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11일, 일본 동부 지역 인근 해저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강진과 최대 30m의 쓰나미로 인근 해안지역이 폐허가 되었다. 설상가상 도쿄 전력의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의 1~6호기 가운데 1~3호가 녹아내리면서 핵연료가 원자로를 뚫고 밖으로 흘러나왔다. 핵연료는 지금도 땅속으로 유출되고 있다. 점검을 위해 멈춰 있던 4~6호기 중 4호기도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한 수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을 면한 5·6호기는 2014년 1월 폐로가 결정되었다.

이처럼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에서 최악의 레벨(7)로 분류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 지 4년이 지났다. 그사이 무엇이 달라졌을까.

지난 2월25일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2호기 원자로 건물의 옥상에 고여 있던 고농도 오염수가 항만 밖으로 유출된 사실이 알려졌다. 2년 전 아베 총리가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원전 전용 항만 내에서 ‘under control(제어)’되고 있다던 오염수가 항만 밖으로 줄줄 새고 있었던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오염수를 ‘완전히 block(차단)’ 중이라며 기자들 앞에서 당당했다. 원전 사고의 1차 책임자인 도쿄 전력도 사고 축소와 은폐를 되풀이하고 있다. 2013년 11월부터 오염수가 항만 밖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까지 숨겨온 사실이 발각됐다.

ⓒAFP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위)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이어져 큰 후유증을 남겼다.
지난해 12월, 도쿄 전력은 4호기에 남아 있던 핵연료봉 1535개를 연료 풀에서 꺼내는 작업을 끝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얼마나 걸릴지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폐로 작업의 한 걸음을 뗀 셈이다. 그러나 1~3호기의 폐로가 남아 있다. 먼저 1~3호기 안의 사용후 핵연료를 꺼내야 하지만 녹아내린 핵연료와 고농도 방사성 물질·오염수 때문에 언제 작업이 완료될지 알 수 없다. 도쿄 전력은 1~3호기의 원자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그저 녹아내린 노심을 식히기 위해 물을 계속 붓고 거기서 발생하는 오염수 처리에 급급할 뿐이다. 제1원전 부지는 1000t이 넘는 오염수 탱크로 가득하다.

2012년 5월 이후 일본에서는 모든 핵발전소 사용이 중단됐다.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심사하는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기 위해서다. 후쿠시마 사고를 교훈 삼아 2013년 7월 새로운 규제 기준이 만들어졌다. 강화된 기준 덕분에 후쿠이 현 쓰루가 핵발전소 1호기처럼 운전 개시 후 약 40년 이상이 경과한 핵발전소들은 폐로한다는 방침이 정해지고 있다. 새로운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돈을 더 들이는 것은 타산성이 없기 때문이다.

ⓒAFP3월8일 도쿄에서 열린 원전 반대 집회에는 2만명이 넘는 시민이 참석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전국의 전력회사는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위해 필사적이다. 전력회사가 안전심사를 신청한 곳 중 가고시마 현의 센다이 1·2호기가 일본 전역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기준을 통과했다. 2014년 9월 기준을 통과한 이후 재가동을 위해 필요한 핵발전소 소재지의 현과 시, 의회의 동의까지 얻었다. 그렇다고 곧바로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세한 공사 계획 및 재해 대책 관련 보안 규정에 대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원자력규제청의 현지 설비 조사, 원자로 가동 조사 등도 남아 있어서 재가동까지는 한동안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센다이에 이어 후쿠이 현의 다카하마 핵발전소 3·4호기도 심사를 통과했고 지역 의회도 재가동을 용인했다.

4월 지방선거, 핵발전소 재가동의 분기점 될 듯

엄격한 기준을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핵발전소에서 30㎞ 권내 지자체의 과반수는 재가동이나 건설에 반대한다. 재가동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사고가 나면 엄청난 피해를 볼 주민과 지자체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가고시마 현 지사는 피난 계획에 대해 “사고가 일어나면 그때 대처하겠다”라고 말해 불신을 샀다. 지난해 4월 홋카이도의 하코다테 시는 23㎞ 떨어져 있는 오마 핵발전소 건설과 관련해 정부와 건설회사를 상대로 건설 중지 소송을 냈다. 4월12일과 4월26일 두 차례에 걸쳐 치를 전국 지자체 단체장과 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가 핵발전소 재가동의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뒤 인근의 한 사진관에는 죽은 가족의 영정을 만들기 위해 찾아오는 유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쓰나미에 얼룩진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만들던 유족들의 사연을 듣다가 사진관 주인이 우울증을 앓았을 정도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2015년 2월 현재 동일본 대지진으로 사망한 사람은 1만5891명에 이른다. 또한 부흥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까지 ‘재해 관련 사망자’는 3194명으로 파악되었다. ‘재해 관련 사망자’란 지진이나 쓰나미로 인한 직접 사망이 아니라, 피난 생활 중 건강이 나빠지거나 과로·자살 등으로 죽은 사람을 일컫는다. 사망자 중 반수 이상이 지진 재해에 핵발전소 사고까지 겹친 후쿠시마 현 사람들이다. 특히 가족과 지역 공동체를 잃고 가설주택에서 생활하는 고령자의 신체적·정신적 고립은 심각한 실정이다. 우울증이나 절망감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아버지와 아내, 세 살배기 딸을 쓰나미로 잃은 기무라 씨는 후쿠시마 현 오쿠마마치에서 400㎞ 떨어진 나가노 현으로 이주했다. 방사선 민감성이 높은 큰딸을 내부 피폭에서 지키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일본 정부는 일반인에게 허용되는 연간 피폭 선량을 사고 전 1mSv(밀리시버트)에서 사고 후 20mSv로 20배 높였다. 그가 살던 오쿠마마치 땅의 10%가량은 방사능 오염 때문에 귀환 곤란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그가 옛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연간 15회, 하루 5시간뿐이다. 허락된 시간에 행방을 알 수 없는 딸과 가족의 물건을 수색해 옛 집터의 창고에 모아두었지만 이제는 이마저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에서 나온 흙 등을 최대 30년간 보관하는 중간 저장 시설을 지을 장소로 오쿠마마치가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2013년 말, 9조 엔(약 84조원)에 이르는 부흥예산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2013년 1월1일 이후 전 국민을 상대로 특별부흥세를 거둬 재원을 마련했지만, 원활하게 집행되지 않아서다. 토지 확보의 어려움, 일손과 자재 부족이 큰 이유로 꼽힌다. 특히 도쿄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고 난 뒤 고급 인력과 자재가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정부가 발주하는 각종 부흥 공사의 입찰이 무산되는 비율도 30%에 달한다. 그나마 고속도로, 방파제 건설과 같은 토목공사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지자체의 재해공영주택이나 초·중등학교 건설 현장, 개인주택 건설 현장에는 시급 1500엔(약 1만4000원)을 준대도 사람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립된 고령자를 돌봐줄 인력은 더 부족하다. 3·11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자명 도쿄·이령경 (릿쿄 대학 겸임교수·정치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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