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겨우내 고뿔 탓에 아팠다. 남편은 일을 나가야만 했다. 홀로 남겨진 아내를 간호해준 건 집이었다. 장종철 부부는 지난해 추석 무렵 새로 지은 연희동 주택에 입주했다. 살아보니 직접 지은 집은 단순한 삶의 도구가 아니었다. 겨우내 아픈 아내 곁을 지켜준 수호신이기도 했다.

아내는 2층 침실에 누워 지냈다. 사실 2층 침실은 건축주 부부와 건축가 서승모 ‘사무소 효자동’ 소장이 마지막까지 승강이를 벌였던 곳이다. 서 소장은 2층인 연희동 주택의 내부 문을 다 없애버렸다. 작은 집인데 구획까지 하면 옹색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아내는 침실에 미닫이문을 달고 싶어 했다. 여자는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자 건축가와 남자 건축주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서승모 소장의 설계는 조금 어그러졌다. 대신 아내는 자기만의 방에서 겨울 내내 집이 주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2층 침실은 좌식 온돌방이다. 앉은 눈높이에 맞춰서 창문을 나지막하게 냈다. 창밖으로는 옆집의 한옥 지붕이 살짝 내려다보인다. 낮에는 햇살이 방 안에 한가득 들어왔다. 아내는 문을 닫으면 집 속의 집처럼 아늑해지는 안방에 누워서 책도 읽고 생각도 하면서 쉬다 잠들었다. 남편이 일터에 나가고 없을 때면 아내는 집이 자신을 토닥여주는 기분을 느꼈다.
 

ⓒ시사IN 윤무영위치: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 대지 면적:81㎡(24.50평) / 건축 면적:33.55㎡(10.15평) / 건폐율:41.42% / 연면적:65.73㎡(19.88평) / 용적률:81.15% / 규모:지상 2층, 다락층 / 용도:단독주택 / 구조:라멘조+목구조 / 마감:1층 외벽-콘크리트 골조 위 핸드치핑, 2층 외벽-백색 스타코, 지붕-컬러징크, 내부-원목마루, 콩뎀장판, 한지 도배 등 / 시공사:하우징플러스 / 설계 및 감리사:건축사사무소 사무소 효자동 / 건축가 서승모:‘사무소 효자동’ 소장, 도쿄 예술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 2004년 귀국, 한옥 리모델링뿐 아니라 ‘천안주택’ ‘수오재’ 등 담백한 집짓기로 건축계에 이름을 알렸다.

집을 짓는다는 건 선택의 연속이다. 집을 지을 대지와 집을 지어줄 건축가를 선택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부부에게 대지와 건축가는 오히려 우연의 산물이었다. 남편은 말한다. “어느 날 장인어른 생일잔치를 하러 연희동에 있는 중국집에 들렀어요. 동네를 둘러보니까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재개발이 어려웠어요. 그 점이 좋았어요. 주택가로 오래 남을 수 있는 동네니까요.”

서승모 소장은 건축주와 건축가를 일대일로 소개해주는 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났다. 아내는 일본 무지하우스에 매료돼 있었다. 무지는 2000년부터 무지하우스라는 설계사무소를 차리고 ‘이에 프로젝트’라는 작은 집 짓기 사업을 시작했다. 아내는 서승모 소장이야말로 무지하우스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해줄 건축가라고 느꼈다.

서 소장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대학 때 다시 일본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서울 종로구 체부동 한옥을 증개축한 서승모 소장의 집도 한옥의 멋스러움과 일본 주택의 정갈함이 어우러져 있다. 완성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은 무지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다. 일본산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식 무지하우스는 주택 위주인 일본에서는 표준적이지만 아파트 위주인 한국에서는 오히려 파격적이다. 서승모 소장은 일본풍과 한국풍을 혼용해 한국 주택의 정체성을 탐구해왔다. 연희동 주택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집 지을 때 중요한 자원은 ‘시간’

건축가와 대지는 우연한 인연이었지만 그 뒤론 고달픈 선택의 연속이었다. 특히 연희동 주택은 건축주의 깨알 같은 선택들이 담겨 있다. 마침 남편은 집을 짓는 동안 다니던 IT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었다. 아내는 집에서 작업을 하는 화가다. 이 덕분에 1년여 정도의 공사 기간에 부부가 뻔질나게 현장을 드나들 수 있었다. 남편은 말한다. “집을 지어보니까 건축주가 최종 선택을 해줘야 하는 일들이 많더군요. 그때 못 가면 공사 일정상 현장에서 알아서 선택하게 됩니다. 나중에 보면 틀림없이 후회해요.”
 

ⓒ시사IN 이명익건축가는 재료의 진성이 드러나게 집을 지었다. 1층 석구조와 2층 목구조(위)가 지닌 돌과 나무의 느낌이 확연하다.

흔히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자원이 돈이라고 여긴다. 막상 공사를 시작하면 제일 아쉬운 게 시간이다. 공사 기간에 임시 주거를 해야 하는 처지라면 더 시간에 쫓기게 된다. 평생 살 집을 튼튼하게 짓겠다고 일을 벌여놓고 시간에 쫓겨서 결국은 아쉬운 대로 살게 된다. 부부한테는 마침 시간이 있었다. 설계를 변경한 2층 침실의 문도 부부가 현장에 있어서 선택할 수 있었다. 시간을 들일수록 집은 집주인에 알맞게 진화한다.

선택은 포기도 뜻한다. 원래 아내는 아틀리에와 주택을 하나로 합치고 싶어 했다. 24평 대지에 10평 남짓한 건축 면적 안에서 두 개의 이질적인 공간을 포개는 건 어려웠다. 4차 설계 때 선택의 기로에 섰다. 아내는 작업실을 포기했다. 대신 부엌을 1층에 꽉 차게 키웠다. 요리는 아내의 또 다른 작품 활동이다. 작은 집은 화장실도 작다. 작은 화장실에 어울리는 변기는 특수하다. 냉장고 하나, 아일랜드 식탁 하나도 표준적인 게 없었다. 업자들한테 “다들 그렇게 안 하세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끈질기게 선택을 해나갔다. 그렇게 연희동 주택은, 큰 그림은 건축가가 그리고 세부는 건축주가 묘사한 합작품이다.

부부는 2009년 결혼할 때 세간을 거의 사지 않았다. 처음부터 비운 채로 시작한 덕에 선택의 여지가 커졌다. 연희동 주택에도 살림살이가 거의 없다. 가구도 부엌 겸 거실인 1층에 놓인 나무 책상과 아내의 본가에서 가져와 2층에 놓아둔 고풍스러운 자개장이 전부다. 덕분에 작은 집인데도 공간이 남아돈다. 부부는 대형마트에도 다니지 않는다. 딱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며 산다. 연희동 주택에서 비움의 미학이 느껴지는 건 단지 그렇게 설계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비우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부부는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다. 서승모 소장은 연희동 주택을 재료의 진성이 드러나게 지었다. 1층 석구조와 2층 목구조가 지닌 돌과 나무의 느낌이 확연하다. 모두가 땅에서 나왔고 세월이 흐르면 익어가는 재료들이다. 콘크리트 아파트는 세월이 흐르면 변하지 않지만 망가져버린다. 버리고 떠나는 수밖에 없다. 연희동 주택은 변하기 때문에 부부와 함께 천천히 늙어갈 수 있다. 어쩌면 연희동 주택은 부부와 함께 커나갈 자식이다.

아쉬운 게 하나 있다. 연희동 주택의 전면에는 한지를 바른 창문이 하나 있다. 한지는 돌과 나무와 함께 중요한 구성 요소였다. 부부는 창문 앞에 담을 쌓았다. 동네 구경꾼들 탓이다. 표준화된 도시에서 특징적인 집이 치러야 하는 대가다. 집순이인 아내는 오늘도 그림을 그리며 집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내 몸의 일부 같은 집에서 잠이 든다.

기자명 신기주 (〈에스콰이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