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에 집을 짓겠다고 찾아온 젊은 부부는 일단 눈가와 입 끝에 웃음을 머금고 있는 첫인상이 무척 좋았다. 국도를 한참 달리다 큰 저수지를 끼고 돌아 들어가는, 해발 600m의 깊은 듯 깊지 않은 산자락에 땅을 마련했다고 했다.
막상 가보니 고도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경치가 무척 좋다고 감탄하는 사이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포기하고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자전거 하이킹, 캠핑 등 아웃도어 스포츠를 무척 좋아하는 활동적인 부부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와 그들이 키우는 세 마리 개가 함께 살 집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조건과 조금 다르게 짓고 싶다고 했다.
둘 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부부는 규모는 작더라도 아파트에서는 누릴 수 없는 공간을 담은 집을 짓자고 의기투합했다. 한때는 캠핑카를 살까 고려했을 정도로 야외 활동을 즐기는 터라, 주말이면 늘 서울을 벗어나곤 했다. 커뮤니티에서 찾게 된 횡성의 땅은 여차하면 출퇴근도 가능한 거리에, 멋진 자연이 배경인 절묘한 위치에 있었다.
몇 년 전 크게 흥행했던 영화 〈건축학개론〉의 하이라이트쯤 되는 부분에 남자 주인공이 옥상 정원에서 잠들어 있는 걸 여자 주인공이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아마도 그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그 바닷가 고향집이 아니었을까 싶게 만드는, 관객 모두가 사랑한 장면이었다. 잔디가 포근히 깔려 있고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그런 옥상 정원을 작게라도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첫 번째 요구사항이었다.
일상적인 설계를 뒤집어 부엌부터 만든 이유
두 번째는 키우고 있는 개들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것, 그리고 부엌은 부부가 마주 보며 함께 요리하기에 편리한 공간으로 꾸미자고 이야기했다.
주변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일하기도 편한 부엌…. 우리는 설계할 때 보통 가장 먼저 안방의 위치를 생각하고, 그다음 가족이 모이는 거실을 놓고, 그다음 부엌의 적당한 자리를 찾는다. 그것이 일상적인 설계의 순서라면 순서인데, 이 집은 먼저 부엌부터 자리를 잡으며 시작했다.
집의 규모는 작아도 산자락에 걸친 평평한 언덕 위의 땅은 제법 넓었다. 다만 가로로 긴 형태라 땅의 결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심하다 부엌이 전면으로 튀어나오도록 평면을 T자형으로 배치했다. 동쪽으로 들어오는 현관이 생기고, 그 뒤에 캠핑용품을 수납하는 넉넉한 창고와 화장실을 두었다. 남쪽으로 돌출된 부엌에는 한가운데에 싱크대와 식탁을 합친 커다란 테이블을 두어 요리를 준비하고 먹고 쉬는 일련의 과정을 다 담았다.
부엌 벽의 세 방향 모두 창문을 내어 앞집과 서쪽 마당, 그리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을 바라볼 수 있다. 동쪽 창은 가로로 긴 형태로 길에서는 들여다보기 힘들게 하고 화분이나 간단한 소품도 올려놓을 수 있도록 했다. 남쪽의 창은 산이 보이는 풍경을 담고, 가장 탁 트인 전망을 품는 서쪽의 창은 마당을 향한다.
욕실은 전실과 욕실 부분으로 구분해서, 욕조에 큰 창을 두어 집 뒤편의 푸른 숲을 시원하게 내다볼 수 있도록 했다. 세면대와 욕조 사이에는 개들을 쉽게 목욕시킬 수 있는 전용 욕조를 설치했다.
각각의 공간이 다른 층으로 구분되고, 높이가 달라질 때마다 공간에서의 경험도 달라진다. 침실에서 부엌의 옥상 부분으로 나가는 테라스가 있고, 벽에 매달린 날렵한 철제 계단을 따라 반 층 더 올라가면 거실 윗부분에 만들어진 테라스로 나갈 수 있다. 침실 위에도 옥상이 있으니 말하자면 옥상이 세 개 생긴 셈이다.
횡성이 다른 지역보다 평균기온이 2~3℃ 낮다는 기후적 특성을 감안해 단열 처리에 신경을 많이 썼고, 외벽의 재료는 손을 덜 타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연륜이 쌓이는 벽돌로 골랐다.
삶을 여행처럼 즐기는 유쾌한 건축주를 닮아서 밝고 명랑한 집이 되었다. 주인들은 집을 짓고 나서 집 밖으로 가는 여행 대신 집 안에서의 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어떤 날은 부엌에서 풍경을 즐기고, 어떤 날은 거실에서 영화를 보고, 또 다른 날은 옥상에서 별을 만난다. 사진작가가 우연히 얻은 사진처럼, 별이 흐르는 밤에 찾아가 보고 싶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