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린이는 우주에서 온 아이다. 매일 밤 3층집 꼭대기 다락방에 올라가 천체망원경으로 저 멀리 우주를 바라본다. 가끔은 1층 영화감상실에서 영사기로 아빠가 좋아하는 〈스타워즈〉를 같이 볼 때도 있다. 3층에 있는 태린이 방은 〈토이 스토리〉의 우주비행사 버즈 라이트이어로 장식돼 있다. 친구들이 책상에 코를 박고 숙제하기 바쁠 때 태린이는 우주를 올려다보며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끊임없이 상상한다. 태린이는 서울시 종로구 누하동 ‘별 헤는 집’에서 산다.

별 헤는 집은 조남호 솔토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지은 단독주택이다. 조남호 대표는 용인 살구나무집을 만든 이로 유명하다. 살구나무집을 짓는 과정은 〈아파트와 바꾼 집〉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작은 집 짓기 열풍의 기폭제가 되었다.

하지만 별 헤는 집 2층 식탁에 마주앉은 조남호 대표는 건축 대신 태린이 얘기부터 꺼냈다. 불쑥 태린이가 그린 그림 한 장을 내밀었다. “처음 만났을 때 태린이가 설계도를 그려서 보여주더군요. 이런 집을 지어달라고.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이었는데 제법 구체적이었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진짜 건축주는 태린이라는 걸 알았지요.”
 

ⓒ시사IN 윤무영3층 부부 침실과 아이 방은 모양과 크기가 동일하다. 도시에서도 하늘을 언제나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주택 설계는 한 가족의 생활을 설계하는 일이다. 특히 그 집에서 자라날 아이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원래 태린이의 엄마·아빠인 건축주 손학렬씨 부부가 조남호 대표에게 의뢰했던 건 중정이 있는, 한옥 느낌이 나는 집이었다. 손씨 부부가 누하동에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건 살던 북촌 한옥이 전세금을 터무니없이 올려달라고 요구하면서다. 홧김에 들른 서촌의 부동산집을 통해 누하동에 있는 아담한 택지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때부터 부부는 작은 집 짓기에 관한 책들을 탐독했다.

손씨 부부는 대학교 천체관측 동아리에서 만났다. 요즘도 종종 태린이를 데리고 지방 천문대로 천체관측 여행을 떠나곤 한다. 조남호 대표는 이 점에 착안했다. 건축주의 사연이 건축가한테는 영감이 된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서울에서도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집을 짓기로 의기투합했다.

조남호 대표는 말했다. “일산의 아파트 숲 속에서도 기어코 달을 찾아내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도시에서도 하늘과 달과 별만은 언제나 볼 수 있죠.” 그렇게 해서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우주와 맞닿은 집을 짓게 됐다. 조남호 대표는 하늘과 우주를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다락방에 발코니와 망원경을 설치해서 집이 하늘과 맞닿도록 만들었다.

태린이가 조남호 대표한테 그려준 별 헤는 집은 독특하다. 꼭대기 다락방과 천체망원경이 2층 거실과 부엌, 3층 침실들보다 압도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태린이가 날마다 우주를 꿈꾸며 잠드는 건 우연이 아니다. 건축가와 건축주의 선택이 태린이를 우주적인 아이로 자라나게 만들었다.

하늘만 집 안으로 끌어들인 건 아니다. 3층 부부 침실 창문을 통해 인왕산과 북한산 자락이 흘러들어 오게 만들었다. 2층 창문들의 위치는 더 전략적이다. 거실에서는 누하동의 상징인 고목이 보인다. 동시에 앞집 창문과 비켜서 사생활을 보호한다. 부엌 식탁 창문을 통해서는 서촌 주택가를 끌어들였다. 주택의 창문이야말로 다른 생활로 이어지는 문이다. 별 헤는 집에는 창문이 많다. 이렇게 외부를 내부로 끌어들이는 설계는 다분히 한옥스럽다. 한옥이 아닌데도 한옥같이 보이는 이유다.

별 헤는 집은 조남호 대표의 장기인 목구조 건축물이다. 일단 27평(88.66㎡) 남짓한 작은 땅 위에 콘크리트로 1층을 세웠다. 태린이네 주차장이면서 현관이면서 영화감상실로 쓰이는 작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위에 2층과 3층을 13평씩 경골 목구조로 올렸다. 2층과 3층을 둘러보면 현대적인 서까래와 대들보를 발견할 수 있다.

 

 

 

ⓒ시사IN 윤무영위치:서울시 종로구 누하동 117-1 / 대지 면적:88.66m² / 건축 면적:51.92m² / 건폐율:58.56% / 연면적:129.97m² (다락 10m²) / 규모:지상 3층 / 용도:단독주택 / 구조:철근 콘크리트-1층, 목구조-2, 3층 / 마감:외벽-스터코 플렉스 + 적삼목 사이딩 마감, 지붕-징크, 내부-친환경 페인트 / 시공사:노아건축(현상환) / 건축가 조남호: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대표. 교원게스트하우스로 한국건축문화대상 대상 수상(2000년). 서울시립대 강촌수련원, 방배동 집 등으로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건축’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다.

 

3층의 부부 침실과 태린이 방은 모양과 크기가 동일하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부모와 아이는 평등하다. 2층에는 천장이 없다. 2층과 3층은 기능적으로는 분리돼 있지만 공간으로는 하나다. 그 덕분에 실내 공간이 탁 트였다. 대신 구석구석을 아기자기하게 활용했다. 2층 거실 벽을 미닫이 식으로 열면 드레스 룸이 나타난다. 계단은 유난히 폭이 넓다. 그 자체로 별도의 공간 구실을 한다.

아직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공간들

설계 과정에서 이견도 있었다. 손학렬씨 부부는 말했다. “3층 다용도실에 벽을 설치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조남호 대표와 한창 옥신각신했어요. 결국 세웠던 벽을 없애버렸죠. 애초 원했던 중정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보면 건축가의 선택이 대부분 옳았구나 싶습니다.” 작은 집 짓기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합작품이어야 한다. 건축가가 건축주한테 밀리면 집장사의 집밖에 안 된다. 반대로 건축가의 고집만 앞세우면 집이 아니라 작품이 된다.

손씨 부부는 별 헤는 집에서 최소한 30년은 살 작정이다. 태린이가 커서 결혼할 때까지다. 조 대표는 설계에서 세월을 고려해야만 했다. 별 헤는 집의 외관은 진회색이다. 세월이 흘러 색이 바래도 멋스러울 수 있는 색깔을 선택했다. 태린이의 성장을 설계에 미리 반영해야 했다. 별 헤는 집에는 아직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공간이 꽤 있다. 그건 태린이 몫이다. 손씨 부부는 말했다. “별 헤는 집에 입주한 첫날부터 몇 년째 살고 있는 집 같은 편안함을 느꼈어요.” 건축주의 삶이 반영된 집이기 때문이리라.

태린이는 이제는 친해진 건축가 아저씨 곁에서 딸기를 오물거렸다. 어쩌면 태린이가 다 자랄 때까지 별 헤는 집은 미완성일 것이다. 집에 의해 인간의 삶이 변화될 때 비로소 집은 완성된다. 조남호 대표도 태린이가 조금씩 바꿔갈 집의 모습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태린이한테는 꿈이 또 하나 생겼다. 건축가다. 누하동 별 헤는 집에서 다른 삶과 특별한 꿈이 자라고 있었다.

 

기자명 신기주 (〈에스콰이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