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는 일이란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꿈을 이루는 일이다. 명색이 건축가인 우리 또한 아직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일단 땅이 있어야 하는데 전국 곳곳의 좋다는 땅을 여기저기 가서 보았지만 여기다 싶은 집터를 만나지 못했고, 살고 싶은 집의 구체적인 이미지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마도 우리가 집을 짓는다면 바다와 산이 함께 있는 동네인 속초나 경주 어디쯤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꿈꾸고 있다. 그래서 좋은 땅을 찾아 집을 짓겠다며 우리를 만나러 오는 건축주들을 볼 때마다 부러운 마음과 함께 참 대단한 결단을 내린 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원도 횡성에 집을 짓겠다고 찾아온 젊은 부부는 일단 눈가와 입 끝에 웃음을 머금고 있는 첫인상이 무척 좋았다. 국도를 한참 달리다 큰 저수지를 끼고 돌아 들어가는, 해발 600m의 깊은 듯 깊지 않은 산자락에 땅을 마련했다고 했다.

막상 가보니 고도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경치가 무척 좋다고 감탄하는 사이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포기하고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자전거 하이킹, 캠핑 등 아웃도어 스포츠를 무척 좋아하는 활동적인 부부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와 그들이 키우는 세 마리 개가 함께 살 집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조건과 조금 다르게 짓고 싶다고 했다.
 

ⓒ진효숙위치: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 대지 면적:620㎡(187.55평) 건축 면적:55.20㎡(16.69평) 연면적:96.91㎡(29.31평) 규모:지상 2층 건폐율:8.9% 용적률:15.63% 구조:철근 콘크리트조 설계·감리:가온건축(studio_GAON) 시공:아뜰리에건설 임형남·노은주 소장은 부부 건축가로 한국공간디자인 대상을 받은 ‘금산주택’(2011년)을 설계했다. ‘산조의 집’ ‘문호리 주택’ ‘루치아의 뜰’ 등을 설계한 부부 건축가는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준다> <사람을 살리는 집> <나무처럼 자라는 집> 등의 책을 펴냈다.
집은 사는 사람을 닮는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생각이 집에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집은 두 사람의 활동적인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즐거움’ 혹은 ‘유쾌함’이 그대로 녹아들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다. 자전거 하이킹과 캠핑을 좋아하는 그들은 휴일에 캠핑을 가듯 집에서 휴식과 놀이를 즐길 수 있기를 원했다. 자연의 푸르름 속에서 함께 맛있게 먹고, 재밌는 것을 보고, 그늘에 해먹을 달아 낮잠을 자고….

둘 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부부는 규모는 작더라도 아파트에서는 누릴 수 없는 공간을 담은 집을 짓자고 의기투합했다. 한때는 캠핑카를 살까 고려했을 정도로 야외 활동을 즐기는 터라, 주말이면 늘 서울을 벗어나곤 했다. 커뮤니티에서 찾게 된 횡성의 땅은 여차하면 출퇴근도 가능한 거리에, 멋진 자연이 배경인 절묘한 위치에 있었다.

몇 년 전 크게 흥행했던 영화 〈건축학개론〉의 하이라이트쯤 되는 부분에 남자 주인공이 옥상 정원에서 잠들어 있는 걸 여자 주인공이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아마도 그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그 바닷가 고향집이 아니었을까 싶게 만드는, 관객 모두가 사랑한 장면이었다. 잔디가 포근히 깔려 있고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그런 옥상 정원을 작게라도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첫 번째 요구사항이었다.

일상적인 설계를 뒤집어 부엌부터 만든 이유

두 번째는 키우고 있는 개들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것, 그리고 부엌은 부부가 마주 보며 함께 요리하기에 편리한 공간으로 꾸미자고 이야기했다.

주변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일하기도 편한 부엌…. 우리는 설계할 때 보통 가장 먼저 안방의 위치를 생각하고, 그다음 가족이 모이는 거실을 놓고, 그다음 부엌의 적당한 자리를 찾는다. 그것이 일상적인 설계의 순서라면 순서인데, 이 집은 먼저 부엌부터 자리를 잡으며 시작했다.

집의 규모는 작아도 산자락에 걸친 평평한 언덕 위의 땅은 제법 넓었다. 다만 가로로 긴 형태라 땅의 결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심하다 부엌이 전면으로 튀어나오도록 평면을 T자형으로 배치했다. 동쪽으로 들어오는 현관이 생기고, 그 뒤에 캠핑용품을 수납하는 넉넉한 창고와 화장실을 두었다. 남쪽으로 돌출된 부엌에는 한가운데에 싱크대와 식탁을 합친 커다란 테이블을 두어 요리를 준비하고 먹고 쉬는 일련의 과정을 다 담았다.

부엌 벽의 세 방향 모두 창문을 내어 앞집과 서쪽 마당, 그리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을 바라볼 수 있다. 동쪽 창은 가로로 긴 형태로 길에서는 들여다보기 힘들게 하고 화분이나 간단한 소품도 올려놓을 수 있도록 했다. 남쪽의 창은 산이 보이는 풍경을 담고, 가장 탁 트인 전망을 품는 서쪽의 창은 마당을 향한다.

욕실은 전실과 욕실 부분으로 구분해서, 욕조에 큰 창을 두어 집 뒤편의 푸른 숲을 시원하게 내다볼 수 있도록 했다. 세면대와 욕조 사이에는 개들을 쉽게 목욕시킬 수 있는 전용 욕조를 설치했다.
 

ⓒ진효숙침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널찍하게 만들었다. 프로젝트를 이용해 벽을 화면 삼아 영화 등을 볼 수 있다.
서쪽 날개 부분은 1층이 낮은 필로티로 되어 있어 여름에 시원한 그늘이 되는 공간이다. 여기에 해먹을 달아 캠핑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내부에서는 계단을 반 층 올라가 거실이 나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거실에서 다시 반 층을 올라가면 침실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운동장 스탠드처럼 앉을 수도 있고 수납도 가능하게 널찍한 형태로 만들고, 거실 벽을 향해 영화를 투사해 감상할 수도 있다. 결국 내부는 문이 없는 하나의 공간이 되었다.

각각의 공간이 다른 층으로 구분되고, 높이가 달라질 때마다 공간에서의 경험도 달라진다. 침실에서 부엌의 옥상 부분으로 나가는 테라스가 있고, 벽에 매달린 날렵한 철제 계단을 따라 반 층 더 올라가면 거실 윗부분에 만들어진 테라스로 나갈 수 있다. 침실 위에도 옥상이 있으니 말하자면 옥상이 세 개 생긴 셈이다.

횡성이 다른 지역보다 평균기온이 2~3℃ 낮다는 기후적 특성을 감안해 단열 처리에 신경을 많이 썼고, 외벽의 재료는 손을 덜 타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연륜이 쌓이는 벽돌로 골랐다.

삶을 여행처럼 즐기는 유쾌한 건축주를 닮아서 밝고 명랑한 집이 되었다. 주인들은 집을 짓고 나서 집 밖으로 가는 여행 대신 집 안에서의 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어떤 날은 부엌에서 풍경을 즐기고, 어떤 날은 거실에서 영화를 보고, 또 다른 날은 옥상에서 별을 만난다. 사진작가가 우연히 얻은 사진처럼, 별이 흐르는 밤에 찾아가 보고 싶은 집이다.

기자명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