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 대법관의 자격을 묻다
  • 김은지 기자
  • 호수 398
  • 승인 2015.05.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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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의 핵심 쟁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 의혹이었다. 청문회 후 일선 판사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는 박 후보자를 비판하는 글은 물론 집단행동까지 제안됐다.
4월7일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59·사법연수원 11기) 인사청문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그때 그 사람들’이 28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수사 검사였던 안상수, 추가 범인이 더 있다는 사실을 밖으로 알린 이부영, 박종철의 형 박종부씨 등이 증인석과 참고인석에 앉았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 의혹이 청문회 핵심 쟁점이었다.

시체 화장을 미루고 부검을 해 사인을 고문치사로 밝혀낸 검찰이 정작 첫 수사는 사건 당사자인 경찰에게 맡겨버렸다. 범인이 2명이라는 경찰 조사를 넘겨받자마자 검찰은 그 내용 그대로 나흘 만에 기소했다. 현장검증도 당사자 없이 했다. 박 후보자는 당시 검찰 수사팀이었다. 의혹의 당사자가 대법관이 될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전해철 청문위원(전):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1차 수사에서 회유나 외부 압력을 받았습니까?
박상옥 후보자(박):그런 압력이나 간섭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4일간 수사가 이례적으로 짧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비록 기간은 짧았지만 모든 의혹들을 저희가 다 해결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안상수 증인은 당시 정부가 날짜까지 못 박아 ‘23일 현장검증, 24일 기소하라’ 지시해 이의를 제기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유독 후보자는 아무 문제의식이 없습니까?
:주임검사의 지시에 따라 조사를 했고….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4월7일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맨 앞)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고 박종철의 형 박종부씨와 안상수 창원시장 등이 참고인과 증인으로 참석했다.
‘막내검사’론을 내세우는 모양새였다. 1984년 서울중앙지검으로 첫 발령을 받은 박상옥 후보자는 박종철 사건 당시 31세, 4년차 검사였다. 경찰이 송치한 두 피의자를 안상수 검사와 각각 한 명씩 나눠 조사하며 수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 수사가 부실했다는 인정보다는 ‘지시’를 강조했다. 위에서 시킨 일을 따랐을 뿐이라는 뜻이었다.

:지시를 따르더라도 수사 기간이 짧으냐 이례적이냐는 건 느낄 수 있어야지요.
:그렇지만 그 결정과 판단은 주임검사께서 하시는 겁니다.
:범죄 수사는 현장검증이 중요하지요?
:예.
:피의자들을 (현장검증에) 참여시키지 않아 안상수 당시 검사는 항의했습니다. 왜 후보자는 항의하지 않았습니까?
:지시에 따라서 수사도 하고 그때….
:자꾸 ‘지시’ 하지 마시고요.

같은 자리에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이었던 최환 변호사조차 “관례가 없는 일”이라며 부실한 현장검증을 꼬집었지만, 박 후보자는 끝내 지시 사항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검찰 기소 석 달 후, 1987년 5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추가 범인이 3명 더 있다고 폭로했다. 검찰도 기소 이후 당사자 2명의 양심고백으로 미리 안 사실이었다. 추가 혐의를 포착하고도 수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장 검찰의 수사 축소·은폐 의혹이 일었다. 같은 사건은 재수사와 재재수사까지 거치며, 해당 수사팀이 배제되고 대검 중수부가 직접 챙겼다. 최환 변호사는 “같은 사건으로 수사를 세 번이나 했다는 것만으로 당시 수사팀은 직무유기를 한 거다”라고 말했다.

참고인으로 출석해 현장에서 청문회를 지켜보던 박종부씨는 속으로 혀를 찼다. 백번 양보해, 외압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코드를 맞춰 시키는 대로만 수사를 했던 검사가 왜 대법관이 되려 하는지 의아했다. 법을 잘 모르는 그가 생각하기에도, 지시에 잘 따르는 검사와 독립적 판단을 해서 판례를 만들어내는 최고법원 대법관의 역할은 다르다. 검찰에서 서울 북부지검장까지 지낸 후 2009년 퇴임해 변호사로 활동하며 2013년까지 18억3000만원을 번 박 후보자가 과한 욕심을 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은폐·축소 사건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불이익까지는 받지 않았더라도, 대법관으로 영전하는 모습은 ‘종철이 볼 낯이 없다’는 게 박씨의 마음이다.

대법원장의 취임사를 고스란히 돌려주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말도 대법관의 권위와 어울리지 않는 변명이라 여겼다. 박씨는 “당시 목숨 걸고 추가 범인이 더 있다는 사실을 밖으로 전달한 교도관 2명도 있었고, 이부영 전 의원도 많은 위험을 감수했다. 그런 상황에서 양심고백을 한 두 피의자의 말을 석 달 가까이 뭉갠 건 방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유족만의 생각이 아니다. 청문회 후, 판사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박노수 판사(49·사법연수원 31기)는 4월16일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온라인에 올라온 박 후보자 청문회 전 과정을 주말 동안 다 봤다는 그는 “박 후보자가 은폐·축소를 물리치고 공을 세운 검사가 아니라, 은폐·축소 기도를 알면서도 묵인 또는 방조한 검사에 가깝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박 판사 또한 ‘어쩔 수 없었다’는 박 후보자의 시대 탓을 비판했다. 그는 “아무리 상황적 한계가 있다고 해도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축소하는 데 협력·순응한 검사가 6월 항쟁을 거쳐 탄생한 민주 헌법하의 대법관이 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라고 선을 그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신창언 주임검사(오른쪽)와 안상수 검사(가운데), 박상옥 검사(왼쪽).
부장판사도 거들었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문수생 부장판사(48·사법연수원 26기)는 박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4월20일 코트넷 게시판에 썼다. 대법관의 자격에 대한 글이었다. “법관은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와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하며, 법관 개개인이 그런 자질을 갖지 못할 때 자신은 물론 사법부 전체의 권위가 손상되고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 존경과 신뢰가 따르지 못한다면 아무리 법 전문지식이 뛰어나다 해도 국민들은 결코 진정한 법관으로 여기지 않는다.”

문 부장판사가 쓴 이 구절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사 등에서 한 말이다. 박 후보자를 임명 제청한 양 대법원장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며 그의 책임 또한 묻는 모습이었다. 법조계에서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자신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이번 대법관 인사에서 검찰 몫으로 박상옥 후보자를 임명 제청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법무부와 검찰의 협조를 받기 위해 안대희 대법관 이후 비어 있던 ‘검찰 몫’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했다면 이번 논란에 양 대법원장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보다 못한 한국의 사법권 독립 순위

다음 날 의정부지방법원 정영진 부장판사(57·사법연수원 14기)는 아예 판사회의 같은 집단행동을 제안했다. 전국 법관의 의견을 수렴해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건의하거나, 국회에다 법관의 의견서를 전달하는 등의 방식을 고려해보자는 글을 코트넷에 올렸다. 정 부장판사는 사법 신뢰를 내세웠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한국의 사법권 독립 순위는 아프리카 후진국보다 못하다며, 박 후보자가 대법관이 되는 것 자체로 사법권 독립을 의심받을 거라고 주장했다. “당시는 유신도 아니고, 소신대로 법집행을 했다고 판검사가 큰 고초를 겪는 시대도 아니었다. 당시 배석판사로 영장 발부 업무를 담당했는데, 시국사건 구속영장을 기각도 하고 시국사건 즉결심판 피의자를 선처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바 없다.” 결국 박 후보자 본인의 영달 문제와 관련된 두려움이 아니었냐고 꼬집었다.

4월23일에도 대구지방법원 유지원 부장판사(41·사법연수원 29기)가 박 후보자 비판 글을 코트넷에 올렸다. 그는 “많은 사람이 박 후보가 ‘왜 되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면, 그에 대해 답을 해주는 것이 진실을 밝히고자 불이익을 당했던 사람들과 미래 후손을 위한 최소한의 의무다”라고 썼다.

청문회 이후 야당은 자진 사퇴를 요구하며 청문보고서 채택을 하지 않고 있다. 여당에서는 국회의장 직권 상정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다. 박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지만 당사자는 침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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