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운명’ 안녕할까요
  • 이오성 기자
  • 호수 399
  • 승인 2015.05.0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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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전패로 끝났다.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출범한 지 두 달 조금 넘었고 대안이 없어 문재인 체제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 대표는 제1야당을 향한 의문에 답해야 한다.
‘자진 납세’부터 하자. 재보선을 10여 일 앞두고 쓴 기사(<시사IN> 제397호 ‘최대 승부처 ‘관악을’ 부탁해’)에서 서울 관악을의 투표 지형을 봤을 때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마의 35% 벽을 넘지는 못하리라는 게 중론’이라고 썼다. 틀렸다. 오신환 후보는 이번 재보선에서 무려 43.89%를 득표했다. 10%포인트 가까이 더 얻었다. ‘성완종 게이트로 위기감을 느낀 새누리당 지지층이 결집할 경우 관악을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높다’는 안전장치를 달아두기는 했지만, 어쨌든 틀렸다.

35%를 넘지 못하리라고 본 근거는 과거 선거 결과였다. 2008년 총선을 빼고 역대 선거에서 여권 후보가 모두 35%를 밑돌았다는 야권 관계자들의 분석에 기초했다. 정동영 후보 측에서 특히 이런 논리를 강하게 피력했다. 정태호 후보 측도 여권 후보의 파괴력이 떨어진다고 봤다. ‘야권 대 야권의 싸움’이라는 규정이었다. 이 또한 틀렸다.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표 쏠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관악을 개표 결과는 정태호 34.2%, 정동영 20.15%였다. 야권 지지자들이 막판에 ‘이길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일은 없었다. 관악을의 야권 지지자는 제1야당 후보에게 쏠리지 않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4·29 재보선에서 패배한 다음날 긴급 의원총회를 마치고 나오는 문재인 대표. 그의 정치력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선거 결과를 놓고 ‘야권 심판 외쳤던 정동영이 심판당했다’라는 식의 분석이 나왔다. 과연 그럴까. 정동영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새누리-비새정치민주연합’ 성향을 띤 야권 심판 세력의 존재감이 컸다. 그들은 자신의 표가 사표(死票)가 되는 것을 넘어, 새누리당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1야당 후보를 찍지 않았다. 전체 투표자의 20%가 넘는 수치였다. 그 결과 야권 지지자는 ‘27년 야권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이번 선거 결과가 새정치민주연합에 가장 아픈 대목은 이것이다. 1여 대 다(多)야 구도에서 새누리당과 맞서기 위해서는 결국 어느 한쪽, 특히 제1야당으로 표가 쏠릴 것이라는 ‘믿음’이 깨졌다. 이 균열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선거 결과를 들여다보자. 이번 관악을 선거(투표율 36.9%)에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는 3만3913표(43.89%)를 얻었다. 2012년 19대 총선(투표율 53.76%)에서는 3만7559표(33.28%)를 얻었다. 이번 재보선 투표율이 지난 총선보다 18%포인트가량 떨어졌음에도 오신환 후보의 표는 3600여 표밖에 빠져나가지 않았다. 27년 만의 ‘정권 교체’를 기대한 보수는 똘똘 뭉쳤다.

관악을, 총선에 비해 야권 지지자 44% 이탈

반면 야권 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 후보가 얻은 표는 7만5285표였다(통합진보당 이상규 후보 4만3158표, 무소속 김희철 후보 3만2127표). 전체 투표의 66%가 넘는 수치였다. 그런데 이번 재보선에서는 4만1996표에 불과했다(정태호 후보 2만6427표, 정동영 후보 1만5569표). 무려 3만3000여 표가 빠져나갔다. 지난해 총선 대비 44% 정도의 유권자가 야권에 등을 돌렸다. 요컨대 새누리당 지지자의 표는 굳건했는데, 야권 지지자의 표는 지난 총선 결과보다 절반 가까이 이탈했다는 이야기다.

관악을뿐만 아니다. 경기 성남중원, 인천 서구강화을, 광주 서구을 등 새정치민주연합이 전패한 지역의 승리자는 모두 10%포인트가 넘는 득표율 차이로 당선했다. 개표 직전까지 나돌던 ‘박빙 판세’는 우스운 이야기가 되었다. 단 한 곳도 박빙은 없었다. ‘전패’라는 결과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선거의 내용이다. 야권 유권자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는 것을 막아주지 않았다. ‘야권 심판’ 정서가 작동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가장 손쉬운 분석은 야권 패배의 원인을 ‘야권 분열’로 돌리는 길이다. 이미 <한겨레> 등 진보 언론에서도 야권 분열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지목하고 나섰다. 물론 야권 분열은 새정치민주연합에 치명적인 ‘족쇄’였다. 1대1 구도로도 만만치 않은 판에 후보가 나뉘었으니 어려운 선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분열이 모든 걸 설명해주지 않는다. 경기 성남중원의 경우 새정치민주연합 정환석 후보(35.62%)와 무소속 김미희 후보(8.46%)의 득표율을 합쳐도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55.9%)의 득표율보다 10%포인트 이상 적다. 야권 후보가 갈라지지 않았어도 질 승부였다는 것이다. 관악을과 마찬가지로 지난 총선에서 야권에 표를 준 이들이 대규모로 등을 돌렸다. 이를 야권 분열에 염증을 느낀 야권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고 해석하면 그만일까. 오히려 제1야당이 야권 지지자의 유인에 실패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야권 분열 여파가 미미했던 인천 서구·강화을의 경우 그 어느 때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당선 가능성이 높았다. 인천광역시 재정 파탄의 주범으로 거론되는 안상수 전 인천시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신동근 후보는 이 지역에서만 벌써 네 번째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한 인물이다. 선거를 거듭하면서 득표율도 가파른 상승세였다. 정의당 후보가 출마했지만, 선거전은 여야 1대1 구도로 짜였다. 그러나 재보선 결과는 안상수 54.11% 대 신동근 42.85%. 지난 총선보다 오히려 더욱 벌어진 수치였다. 야권 단일화도 돌파구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재보선의 낮은 투표율을 패배의 원인으로 돌리는 분석도 정답은 아니다. 과거 선거 결과가 말해준다. MB 정부 2년차인 2009년 10월28일 전국 다섯 곳에서 재보선이 치러졌다. 당시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은 경기 수원장안(이찬열), 경기 안산상록을(김영환),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정범구)에서 승리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보수의 텃밭인 경남 양산(박희태)과 강원 강릉(권성동)에서 승리했을 뿐이다. 그보다 6개월 앞서 치러진 2009년 4월29일 재보선에서는 전국 다섯 군데에서 한나라당 소속 당선자가 한 명도 없었다. 야당의 압승이었다. 2011년 4월27일 재보선에서도 손학규 후보(전 통합민주당 대표)가 보수 색이 짙은 성남 분당을에서 승리하며 기염을 토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4월30일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재보선 승리를 축하하며 김무성 대표를 업어주고 있다. 김 대표는 선거 승리로 정치적 주가를 높였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2015년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율보다 낮다고는 해도, 2009년 선거는 겨우 집권 2년차에 치러진 선거였다. 정부·여당의 힘이 남아 있을 때 치른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했다. 재보선이 늘 야당에 불리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치는 행위의 ‘결과’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분야다. 선거에서 이기면 모든 과정이 승리의 드라마로 설명된다. 패하면?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까지 모두 ‘패인’으로 기록된다. 선거에서 패한 쪽에 비판의 쓰나미가 덮친다.

문재인 대표에게 책임 묻는 ‘공천 실패론’

이번 재보선 이후에도 문재인 대표의 실책을 거론하는 이야기가 쏟아진다. 그중 하나가 ‘공천 실패’다. 야권 분열을 막지 못한 책임을 문 대표에게 묻는 시각이다. 관악을의 경우 0.6%포인트 차이로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김희철 전 의원이 정태호 후보를 돕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뼈아팠다. 김 전 의원은 자신에게 우호적인 권리당원 1000명이 선거인 명부에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한때 당내 동교동계까지 김희철 전 의원 편에 서면서 내부 전선이 친노 대 호남으로 어그러졌다.

물론 룰은 룰이다. 그러나 김희철 전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도 경선 과정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경선 과정에 논란이 일 경우 어떤 식으로든 반발할 것이 뻔했다. 당내에서는 “김희철 전 의원에게 1년짜리 임기에 도전할 기회를 주고, 대신 차기 총선 불출마 약속을 받았어야 했다”라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정동영 후보가 관악을 출마를 결심한 요인 중 하나도 김희철의 반발로 생긴 ‘빈틈’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광주 서구을도 비슷했다. 광주 서구을에 자신에게 우호적인 권리당원이 거의 없는 천정배 전 장관이 경선(권리당원 50%+국민 여론조사 50%)에 참여하지 않으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이미 지난해 7·30 재보선 때 광주에서 출마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으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전략공천되는 바람에 분루를 삼킨 그였다. 문재인 대표가 경선에 참여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했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천정배의 탈당을 막기 위해 광주에서만은 경선 방식을 달리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럼에도 탈당했다면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싸움의 명분이 생긴다. 그랬다면 문 대표가 야권의 텃밭인 광주에 여섯 번이나 내려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천정배의 ‘여의도 복귀’가 새정치민주연합에 미칠 파장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당내에서 중립지대에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관계자는 “이번 재보선이 중요했다면 문재인 대표가 좀 더 적극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한다. 당내 계파 갈등에 겁을 먹었는지 원칙만 강조할 뿐 선거에 이기기 위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재보선 전패의 후폭풍을 보니 더욱 아쉽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체제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전적으로 문재인 대표에게 묻는 것은 과하다는 의견이 당내에 지배적이다. 지난 2월 지긋지긋한 비대위 체제를 끝내고 당을 정비한 지 두 달여 만에 치른 선거의 결과로 사퇴시키는 건 가혹하다는 것이다. 호남 패배의 책임을 문 대표에게 직접 묻기도 어렵다. 지난해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에서 치러진 7·30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정현 의원에게 순천·곡성을 빼앗긴 바 있다. ‘호남 균열’은 이미 상수였다.

무엇보다 문 대표의 지지율이 당장 무너질 기미가 없다. 지난 대선에 출마한 후보로서 여전히 지지층이 두껍다. 당내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민주화 이후 야당 대표로는 최초로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인물”이라는 소리가 재보선 패배 직후에도 나올 정도다. 문재인 이후 마땅한 당 대표 대안도 없다.

문제는 ‘당 밖’이다. 재보선 직후 여론이 심상치 않다. 문재인 대표 체제에 비판적인 진보·개혁 성향의 SNS 이용자들이 스피커를 작동하기 시작했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이야기가 여러 공간에서 오르내린다. 친노무현 세력의 ‘영남 패권주의’가 위기의 본질이라는 주장도 선거 패배 이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안철수 의원의 대선 불출마 이후 곪았던 갈등이 또 불거지는 분위기다.

‘당 밖’의 비판과 심상치 않은 ‘호남의 움직임’

호남의 움직임은 더욱 심상치 않다. 천정배 의원의 여의도 입성으로 ‘호남 신당’이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참신한 ‘뉴 DJ들의 연합’ 혹은 ‘호남 자민련’ 참조). ‘무소속’ 천 의원은 재보선 이튿날 국회에서 의원 선서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새정치민주연합에 좋은 사람이 많다. 절반 정도 빼올까요?”라며 뼈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실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가벼운 행동이었지만, 호남 신당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도 받아들여졌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전북은 기초단체장 14곳 중 절반, 전남은 22곳 중 8곳이 무소속이었다. 역대 최다 기록이다. 호남 신당이 기지개를 켤 경우 이들이 신당의 ‘토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4년 7·30 재보선 당시 이정현 후보가 호남에서 당선되었다. 이때부터 ‘호남 균열’은 상수였다.
문재인 대표 취임 전 새정치민주연합은 위기였다. 비대위 체제에서 정당 지지율은 바닥을 기었고, 당내에서는 ‘분당’ 움직임이 일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제3신당’에 대한 유권자의 열망이 강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30일 <문화일보> 여론조사에서는 제3신당이 창당될 경우 신당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21.1%로, 새누리당(29.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호남에서도 제3신당에 대한 지지율(25%)이 새정치민주연합(19.4%)보다 높았다. 정동영 전 의원을 주축으로 하는 국민모임이 신당 추진을 본격화한 것도 이 무렵이다.

문재인 대표가 수장이 된 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역위원장 인선을 마무리하는 등 빠르게 체제를 정비해갔다. ‘탕평과 혁신’을 내세우며 주도권을 쥐었다. 문재인 개인 지지율은 물론, 정당 지지율도 가파르게 올랐다. 제3신당 같은 ‘딴소리’는 자연스럽게 진압됐다. 한동안 문 대표 주변에서는 “내년 총선 관리만 잘하면 대선 간다”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왔다. ‘재보선 전패’는 문재인의 정치 스케줄에 없었다. 야권 지지자의 기대감이 컸기에 충격도 크다. “해체 수준의 혁신 없이는 총선도 기약할 수 없다”라는 비판(유승찬 소셜 미디어 컨설턴트)까지 나온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대선 패배 후 1년 만에 펴낸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대안 정당을 만들려는 노력과 민주당을 혁신하는 두 가지 길을 놓고 민주당을 혁신하는 길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현실정치에서 압도적 힘을 가진 새누리당과 맞서려면’ 제1야당을 고치고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물음은 다시 되돌아왔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혁신하는 길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재보선 패배의 여파로 의문부호는 더욱 커질 것이고, 문 대표는 그에 답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운명’이 그에게 달려 있다.

문재인의 ‘운명’ 안녕할까요
참신한 ‘뉴 DJ들의 연합’ 혹은 ‘호남 자민련’
지지층 이탈 막은 ‘유체이탈’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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