 87.8%에 달했다.

공정한 제도라야 ‘개천용’이 탄생할 수 있다는 믿음. 로스쿨은 기회의 공정성을 무너뜨려 ‘개천용’을 차단한다는 믿음. 법률가 양성제도를 바라보는 여론의 밑바탕에는 이런 정서가 강력하게 깔려 있다. ‘공정사회’ ‘기회 균등’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사회’ 등의 주장이 건드리는 대목이 여기다.

왜 사법시험에서 ‘개천용’이 나와야 할까?

현실은 어떨까. 서울대 이재협(로스쿨 교수)·이준웅(언론정보학과 교수)·황현정(언론정보학과 박사과정) 연구팀은 6월22일 ‘로스쿨 출신 법률가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로스쿨 출신(1~3기), 이들과 동시대의 사법연수원 출신(40~43기), 그리고 이전 시대의 사법연수원 출신(39기 이전) 법률가들을 대상으로 출신 대학, 가정환경, 교육만족도, 직무평가 등을 비교했다.

인상적인 대목은 이렇다. “양 집단(로스쿨과 동시대 사법연수원) 간 가구소득, 부모의 직업과 교육 수준에는 차이가 없었다. 반면 양 집단 법률가의 사회적 배경이 사법연수원 39기 이전 법률가의 그것에 비해 높게 나타나는 세대 차이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부잣집 아들딸이 법률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로스쿨 제도 때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계층이동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사시에 합격한 사법연수원 법률가의 사회적 배경도 마찬가지로 올라갔다.
 

ⓒ시사IN 조남진사법시험 폐지를 재검토하자는 주장이 지난 4월 재보선을 거치며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위는 서울 신림동 고시촌.
아래 〈표 1〉은 로스쿨 법률가와 사법연수원 법률가의 가구소득을 비교한 자료다. 둘 다 1000만원이 넘는다. 이는 상위 10%에 해당하는 가구소득 10분위 그룹의 월평균 소득과 비슷하다. 이 외에도 연구팀은 특히 법률가 부모의 직업과 교육 수준에서 뚜렷한 세대 차이를 발견했다. 로스쿨 출신이든 사법시험 출신이든 젊은 세대로 올수록 법률가 부모의 학력이 높고 고소득 전문직 비율도 높아진다. 법률가의 계층이동성은 확실히 나빠졌다. 하지만 로스쿨 때문인 것은 아니다.

연구 논문 제2저자인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한 발짝 더 나가서, 논문에 쓰지 않았지만 결국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질문을 기자에게 들려줬다. “우리는 왜 법률가 시험에서 ‘개천용’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토론회에서 마치 신앙 간증을 하듯 ‘개천용 성공신화’를 고백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사법시험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이 시험으로 ‘용’이 될 수 있었다는 대목이야말로 존치론의 핵심이었다.

한국의 법률시장은 일종의 국가 면허 시스템이다. 면허를 발급받지 못하면 시장 진입 자체가 막힌다. 공급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면허 발급 숫자를 틀어쥐면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단 면허를 획득한 다음에는 신규 진입자를 최소화하는 것이 법률가들의 중요한 생존전략이 된다. 방법도 간단했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만 제한하면 되었다.

그 결과가 〈표 2〉다. 한국은 변호사의 절대 숫자는 물론이고 인구 10만명당 변호사 비율로 봐도 미국·영국·독일에 한참 못 미친다. 일본만이 한국과 비슷한 강력한 면허제도로 법률가 공급을 통제해왔다. 시장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GDP 대비로 따져도 사정은 비슷하다. GDP 10억 달러 대비 변호사 수를 계산해보면, 미국은 75명, 영국은 54명, 독일은 44명인 반면 한국은 14명이다. 역시 일본만 우리보다 아래다. 7명이다.

강력한 공급 통제가 작동하다 보니 법률가는 만성적 공급 부족 시장에서 ‘면허 프리미엄’을 누려왔다. 사법시험만 통과하면 ‘용’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이런 공급 통제의 한계가 지적되면서 사법시험 합격자 숫자가 점차 늘어나 한때 합격자 1000명 시대를 열었다. 로스쿨 시대가 열린 후로는 한 해에 변호사 시험(로스쿨 졸업자가 치르는 법률가 자격시험) 합격자 1500명이 배출되고 있다. 여전히 면허 총량을 제한하는 시장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유례가 없던 공급 증가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가 〈표 3〉이다. 실제 등록 변호사 숫자는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변호사업계의 순수익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여서, 변호사 1인당 순수익을 계산해보면 감소세가 두드러진다고 서울변협은 분석했다. 법률가 면허의 가치가 빠르게 내려가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표 4〉와 같은 일도 일어난다. 2000만원 이하의 소액 사건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변호사가 붙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한 자릿수에 머무르던 소액 사건 수임률이 2006년 들어 난데없이 31.1%까지 뛰어오르더니, 이후로도 20% 안팎의 수임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면허 소지자의 관점에서 보면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건에까지 진출해야 하는 서글픈 처지다. 하지만 법률 서비스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면, 면허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소액 사건에서도 법률 서비스를 받을 길이 열린 것이다.

장년층 법률가들이 앞다투어 간증하는 ‘개천용 신화’는 큰 기둥 두 개에 기대고 있다. 첫째는 사회 전체의 계층이동성이었다. 50대 이상의 법률가들은 저개발 시대나 고도성장기 초입에 사법시험을 통과했다. 이들 세대에서 ‘가난한 부모 아래서 자란 경험’은 차라리 당연한 얘기였고, 법률가 면허를 획득했을 때 체감할 수 있는 계층 상승의 폭도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사회 전체의 계층이동성이 떨어진 현재는 로스쿨이든 사법시험이든 ‘개천에서 용 되는 이동’은 훨씬 더 좁은 문이 되었다.

둘째는 법률가 면허의 과소 공급이었다. 이 조건에서 면허 획득은 ‘용’으로 가는 자유이용권을 뜻했지만, 높은 면허 가격은 법률 소비자의 고비용과 접근성 차단이라는 희생 위에 유지되었다. 로스쿨 도입 이전부터,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정도의 ‘가벼운 충격’만으로도 이 초과이득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명지대학교 김두얼 교수(경제학)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시절 내놓은 연구보고서에서 “사법정의 구현과 한국 경제 규모에 맞는 법조 전문인력을 공급하려면, 보수적으로 추정하더라도 연 4000명이 신규 공급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법률가들은 면허로 신분 상승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시장 경쟁에서 생존과 탈락이 갈리게 된다. 이런 직업군을 ‘용’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데, 2000년대 이후 이어져온 사법개혁 논의의 핵심에도 이 아이디어가 있다. ‘면허=용’이 되는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개천용 신화’가 기대는 두 기둥, 계층이동성과 면허 통제는 흘러간 옛 노래가 되어가고 있다.

신뢰 확보에 실패한 로스쿨 시대 사법체계

문제는 남는다. ‘로스쿨 입학-변호사 시험-판사·검사 임용’으로 이어지는 법률 공직자 만들기의 고리가 투명하지 않다. 입학시험은 로스쿨의 자율권에 속하고, 변호사 시험 결과는 법으로 공개가 금지되어 있었다. 사법연수원 성적과 같은 기존 잣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판검사 임용은 끊임없이 ‘음서제 논란’에 시달렸다. 이 대목은 사시존치론의 핵심 논거라기보다는 로스쿨 비판의 핵심 논거로 제시된다.
 

ⓒ연합뉴스4월13일 부산고등법원이 부산 동아대 로스쿨에서 처음으로 정식 재판을 열었다.
로스쿨 도입 취지를 보면, 지나친 줄 세우기 경쟁을 지양하고 법률가의 다양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련의 과정에 여러 재량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법률가 선발 과정에서 이런 자율성을 용인할 만큼 신뢰 수준이 높지 않다. 6월25일 헌법재판소는 변호사 시험 점수를 공개하지 않도록 한 법률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른바 ‘빅3’로 불리는 대형 로펌의 사법시험 출신 중견 변호사는 로스쿨 제도의 자율성·불투명성을 두고 “결과적으로 로스쿨 교수들만 편하라고 만든 제도 설계다”라고 혹평했다. “사법시험 시절에는 대학 법대 교수들은 사교육 강사와의 경쟁에서 밀렸다. 현장도 시험도 몰랐으니까. 그런데 로스쿨로 오면서 투명성이 떨어지니까 교수의 권한만 세졌다. 가장 행복해진 사람들이다.”

실제 현장의 사정이야 어쨌든, 로스쿨 시스템의 불투명성을 한국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여론의 압력으로 드러나고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과)는 자신의 블로그에 “필기시험 선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걸 해체하는 데에만 온 힘을 기울이고, 그에 상응하는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은 문제다”라고 썼다. 홍 교수는 줄세우기식 사법시험 시스템을 답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로스쿨이 대안으로 자리 잡으려면 줄세우기식 시험 못지않은 신뢰와 투명성을 로스쿨 스스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재학생 중 저소득자 비율·타교생 비율·출신 대학·성별·나이·성적 평균(최저 합격점수) 등을 스스로 공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판사와 검사 임용 과정에서 벌어지는 ‘음서제 논쟁’도 로스쿨 시스템에서 되풀이해 등장하는 문제 제기다. 사법시험과 달리 로스쿨은 기본적으로 선발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이다. 법원과 검찰은 이제 나름의 방식으로 판사와 검사를 선발해야 하는데, 이 과정 역시 사법시험만큼의 여론 신뢰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특히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가 되어야만 판검사와 같은 공직 진출 자격을 갖게 되는 현 제도는 기회 균등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하므로, 예비시험과 같은 최소한의 대안 경로를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적잖은 지지를 받고 있다.

로스쿨이 ‘개천용 신화’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는 철지난 신화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로스쿨이 사법시험을 대체할 만한 신뢰성 확보에 실패하고 있다는 현실은 앞으로 로스쿨 시대의 사법체계가 답을 찾아야 할 핵심 질문이 될 전망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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