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등교에 맞춰 머리에 까치집 한 채 얹고 가는 길. 알림장 한번 들춰보지 않아도 까먹지 않고 확인하는 것은 냉장고에 붙여놓은 급식 식단표. 이런 아들 하나 키우고 있다면 당신은 ‘최급식’ 엄마다.

학교 체육복을 교복·실내복·잠옷으로 통합해 입고 ‘단체 카톡방’에서 빠져나올 줄 모른다. 대답은 “몰라” “싫어” “그냥” 세 마디. 부모와는 전쟁 중이지만 우스갯소리로 북한의 남침 야욕을 막아내고 있는 평화의 전사들. 이들은 ‘중2’이며 ‘장급식’이기도 하다.

까만색 뿔테 안경과 들뜬 비비크림. 같은 미용실 원장님에게서 탄생한 듯, 똑같은 헤어스타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질질 끌고 다니는 삼선 슬리퍼. 그들의 주요 언어 코드는 ‘욕 반 말 반’이다. 이들이 바로 ‘김급식’씨들.

전국의 ‘급식이’들은 633만3617명(2015년 3월 현재)이다. 물론 여기에는 교직원 50여만 명의 한 끼도 포함되어 있다. 각자 성씨는 다르지만 대한민국 학생들은 일단 최급식과 장급식, 김급식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장난스러운 이름은 한 업체가 개발한 급식 메뉴 애플리케이션으로, 초등학생의 첫 자음인 ‘ㅊ’을 딴 ‘최급식’은 초등생용 급식 앱이다.

나머지 장급식과 김급식은 각각 중학생, 고등학생의 첫 자음을 따서 만든 이름이다. 각 학교를 설정해놓으면 매일 급식 메뉴 정보가 제공되고 급식 평가(대부분 악평이지만)를 올리거나, 심지어 다른 학교를 설정해놓아 타 학교 급식 메뉴와 비교 평가를 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때는 단원고의 급식 메뉴 사진을 공유하면서 동년배 ‘급식이’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시사IN 조남진3월12일 경남도청 인근 창원 용남초등학교 학생들이 급식을 먹고 있다. 경남은 4월1일부로 ‘유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관심 있는 엄마들이야 급식 식단표로 아이들의 한 끼가 무엇인지 가늠하지만, 웬만한 성의가 있지 않고는 매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한 끼를 ‘터치’로 알아낸 지 오래다. 급식 앱은 스마트폰을 가진 학생들이라면 다운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교육부도 앱 개발회사에 급식 데이터를 제공한다. 이 덕분에 실시간으로 전국의 초·중·고교 급식 메뉴를 알 수 있다.

지금 각 가정에서 ‘급식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들은 아마 다수가 도시락 세대일 것이다. 도시락에 얽힌 추억 한두 개 정도야 누구나 갖고 있지만 그 기억이 즐겁기만 할까? 부끄러운 반찬에 대한 기억은 라디오 추억담의 단골 소재이니 각설하자. 무엇보다 소시지 반찬이든, 김치 반찬이든 도시락을 싸는 주체들(대부분 엄마들)의 고통은 매우 컸다.

그래서 1998년 ‘국민의 정부’에서 학교 급식 전면 실시를 정책으로 내걸고, 이듬해 벼락같이 전면 실시할 때 엄마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있었다. 부실 급식 논란과 식중독 사고가 빈번했어도, 심지어 밥을 퍼주러 학부모가 학교에 가야 하는 등,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도시락 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먼 훗날의 추억으로 승화시키기에는 도시락을 싸는 스트레스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도시락의 추억은 사라졌지만 한국의 학교 급식 제도는 그나마(?) 성공한 교육제도이면서 보편적 복지의 대표 모델이기도 하다. 건국 이래 수많은 교육정책은 자본(사교육)의 기민함을 따라가지 못했다. 부모가 지닌 부의 수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게 성적이 된 세상이다. ‘유전출세 무전추락’의 삶을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미 배워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무상급식은 부모의 능력(돈)과 상관없이 맘 편하게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평등의 기억이기도 하다. 이는 도시락 세대가 갖지 못한 ‘식판의 추억’이기도 하다.

중간중간 흔들림은 있었지만 안착 단계를 지나, 친환경 전환을 비롯해 급식 질의 문제를 고심 중인 시기에 급식은 유상과 무상, 선별과 보편이라는 지겨운 구도에 또 갇히고 말았다.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민투표라는 무리수를 둔 이후 잠잠하더니,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무상급식 폐지에 걸었다. 얄궂게도 홍 지사는 ‘성완종 리스트’에 딱 걸려 자신의 친정이기도 한 검찰청 앞에 서 있는 신세가 돼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홍 지사의 신상 변화와 상관없이 경남의 학부모 통장에서는 지난 4월1일부로 급식비가 빠져나가는 중이다.
 

ⓒ경남신문 제공1960년 진주 수곡초등학교 원계분교의 모습. 교사가 점심시간에 학생 도시락을 검사하고 있다.

식판에 얽힌 수많은 사연에 귀 기울여야

급식 학년은 다 달라도 전국의 ‘급식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은 수요일, 특식의 날이다. 스파게티나 돈가스, 가쓰동까지 ‘다국적 음식’이 나오는 날. 급식 앱 조회 수가 가장 많은 날이기도 하다. 한편 교직원에게는 괴로운 날이기도 하다. 아이들 입맛에 맞는 음식이 주로 나오니 이런 날은 자장면이라도 시켜 먹어야 하나 고민이 살짝 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책상 밖으로 다리를 쭉 빼내고, 4교시 종이 치자마자 우사인 볼트처럼 내달린다. 급식 지도를 하는 선생님은 밀치지 말고 줄을 잘 서라고 잔소리해야 하고, 영양교사와 조리사들은 떡갈비와 돈가스가 모자라지 않도록 배식 조절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밥차가 올라오는 교실 배식의 학교에서는 급식 당번이 ‘갑’인 날. 담임교사는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신의 한 수’로 급식 지도를 하는 풍경이 벌어진다.

먹는 것은 곧 정치라는 게 맞는 말이다. 지자체장 선거에 급식의 명운이 걸려 있지 않은가. 하지만 정치로서의 급식뿐만 아니라 끼니로서의 급식, 밥으로서의 급식을 이야기할 때이기도 하다. 우리가 급식 식판을 정치에 가둬둔 순간에도 ‘최급식’ 어린이는 장급식-김급식으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익숙한 일상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기 쉽지 않았던, 식판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자리에 서야만 진정 ‘급식이’들을 위한 급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기자명 정은정 (농촌·농업사회학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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