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까지 23층 남았다. 얼마 전 100층을 돌파한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가 휑한 정수리를 내놓고 있었다. 바로 옆 빌딩에 전상현씨(39)가 일하는 사무실이 있다. 도시와 건축을 공부한 그가 보기에 이 ‘123층짜리 이웃’은 ‘유감’스럽다.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초고층 빌딩의 저주’가 생각난다. 그는 지난해 봄, 도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8개월에 걸쳐 글을 완성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도시 관리 분야를 공부할 때 중국 선전 지역의 ‘어번 빌리지’를 알았다. 농민공들이 사는 좁고 열악한 주거지다. 주민들은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구성원이지만 도시민이 아니어서 주거에 차별을 받고 있었다. 슬라이드 사진을 보고 넘어갔는데 잔상이 남았다. “대개 도시의 좋은 것만 보러 다니는데 유럽 면적을 100으로 놓고 보면 그렇게 느껴지는 면적은 10%다. 나머지는 생각보다 엉망이다. 복지의 천국이라는 북유럽도 도심을 벗어나면 상상치도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균형을 맞춰 도시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사IN 이명익전상현씨는 서울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이다.

도시의 속살을 보여주기로 했다. 중국 선전을 비롯해 인종과 이민자 문제를 안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방리외, 여유로운 백인은 교외에 살고 가난한 흑인은 쇠퇴한 도심에 모여 사는 미국 디트로이트, 계층별로 철저하게 다른 공간에 사는 브라질 상파울루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이곳들은 번영의 끝을 본 도시이거나 번영의 초입에 있는 도시로서 도시 문제의 구도가 확실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건축가는 환호하는데 빈자가 살기 어려운 도시

급속한 도시화와 그로 인한 도시 빈민 문제, 심각한 교외화 현상은 비슷했다. 하지만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달랐다. 파리는 건축가와 문화기획자들이 환호하는 도시지만 이면도 있다. 과도한 보존 정책 때문에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시내에 거주하기 어렵다. 도시 정비는 계층의 분리를 유도했고 저임금 업종에 종사하는 유색인종은 교외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특히 대륙마다 교외의 풍경이 다르다. 유럽의 경우 잘사는 이들이 도심에, 빈민층이 외곽에 산다. 미국은 그 반대다. 한국은 비교적 중심과 교외 지역의 구분이 없다. 도시 안에서 계급이 분리되는 게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극심해진 경향이 발견됐다. 전씨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만약 강남에 사는 누군가가 있다면 여행 삼아 홍콩을 두세 번 가더라도 강북 어느 지역을 가보지는 않는다. 네트워크나 교통 시스템이 발달할수록 물리적인 구조는 촘촘해지는데 반대로 도시 사람들끼리는 점점 멀어진다. 소득 계층에 따라 구분된다”라고 말했다.

〈도시유감〉은 잘 읽힌다. 건축사무소와 건설사를 오갔던 저자의 이력에서 감지되는 편견을 깬다. 전씨 스스로 기존 건축가의 글에 대한 반감에서 ‘쉬운 글’을 지향했다. 공유하기 편리해야 지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간 건축에 대한 글은 생소한 철학용어가 등장하는 등 다소 어려웠다. 평소에도 건축가가 가지는 이상적인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 디자인의 가치를 아는 이들끼리만 교류하기보다 ‘널브러진’ 현실의 일을 해결하는 데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씨는 대학의 문턱에서 건축학과, 철학과, 의상디자인과를 놓고 망설였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다. 건축가만큼 멋있는 직업이 없다고. 아버지 역시 건축 일을 했다. 서재에 외국 건축서적, 그림책이 많았는데 어린 나이에도 멋있어 보였다. 그의 롤모델은 세계적인 도시컨설턴트 찰스 랜드리다. 수십 개 도시를 돌며 해당 도시를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조언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 방한하기도 했다. 서울의 도시정책이 그의 철학과 완전히 반대로 간 점은 아쉽다. 전씨 역시 대한민국 1호 도시컨설턴트가 되고 싶다. 당장 떠오르는 건 한강을 디자인하는 일. 홍콩 하면 강변의 야경이 떠오르듯 해외에서 한국을 떠올릴 때 한 문장으로 축약할 수 있는 한강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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