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정희상 전문기자

미군의 ‘탄저균 택배’ 무엇에 쓰려 했나
주한 미군의 오만한 ‘슈퍼 갑질’



오산 미국 공군기지의 ‘탄저균 파동’에 대해 미국 국방장관이 사과했는데도 주한 미군 당국은 오만한 태도를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6월1일 시민사회단체 인사 70여 명이 이번 사태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오산 미군기지 정문을 찾았지만 기지 측은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미군 진압 부대원들을 동원해 쫓아냈다.

그뿐이 아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이번 사태에 관해 주한 미군과 합동 조사를 요구했지만 5월28일 현장 접근을 거부한 채 일방적으로 구두 브리핑만 하고 돌려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 조사에 나선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은 미군 측으로부터 “탄저균이 4주일 전에 도착했다”라는 설명만 들었을 뿐 배송장에 적힌 정확한 국내 도착 날짜와 시간조차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

현장 조사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주한 미군 측이 탄저균의 국내 도착 시점과 운송 기록이 담긴 배송장, 운송 과정의 안전성을 살펴볼 수 있는 운송 용기 등이 폐쇄된 시설 안에 있다며 구두로만 확인해줬다. 실험실 내부 상태와 서류, 용기 등을 직접 확인해야 하지만 군 시설의 특성상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민중의 소리 제공6월1일 ‘탄저균 사태’ 항의문을 전달하려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주한 미군에게 쫓겨났다.
주한 미군은 오산기지와 용산 미군기지 등에 세균무기 탐지와 연구를 맡은 실험시설을 운영하면서 한국 정부에 정식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질병관리본부의 한 관계자는 “오산 공군기지에 세균 연구시설이 있다는 사실은 이번 사건으로 처음 알았다. 현행법상 미군이 국내 미군기지에 세균 연구 실험시설을 설치해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규정만 따르면 될 뿐 한국 정부에 이를 통보할 의무 규정이 없다”라고 말했다.

주한 미군은 서울의 용산기지와 오산 공군기지 등 최소 3곳에 산재한 6개 이상 연구소에서 탄저균을 비롯한 각종 생물화학 살상 무기에 관해 실험과 훈련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태와 비슷한 일이 과거에도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주한 미군은 한국 정부가 접근할 수 없는 성역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앞으로 유사 사고 재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외교부·국방부와 협업을 강화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번 사건이 단순 배달 사고라는 미국 측의 해명을 받아들이고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 근본 대책은 수립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실정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탄저균 같은 생물화학무기 실험과 훈련이 한국 정부와 국민 모르게 진행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한 미군 산하 관련 연구소의 수나 규모는 물론이고 실험 내용과 훈련 내역 일체를 투명하게 공개해 이러한 사건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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