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과 복지가 2015년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시민의 삶은 물론이고 국가의 미래 전략과도 직결되는 세금·복지 문제가 정치의 핵심 의제가 되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종북주의 논란과 같은 ‘주변부 이슈’가 정치를 지배하는 것보다는 훨씬 생산적이다. 여론이 세금과 복지를 하나로 엮인 이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중요한 진전이다.

세금·복지 이슈가 화두로 떠오른 것은 연말정산 논란으로 촉발된 조세 저항 때문이다. 저성장과 고령화로 세수가 갈수록 더 필요한 현실에서, 조세 저항이 거세면 정치권은 양자택일로 몰리게 된다. 과세 수준을 유지하면서 복지를 축소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증세를 관철시키는 길을 찾거나. 두 길 모두 험난하다.

여론의 신호는 혼란스럽다. 복지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으면서도, 세금에 대해서는 강한 저항감을 드러낸다. 이렇게만 보면 ‘내 주머닛돈은 내지 않고 복지는 더 받겠다’는 놀부 심보가 여론의 본령이라고 결론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는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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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시사IN〉과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리서치는 2월8~9일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세금·복지 이슈만을 묻는 심층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먼저 세금과 복지를 보는 여론을 세 가지 기준으로 짚어본다. 1)공정한가 2)내게 효용이 있는가 3)그래서 세금에 동의할 수 있는가. 세금·복지 이슈를 바라보는 여론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이어서 소득·직업·지지 정당 등 여러 기준으로 여론의 결을 해부해본다. 이를 통해 ‘증세·복지파’와 ‘복지 축소파’가 거점으로 삼을 만한 핵심 지지 블록이 어디인지가 드러난다. 결과는 인상적이다. 기존 정치 지형에서 보아온 여야 전선과는 결이 다른 새 전선이 드러난다.
결론은 이렇다. 세금·복지 이슈는 여야 모두에게 커다란 위기이자 기회다. 당연히 상대의 지지층이라 생각했던 그룹을 빼앗아올 수도 있고 자신의 고정 지지층이 반기를 들 수도 있다. 세금·복지 이슈가 정치의 핵심 전선으로 자리 잡는다면, 1987년 이후로 익숙했던 전선 전체가 재구성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조사했다
조사 대상: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표본수: 1000명
응답률: 17.8%
표본추출: 비례할당 및 체계적 추출법
조사 방법: DUAL RDD 방식을 이용한 전화면접조사(CATI)
조사 기간: 2015년 2월8~9일
조사 기관: 미디어리서치

 

〈시사IN〉과 미디어리서치는 세금·복지 이슈를 다룬 이번 여론조사에서 세 가지 질문에 중점을 두었다. 첫째, 세금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나. 둘째, 세금과 복지라는 ‘주고받기’가 내게 얼마나 효용이 있다고 생각하나. 마지막으로, 세금을 더 내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어느 정도나 동의할 것인가. ‘공정’ ‘효용’ ‘동의’는 이번 조사를 관통하는 세 키워드다.

먼저 현재 복지제도에 대한 여론의 인식부터 확인해보자. “경제 규모로 볼 때 현재 복지 수준이 어떻다고 생각하나?”라고 물었다(20쪽 〈표 1〉). ‘낮다’는 응답이 61%, ‘높다’는 응답이 35.8%였다. 한국의 경제 규모라면 지금보다는 복지 수준이 높아야 한다고 보는 여론이 다수파다. ‘낮다’는 응답은 젊고 교육 수준이 높고 야당 지지층일수록 두드러졌다.

“세금은 불공정하고 복지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 사회는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어려울 만큼 사회 안전망이 취약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나?”라고도 물어보았다. ‘복지’를 ‘사회 안전망’으로 바꿔 물은 셈이다. ‘동의한다’가 73.1%, ‘동의하지 않는다’가 24.9%였다. 복지 결핍보다 사회 안전망 결핍을 느끼는 응답자가 10%포인트 이상 더 많다.

전문가들은 복지와 사회 안전망을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반 여론은 둘을 다르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복지가 취약 계층에 대한 시혜의 어감이 강하다면, 사회 안전망은 경쟁 탈락자의 재기 가능성과 연관해 이해하는 편이다. 이 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복지 확대를 추구하는 세력은 ‘복지’보다는 ‘사회 안전망’이라는 표현을 쓸 때 지지를 더 많이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 ‘시혜’보다는 ‘재기’나 ‘자활’이 더 긍정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아무튼 여론의 60% 이상은 현재 수준의 복지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제 첫 번째 키워드인 ‘공정’을 살펴보자. “세금이 공정하게 부과된다고 보는가?”라고 물었을 때, 78.8%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다(〈표 2〉). ‘전혀 공정하지 않다’고 강하게 부정한 응답만 해도 31.1%였다. 상당히 높다. 반면 ‘공정하다’는 응답은 17.4%였고, 이 중에서도 ‘매우 공정하다’는 1.9%에 그쳤다.
 

“현 정부의 세금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도 던져봤다. 추세는 비슷하다. 77.1%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도 58.1%가 부정 평가를 내렸다. 새 정치민주연합 지지층은 거의 만장일치에 가깝다. 92.2%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세금의 공정함에 대한 신뢰가 붕괴 수준이다. 고령화와 저성장 추세 때문에 장기적으로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옳다면,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금의 공정함에 대한 신뢰를 복원하는 것이다. 78.8%가 세금의 공정함을 의심하고, 특히 31.1%는 강하게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는 여론 지형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본격 증세는 고사하고 미세한 조정에도 조세 저항이 폭발하기 쉬운데, 이러면 집권세력의 통치력도 극도로 제약될 수밖에 없다. 연말정산으로 인한 조세 저항의 폭발은 이 시한폭탄의 위력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여론은 왜 세금이 불공정하다고 느낄까. 바꿔 말하면, 어느 영역에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느낄까. 그 결과가 〈표 3〉이다. 응답자의 46.3%가 ‘대기업’을 지목했다. 이어 ‘고소득 자영업자’ 19%, ‘고소득 근로자’ 11.9%, ‘부동산 소유자’ 10.5% 순서였다. 대기업 법인세 문제가 세금의 공정성 이슈와 직결된다고 짐작 할 수 있는 결과다.

법인세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존재하지만(대표적으로 법인세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세금으로 과세 목적과 다른 결과를 낸다는 비판 등이 있다), 여론은 대기업이 내는 세금이 지나치게 적다고 본다. 그것이 대기업 과세 요구와 재벌 가문에 대한 과세 요구를 뒤섞은 결과일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대기업 법인세가 불공정 과세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것은 현실이다. 따라서 책임 있는 정치 세력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법인세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법인세 인상이나 다른 방식의 재벌가 과세를 관철해 공정성을 요구하는 여론에 응답하거나, 혹은 법인세 인상이 정답이 아니라고 보는 근거를 제시해 여론을 설득해내야 하는 국면이다.
 

여론이 느끼기에 ‘공정’이 무너져 있다면, ‘효용’은 어떨까. 학교 급식이 정치 의제로 떠오른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보육과 기초노령연금 등 복지 제도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다. 과연 시민은 복지의 효용을 느끼고 있을까. 〈표 4〉를 보면, 그렇지 않다. 과거와 비교해 복지 혜택이 늘었다고 느끼는 응답자는 22.4%에 그쳤다. 62.5%는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느끼는 응답자도 13.2%였다. 연령별로 보면 복지 혜택이 늘었다는 응답자는 60세 이상에서 유난히 높은 35.8%였다.

혜택이 늘었다는 응답자에게는, 어느 분야에서 혜택이 늘었는지도 따로 물었다. 노인 복지와 보육 복지가 상대적으로 효능감이 높았다. 35.5%가 ‘기초연금 등 노인 복지’를 꼽았다. ‘어린이집 등 보육 복지’가 25%로 뒤를 이었다. 복지정책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무상급식 등 교육 복지’ 16.9%, ‘건강보험 등 의료 복지’ 15.6%, ‘실업급여 등 고용 복지’ 6.2% 순서로 나타났다.

세금과 복지의 주고받기는 ‘시민과 국가의 거래’로 이해할 수 있다. 시민은 세금으로 지불하고 복지로 돌려받는다. 이 거래가 ‘남는 장사’라고 느낄 때 시민의 조세 저항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물어봤다. “세금과 복지 혜택 중 어느 쪽이 더 많다고 보나?” 그 결과가 〈표 5〉다. ‘내는 세금보다 받는 복지 혜택이 더 적다’가 71.6%로 압도적이다. ‘내는 정도에 알맞게 받는다’가 20.6%, ‘더 많이 받는다’가 5.2%다. 열 명 중 일곱 명이 국가와의 거래에서 손해를 본다고 느낀다. 복지 효용에 대한 감각이 그만큼 낮다는 얘기다.

묘한 반전은 여기부터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로는, 여론은 세금이 공정하다고 느끼지도 않고 복지가 효용이 있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그러면 당연히 증세에 대해서 동의 수준이 낮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기존 여론조사 중에는 ‘복지 확대+증세’와 ‘복지 축소+세금 수준 유지’ 조합으로 양자택일을 묻는 질문이 있었다. 이 경우 후자가 우세한 경향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 양자택일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했다고 보기 힘들다. 현재 수준의 복지를 유지하더라도 고령화 추세 때문에 향후 복지에 들어가는 돈은 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사IN〉은 질문에서 이런 현실을 먼저 안내한 후, ‘세금을 더 걷어서 복지 수준을 유지하거나 높여야 한다’와 ‘세금을 더 걷지 않고 복지 수준을 줄여야 한다’의 양자택일을 제시했다. 결과는 주목할 만했다. ‘증세+복지 유지 또는 확대’ 조합이 50.3%로 더 지지를 받았다(〈표 6〉). ‘세금 유지+복지 축소’ 조합은 41.2%였다. 크게 기울지는 않지만, 증세의 손을 들어준 여론이 오히려 많다.

기존 여론조사들과 이번 〈시사IN〉·미디어리서치 조사가 갈라지는 지점이 여기다. 복지 유지를 위해서도 증세(누구의 세금이든 간에)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이 명시될 때, 여론은 일방적인 조세 저항에서 한 발짝 떨어져 증세론에도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 복지를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더 정직할 필요가 있다고 암시하는 결과다.

응답자의 51.6% “사회복지세 낼 생각 있다”

물론 증세의 지지자들도 “누구에게 증세를?”이라고 물으면, ‘내 주머니는 아니다’라고 답한다. 앞의 질문에서 증세를 지지한 50.3%에게 “그렇다면 누구에게 증세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부자와 대기업 등에서만’ 증세하라는 응답이 66.6%, ‘국민 모두에게’ 증세하라는 응답이 31.9%였다(〈표 7〉). 증세 최대의 장애물인 ‘공정하지 않다’는 스위치가 다시 켜진다. 화살은 재차 대기업과 부자를 향한다.

이런 난제에 대해 복지를 지지하는 블록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방안이 ‘사회복지세’다. 걷을 때부터 사용처를 복지로 제한하는 세금을 신설하자는 전략이다. 세금이 공정하게 걷힌다는 신뢰가 없고 걷힌 세금이 내 복지를 높이는 데 제대로 쓰인다는 확신이 없으므로, 아예 확실하게 돈에 ‘꼬리표’를 달자는 얘기다.

복지에만 쓰는 사회복지세가 신설된다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응답자의 51.6%가 ‘있다’고 답했다. 44.8%는 ‘없다’고 답했다(〈표 8〉). 자기 주머니에서 세금을 더 낼 의향을 물었는데도 긍정적 답변이 더 많이 나왔다. 증세·복지 이슈에 대한 여론은 무조건 조세 저항으로만 쏠릴 만큼 단조롭지 않았다.

요약하면 이렇다. 여론은 한국의 현재 복지 수준이 경제력에 견줘 부족하다고 느낀다. 복지 과잉·복지망국론이라는 보수 블록의 주장은 공감대가 넓지 않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복지 확대는 여론의 지지를 받을 여지가 크다.

하지만 세금이 공정하지 않다는 대단히 강한 불신이 이런 현실 인식을 뒤집는다. 복지 확대는 세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슈라는 인식은 정착 단계다. 그 때문에 복지 확대는 곧 증세를 떠올리게 하는데, 정작 세금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바닥 수준이다. 불신의 강도도 이례적으로 높다(전혀 공정하지 않다 31.1%).

복지정책이 확장 기조에 있지만, 복지의 효용을 느낀다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60세 이상층 등 직접 수혜 계층이 반응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소수파다. 복지의 체감 효용이 낮다는 응답은 복지가 부족하다는 상황 인식과도 일관성이 있다.

그러니 보통의 시민은 세금과 복지를 주고받는 ‘국가와의 거래’에서 손해를 본다고 느낀다. 세금은 공정하지 않고, 복지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조세 저항은 논리적 필연으로 보인다. 실제로 연말정산 파동 당시의 조세 저항은 박근혜 정권의 지지율을 29%(한국갤럽 기준)로 끌어내렸다.

하지만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을 때, 여론은 증세를, 고려할 만한 옵션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현재의 복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증세를 조건으로 내걸거나, 확실히 복지에만 쓰이는 세금을 신설한다고 했을 때,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증세 지지자로 돌아선다. 후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이 늘어나도 낼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정보를 제공하거나, 공정과 효용을 끌어올릴 방안을 제시하는 노력에 여론은 반응한다. 이는 현실 정치세력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22~ 25쪽 기사 참조).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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