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장이 CEO형이어야 한다는 논리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도 오래되었다. CEO형 총장이란 대학을 기업처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기부금 확충 등을 통해 대학 재정을 튼튼하게 하는 총장을 의미한다. 재정이 대학 발전의 토대가 되는 만큼 재정적으로 튼튼한 대학을 만들어내는 총장이 바람직한 총장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대학 재정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러한 총장이 있는 대학이 발전하는 대학상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대학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발전 방향이 같을 수 없다. 그러므로 대학 총장은 대학의 본질,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나 철학에 대한 이해를 우선해야 한다. 이를 외면하거나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학을 운영하면 대학 발전은 고사하고 학내 갈등만 커질 게 불 보듯 뻔하다. 구조조정을 하듯이 학과를 통폐합하고, 기업의 사내 유보금처럼 적립금을 수천억원씩 쌓아두는 것은 대학이 이익을 남기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대학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적립금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도 제한이 있어야 한다. 교육부가 적립금에 한도를 설정하지 않다 보니 2013년 기준으로 전국 165개 사립대학의 적립금 규모가 총 8조2000억원을 넘었다고 한다. 천문학적 규모의 이 적립금의 주된 출처는 학부모들의 주머니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등록금 인상을 시도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 예산의 편성도 문제다. 다 집행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과다하게 예산을 세우고 남는 예산을 쌓아두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학교 예산의 대부분이 학생들 등록금이고 재단 전입금은 미미한 수준이다. 학교법인은 수익사업을 통해 학교에 전입금을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인데 전입금으로 교직원의 법정부담금조차 내지 못하는 대학이 수두룩하다. 아예 수익사업체가 없는 사립대 재단이 대다수라 학교법인의 직원 급여를 학교 예산에서 지급하다가 적발되기도 한다. 법인이사회는 의무를 이행할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직원 채용에서부터 학교의 각종 공사를 하거나 총장 임명 등 온갖 권한을 다 행사한다.

다른 한편으로, 대학은 주인 있는 기업과 달리 주인이 있을 수 없다. 일단 재산 출연을 한 이상 대학의 소유자는 학교법인이고 법적으로 설립자 개인은 주인이 될 수 없다. 개인의 재산을 출연해서 육영사업을 하기로 한 설립자는 그 정신을 기리는 대상일 뿐이다. 설립자나 대학을 인수한 새로운 ‘주인’의 재산 출연과 정신은 그야말로 교육적 관점에서 인정될 만한 방법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상당수 사립대학은 이사회를 장악한 ‘주인’의 전횡 탓에 전근대적인 일들이 대학 내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상지대학은 옛 ‘주인’의 재등장으로 다시 학내 갈등을 겪고 있으며, 수원여대는 학교 비리 근절을 요구하다 해직된 교수를 취소 처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재임용하면서 학생들 취업 상담하는 일을 맡겼다. 교수 목을 피 묻혀 잘라주겠다는 중앙대 전 이사장의 전제군주 같은 행동 역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내 갈등의 일개 사례일 뿐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 뿐 많은 사립대학에서 ‘주인’들의 왕성한 기업가 정신과 비리 때문에 학내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교수들은 피고용인 정도로 취급받으면서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대학의 비판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고, 대학 총장 그 누구의 발언도 사회적 이목을 끌지 못한다.

언론사 대학평가 기준에 따라 학사 개편하는 대학들

그동안 이른바 기업식 대학 운영은 대학 발전을 가져오기보다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 많은 대학이 취업 강화를 빙자해 학과를 통폐합하고 있다. 이에 더해 교육부가 대학평가 기준으로 취업률을 넣은 것도 문제다. 취업이 국가적 과제이지 대학이 책임질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의 정책 실패나 기업의 편협한 채용 관행을 대학에 떠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학이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취업률이 낮다고 해서 대학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일 취업률만으로 평가를 한다면 인문학 관련 대학은 한국에서 모두 사라져야 할 판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대학들은 언론사의 대학평가 기준에 따라 학사 개편을 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문학도 영어로 가르쳐야 하고, 한국 법전도 영어로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서열화에 물들고 길이 든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 단면이다. 여기에 ‘주인’들의 비리와 몰지각, 무자격이 더해지면서 대한민국의 대학은 나날이 황폐해져간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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