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의 동부 화롄. 대리석 공장 안 공연장으로 버스가 줄지어 들어왔다. 빨강, 파랑 아웃도어를 입은 한국의 중장년 관광객들이 객석에 앉자, 아미족 주민들이 등장해 전통춤 공연을 시작했다. 어쩌다 합류하게 된 패키지 관광의 한 코스였다.

아미족은 대륙의 한족들에게 터전을 내주기 전부터 타이완에서 살아온 선주민 중 가장 큰 부족으로, 독특한 노래와 춤 문화를 가지고 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주제곡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이니그마(Enigma)의 곡, ‘리턴 투 이노센스(Return to innocence)’에 샘플링된 까마득하고 신비로운 창법의 권주가가 그들의 전통민요다.

패키지 관광의 무료 공연에 별 기대는 없었지만 혹시 그들의 독특한 창법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했다. 그 일말의 희망은 한 부족민의 입에서 어눌한 한국말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퍼지는 순간, 민망함과 불쾌함으로 변했다. 취기로 얼굴이 불콰한 관광객 두세 명이 춤을 추었고, 그 기이한 장면 뒤로 아미족의 기념품 판매가 이어졌다. 쓴웃음을 지으며 도망치듯 공연장을 나가는 사람들 뒤로 한 가이드는 외쳤다. “옥 매장으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연합뉴스남대문 시장에서 열린,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퍼레이드.
한국관광공사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내국인 출국자는 해마다 8%가량 증가해 지난해 1600만명을 넘었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중장년층 관광객의 증가다. 그러나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저가의 패키지 상품은 쇼핑 위주의 무리한 일정과 수준 낮은 서비스로 뒷맛이 씁쓸하다.

깊은 시선의 여행기로 주목받은 젊은 사회학자 윤여일은 〈여행의 사고〉에서 ‘꺼려지는 여행’을 이렇게 정리했다. “경치나 풍물을 눈에 바르는 여행(그야말로 관광), 그리하여 관광객의 시선에 머무르는 여행, 그리하여 한 번 찍었으니 두 번 다녀올 필요가 없는 여행, 현지 사회의 역사와 고유한 맥락을 무시하는 여행, 그래서 꼭 이곳이 아니라 저곳을 다녀왔어도 되는 여행, 이리저리 난폭하게 문명의 잣대를 들이대는 여행, 자신의 시간 위에서만 배회하는 여행, 그래서 결국 자신이 바뀌지 않는 여행.”

현실적으로 청년들의 여행 같지는 못하겠지만 어르신들의 여행도 여행다워야 한다. 쇼핑센터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관광이 아니라 “현지의 생활감각을 체험하고 마음의 장소에 다다를 수 있는” 여행이어야 한다. 관광객 수보다 관광의 질을 높이는 일을 연구해야 할 시점이다. 1000만을 바라보며 국내 관광과 유통업계에 단비를 뿌려준 중국 관광객(유커) 어르신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기자명 박정남 (교보문고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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