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 KDDH 건축사무소 소장은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2년쯤 전에 경기도 동탄 투이재(透貳齋)의 건축주 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다. 노부부는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다. 아버지는 건설 현장에서 노동을 하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을 해 자식들을 키웠다. 김동희 소장을 처음 찾아온 건 막내아들이었다. 막내아들은 독일계 자동차 부품 회사의 고위 임원이었다. 독일 본사 발령을 받은 상태였다. 떠나기 전에 노부모와 누나 부부를 위해 집을 지어주고 싶어 했다.

김동희 소장과 가족회의를 열었다. 어머니는 직접 해온 수수떡을 내놓았다. 노부모는 연방 “집이 클 필요가 없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수화통역사인 누나와 듣지 못하는 사위는 “너무 비싼 집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라고 부탁했다. 젊은 부부들이 으레 하기 마련인 “건축 잡지에서 본 집처럼 지어달라”는 얘기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김동희 소장의 아버지도 주택을 지은 적이 있었다. 그 집을 짓고 가세가 기울었다. 지어놓은 집은 너무 크고 너무 비싸고 너무 춥고 너무 불편했다. ‘집 장사(주택업자)’들을 너무 믿었다. 설계는 과잉이었고 자재는 불량이었다. 집은 김동희 소장네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불편한 집은 가족을 불행하게 만든다. 결국 김동희 소장네는 집을 팔고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시사IN 이명익대지 위치: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금곡리 / 대지 면적: 500㎡ / 건축 면적:A동:47.52㎡, B동:49.14㎡ / 연면적:A동: 47.52㎡, B동:83.46㎡ / 건폐율:19.33% / 용적률:26.20% / 규모:A동:지상 1층+다락/ B동: 지상 2층+다락 / 용도:단독주택(다가구주택) / 구조:철근 콘크리트 / 마감:외벽-A동·B동:콘크리트 골조 위 적벽돌 마감, 지붕-A동·B동:컬러 강판, 내부-A동·B동:벽지 마감, 바닥-A동·B동:강마루 / 시공사:건축주 직영 / 설계 및 감리사:건축사 사무소 KDDH / 건축가 김동희:건축사무소 KDDH 대표. 건축주와 카톡을 주고받으며 지은 ‘이보재’, 전라북도 건축문화상을 수상한 익산 ‘티하우스’ 등 목조 주택으로 유명하다.

건축주의 사연이 건축가의 아픈 기억을 소환했다. 김 소장은 말했다. “동탄 투이재의 건축주 가족을 만났을 때 건축가의 야심을 모두 버리고 이분들이 원하는 그대로의 집을 지어드려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원래는 건축주가 건축가의 야심을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믿게 만들어야 하거든요. 하지만 동탄 투이재를 설계할 때는 저를 완전히 내려놓았어요. 최고의 집은 별다른 게 아니에요. 사는 데 불편함이 없는 집입니다.”

4월 초에 찾아간 동탄 투이재는 뜻밖에도  ‘공사 중’이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입주한 집인데 사방이 공사판이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실력 발휘를 하고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뼈가 굵은 아버지는 날이 풀리자마자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투이재는 집 두 채가 이어 붙은 전형적인 듀플렉스 하우스다. 이른바 ‘땅콩집’이다(투이재라는 택호도 두 집이 서로 통한다는 의미로 김 소장이 직접 지었다). 김동희 소장은 1.5층 높이의 노부모집과 3.5층 높이의 누이집을 별도 공간으로 설계했다. 마당도 서로 반대편에 있다. 아버지는 두 채의 집 사이에 연결 통로를 짓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겨우내 불편해서 말이에요. 딸네 부부가 일 나가면 우리가 애들을 챙겨야 하는데 두 채를 오가는 게 불편해서….” 아버지는 몰랐다. 지금 건축가가 그어놓은 선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애초 의도했던 두 채의 독립성도 옅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작 김동희 소장은 각오한 눈치였다. 살다가 불편하면 살기 편하게 고쳐 쓰는 게 집이다.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건축가의 선은 삶 속에서 풍화되기 일쑤다. 김 소장은 또 그래야 마땅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실 김동희 소장만큼 야심만만한 건축가도 없다. 원래 그림 그리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부기우기 행성탐험〉이라는 개인전도 열었다. 부기우기 행성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작동하는 온갖 기계를 그렸다. 인간의 욕망을 채집하는 기계들이다. 김 소장은 자신의 그림이 “에로티시즘에 기반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부기우기적’ 개성 버리고 ‘진짜 집’을 짓다

김동희 소장은 건축학도 시절부터 설계 도면을 그리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원래 기계 그리는 걸 좋아해서 도면을 원 없이 그릴 수 있는 건축학과를 선택했다. 김 소장의 설계는 현실화되기 어려운 게 많았다. 어쩌면 자하 하디드나 다니엘 리베스킨트 같은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hchitect)가 될 운명이었다. 한국 건축업계는 페이퍼 아키텍트를 허락하기에는 부박했다.

김 소장은 KDDH 건축사무소를 연 뒤 판교 이보재나 익산 티하우스, 용인 바바렐라하우스 같은 주택들을 설계했다. 모두가 김동희 소장의 ‘부기우기적’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목조 주택들이다. 특히 익산 티하우스는 다분히 에로티시즘적 주택이다. 삼각형 지붕의 주택 두 채가 직각으로 교접한다. 게다가 한 채는 2층 높이에서 공중 부양하듯 떠 있다. 가느다란 네 개의 나무기둥이 2층 집을 지탱한다. 익산 티하우스 덕분에 김동희 소장도 꽤 유명해졌다. 주택 설계 의뢰가 폭주했다.
 

ⓒ시사IN 이명익투이재는 생활의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누이의 집 다락은 아이들의 장난감과 동화책이 점령했다.

하지만 김 소장은 가장 낮은 자세로 돌아가 동탄 투이재를 설계했다. 동탄 투이재는 익산 티하우스의 대척점에 있다. 공중부양 같은 마법도, 사진을 부르는 때깔도, 행복이 가득한 것 같은 인테리어도 없다. 작은 집에 산다는 건 동화가 아니다. 건축가가 설계도면 위에 긋는 선은 이상적일 수밖에 없다. 건축주 역시 그 선 안에서 꿈꿨던 이상적인 삶을 살고자 하지만, 실제 삶은 수시로 건축선 밖으로 삐져나가곤 한다. 그렇다면 건축가 역시 때로는 자신을 내려놓고 대지에 뿌리박은 설계를 할 줄도 알아야 한다. 현실 생활을 무시한 채 건축가의 욕심과 건축주의 허영이 결합되면 불행한 집이 태어난다. 김동희 소장이 직접 겪었던 일이다.

노부모의 집은 이미 다락과 드레스 룸까지 생활의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누이의 집은 방방마다 아이들의 장난감과 동화책으로 점령당했다. 누이 집 2층 계단 설계도 바뀌어 있었다. 원래 없던 미닫이문까지 덧붙여져 있었다. 하나도 예쁘지 않았지만 작은 집의 진짜 생활이란 이렇게 수수한 것이다.

어머니는 커다란 점심상을 내왔다. 인부들과 취재진을 위해 조기구이에 수수떡까지 진수성찬을 내놓았다. 나중에 김동희 소장은 고백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머니가 내놓은 수수떡 때문에 설계를 맡게 됐어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수수떡을 만들어주시곤 했거든요. 어머니가 꼭 우리 엄마 같아서.”

동탄 투이재는 막내아들이 노부모한테 지어준 집이다. 건축가가 돌아가신 어머니한테 못 지어드린 진짜 작은 집이다.

기자명 신기주 (〈에스콰이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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