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창조경제, 안철수의 새정치, 김정은의 속마음.’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시중에 우스개처럼 떠돌던 ‘한반도 3대 미스터리’다. 이 가운데 ‘새정치’와 ‘속마음’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그럼 창조경제는? ‘수출’ 중이다.
지난 3월 초 박근혜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4개국을 순방했다. 그러면서 창조경제를 수출했다. 새누리당은 국회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창조경제가 중동에서 열매를 맺었다”라고 주장했다. 유수 언론들은 ‘창조경제 첫 중동 수출’ ‘중동에 창조경제 세일즈’ ‘창조경제 모델, 세계적 확산 교두보 마련’ 따위 헤드라인을 걸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가 있었나?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손꼽는 실적은 사우디와 체결한 ‘스마트 원자로(한국형 중소형 원자로) 수출 양해각서’다. 그러나 원전 수출을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창조경제)라고 할 수는 없다. 이미 지난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원전 수주를 한 바 있다. 다만 ‘대통령의 치적’을 위해 이면계약(한국 측이 100억 달러 대출, 핵폐기물 처분 보증, 특전사 파병 약속 등)까지 강행한 것으로 드러나 말썽을 빚었다. 이번에 박 대통령이 체결한 것은 본계약이 아니라 양해각서(MOU)다. 이명박 정부 역시 터키와 원전 수출 MOU를 체결했으나 국제 거래 협상에서 들러리 노릇만 하다 파기된 경험이 있다. 결국 박 대통령 중동 순방의 대표 치적인 ‘원전 수출 MOU’는 그동안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원전 수출 흐름의 한 갈래일 뿐, ‘창조경제 첫 수출’로 불릴 만한 사건은 아니다.

ⓒ연합뉴스지난해 1월22일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왼쪽). 가수 싸이를 창조경제 사례로 들곤 했다.
사실 창조경제는 태생적으로 수수께끼에 휩싸인 애매한 개념이었다. 시중에서는 창조경제의 의미를 ‘창시자인 박근혜 대통령도 모르고, 시행 주체로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모른다’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개념 자체가 모호한 덕분에 오히려 어떤 현상이든 가리켜 창조경제라고 부를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창조경제를 최우선 국정운영 전략으로 앞세워왔다. 국내는 물론 에이펙(APEC)이나 다보스포럼 같은 국제 무대에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나 KBS 〈개그콘서트〉 등을 ‘창조경제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하기도 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도 있다. “창조경제는 국민 개개인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과학과 정보통신 기술에 접목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과학기술·정보통신인 한마음대회).” 그러나 ‘인간의 창조성을 당대의 첨단기술과 결합시켜 새로운 시장(산업과 일자리)을 만들어내자’는 것은, 구체적 국정운영 전략(창조경제)이라기보다 ‘혁신’이나 ‘경제 고도화’에 대한 단순 서술일 뿐이다.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는 공허한 슬로건이다. ‘성적을 올리는 전략’으로 ‘열공(열심히 공부하자)’을 제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무원들은 최고 지도자가 연호하는 슬로건을 따라 외칠 수밖에 없다. 구체적 방향을 몰라도 뭔가 내놓아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해오던 일’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2013년 말 노웅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제출받은 ‘창조경제 실현계획 관련 사업 2014년 예산안’에 따르면, 대다수 ‘창조경제 사업’들이 과거 정부가 진행하던 사업이었다. 노 의원에 따르면, “신규 사업은 10%대에 머물러 있다”.

창조경제가 글로벌 차원 경제 문제를 해결?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 중동 순방에 동행한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은 아부다비 국립은행 주최 포럼에서 “‘뉴노멀 시대’의 해법은 창조경제와 FTA에서 찾을 수 있다”라고 연설했다. 대단한 용기다. ‘뉴노멀(New Normal)’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일상적 경제 현실로 자리 잡은 ‘저성장-저소득-저수익률’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런 글로벌 차원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창조경제를 내세운 것이다. 산업은행은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창업·벤처기업 지원, 민간과 위험을 분담하는 투자 또는 투·융자 복합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것은 산업은행이 예전부터 해온 업무다. 슬로건으로 현실을 바꾸기보다 현실을 슬로건에 끼워 맞춘다.

ⓒ연합뉴스지난해 10월10일 열린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 확대 출범식. 정부는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해 대기업과 매칭하도록 했다.
이렇게 방황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가 최근 들어 ‘가시적인’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바로 창조경제혁신센터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센터’)는 일종의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전국 17개 광역시와 도에 ‘센터’를 설치하고, 여기 입주하는 예비 창업자와 중소·벤처 기업들의 사업화를 돕는다. 창업준비금을 지원하고, 아이디어의 제품화에 필요한 노하우와 판로까지 컨설팅한다. 성공 가능성이 보이는 사업에는 센터 차원에서 직접 투자하거나 벤처캐피털과 연결해준다. 야심만만한 ‘스타트업(신생 기업) 인큐베이터’라 할 만하다.

다만 창조경제혁신센터 역시 완전히 ‘창조적인’ 시도는 아니다. 국내에서는 이미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크고 작은 창업 지원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해외에도 유명한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들이 존재한다. 센터만의 특징이 있다면, 국내 유수 대기업들을 각 지역 센터에 1대1로 매칭해서 입주 벤처기업들의 멘토 구실을 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대구는 삼성, 광주는 현대차, 대전은 SK, 충북은 LG 하는 식이다. 유망 사업에 대해서는 정부·대기업 공동투자도 이뤄질 전망이다.

이를 두고 ‘창조경제 한다면서 대기업들을 억지 동원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한국에는 아직 미국에서처럼 유망한 비즈니스의 싹(예비 창업가)을 감지하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전문적 금융자본이 드물다. 그런 측면에서 사업성을 판단할 줄 알고 돈도 있는 대기업들을 벤처 창업의 멘토로 ‘유도’한 것은 나름 합리적이다. 다만, 창조경제혁신센터 프로그램이 공식 발표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지난해 1월 발표)’에서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경제민주화가 완전히 삭제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추상적 구호(창조경제)가 구체적 방안(창조경제혁신센터)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하다. 구호의 허황된 남발이 예산 낭비로 이어지는 것보다는 예비 창업자들에 대한 예산 투입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그러나 국가경제 시스템의 전환을 의미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창업지원 프로그램으로 대체되어버린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자리 문제를 창업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창업 천국’인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사업이 바로 창조경제혁신센터다. 센터 출범식에는 반드시 출석해서 격려한다. 지난 3월16일 전국에서 일곱 번째로 개소한 부산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한 직후에는 “(우리나라에서) 창조경제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라고 감격하기도 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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