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기원해야 되지 않을까요?”

〈시사IN〉 편집국 회의 때 이 말을 꺼냈더니, 다들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인사 참사, 청와대 비선 파동, 복지 후퇴, 연말정산 파동, 증세 없는 복지 논란 등 잇따르는 무능과 무책임으로 핵심 지지층마저 등을 돌린 이 정권에 무얼 기대하겠느냐는 반응이었다. 바닥을 모르고 무너져가는 대통령 지지율은 박근혜 정권의 ‘자업자득’이라는 냉소이기도 했다. 민심 속의 박근혜 정부는 이미 ‘정권 말기’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임기가 여전히 절반 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제 겨우 5분의 2가 지났을 뿐이다. 명백한 ‘정권 전반기’다. 냉소하고 포기하기에는 정부에 위임된 권력의 시간이 너무 길다. 최장집 교수의 말마따나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의 합의를 추진한 적이 없으므로’ 오히려 기회가 남아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여, 각계 인사들에게 물었다.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냉소 대신 덕담을 청했다. 증세 문제부터 원전 정책까지, 짧지만 굵은 ‘조언’이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조언들을 참고해, 성공한 정권으로 남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그때 그 사람’을 신뢰하면 된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위기를 극복할 만한 자원을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인적자원인데, 박 대통령이 의외로 인적자원을 소진하지 않은 채로 인력풀을 갖고 있다.

지금 주위에 있는 분들 말고, 대선 때 경제민주화와 복지 이슈를 선점했던 사람들이 있지 않나. 김종인 박사, 이상돈 교수 같은 분들. 대선 때에는 후보가 이분들을 신뢰하고 공약과 캠페인이 그런 방향으로 나와서 승리할 수 있었다. 또 대통령이 당과 잘 협력해 당·청 관계를 매끄럽게 풀어가는 것이 대통령제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는, 이를테면 유승민 원내대표 같은 분은 실력이나 신뢰감에서 야당 쪽 자원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대통령이 손만 뻗으면 쓸 수 있는 인적자원이 꽤 풍성하다. 이분들은 과거에 대통령이 안 써본 사람들도 아니고 대통령이 마음만 살짝 돌리면 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라면 사적 관계보다 공적 역할을 중심에 두고 사고할 필요가 있다. 그게 리더십이고.

꽤 역설적인 것이,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 초반에 자신의 개혁 의제를 강하게 추구하다가, 임기 중·후반이 되면 동력이 소진되면서 안정적인 관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곤 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첫 두 해 동안 대선 때의 합의와 전혀 상관이 없는 방향으로 갔다. 집권 당시의 의제를 추진하다 맞은 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역설적이지만 대선 때의 합의와 인적자원이 남아 있다. 대선에서 위임받은 동력이 다치지 않고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거기에 손을 뻗기만 하면 위기는 의외로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집권 세력 내에 있는 인적자원만 잘 활용해도 위기 극복이 꽤 간단할 수 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지금 필요한 건 소득재분배 정책

 

한국 경제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 일시적인 어려움이 아닌, 경제구조에서 기인하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다. 우리 경제는 3%대 후반 성장률, 지속적인 경상수지 등으로 볼 때 양호한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은, 위기의 본질이 ‘성장이 아니라 분배’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민생이다. 경제성장의 과실(果實)이 가계에 전달되지 않아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는 심화하며 빈부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다. 경제성장률이 3.8%지만, 가계소득은 제자리걸음이며 가계부채는 1000조원을 넘는다. 부채 상황을 빼면 가처분소득은 뒷걸음질을 치는 실정이다. 결국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나아가 서민 가계를 향상시켜야 한다.

하지만 증세를 통하지 않고서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합하는 치적을 쌓기는 어렵다. OECD 평균 조세부담률은 26%인데 우리는 20%밖에 되지 않는다.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정부 복지 지출 비율도 OECD 평균 22%인데 한국은 10%가량에 불과하다. 법인세율은 미국과 프랑스, 일본이 30% 중반이고 한국은 22%다. 감면세 뺀 실효세율은 15%이다. 증세는 재분배를 위한 당연한 절차이다. 복지를 늘리고 가계소득을 증대해 소비를 늘려야 경기가 살아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되었지만,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정부가 한 일은 없다고 본다. 박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내건 공약 네 가지(경제민주화, 국민통합, 남북관계 개선, 민생 문제) 가운데 어느 하나 안정된 게 없다. 앞으로 3년 잘 해줬으면 하는데, 분배 구조 개혁에는 뜻이 없어 보여 남은 3년도 기대할 게 없을 것 같다.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공약대로만 실천하라

 

일단 쓴소리부터 하겠다. 지난 2년 동안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라는 공허한 구호와 규제 완화로 나라 경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도대체 창조경제가 뭔가? 그 개념에 대해서는, 미래부 장관은 물론 대통령 자신도 정확히 짚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시장에 끊임없이 불을 붙이고 싶어 하는데 그러다간 정말 큰일 날 수 있다. 지금까지 부동산 정책의 결과만 봐도 부동산 경기는 살아나지 않는데 전셋값만 오르고 있지 않은가. 참여정부를 제외한 모든 역대 정부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사용해온 수법인데, 아주 잘못된 구태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 증세만 하니까 서민들이 살기는 대단히 어려워진 것 같다. 나라 전체가 표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오만과 불통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무능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10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내게 되면 국가 전반이 대단히 위험한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조언한다. 제발,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가 내놓았던 공약대로만 실천해라. 바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다. 경제민주화로 재벌 대기업의 횡포를 억제해서 중소기업도 숨 쉴 수 있게 해야 한다. 복지국가를 진정 실천할 의향이 있다면 부자 증세가 불가피하다. 증세 없이 복지국가를 건설한다니까, 결과적으로는 서민들 세금이나 올리는 것으로 귀착되지 않았나. 가뜩이나 돈이 밑으로 순환되지 않는데 세금까지 올리니, 밑바닥 정서는 지금 최악의 상태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정책 방향을 ‘포용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재벌 대기업과 부자들이 아니라 빈곤층과 중소기업처럼 추운 곳에 볕을 쬐라는 이야기다. 부자 증세로 제대로 된 복지정책을 시행해서 국가 경제 전반으로 돈을 순환시켜야 경기도 살릴 수 있다. 이는 부자들에게도 궁극적으로 이로운 일이다.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에 비해 과다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공무원들 역시 비교적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기대하며 공직에 몸담은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그냥 내놔라’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한 평화로운 해결을 희망한다.

재벌이나 부유층 눈치만 보면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없다. 과감하게 옳은 길로 가라. 공약을 실천하라. 이대로 가면 모두 망한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인턴·수습사원에 주목하세요

 

얼마 전 패션업계의 ‘열정 페이’, 위메프의 수습사원 해고 ‘갑질’이 논란이 되었다. 지난해에는 정규직 전환을 희망하던 중소기업중앙회 20대 계약직 청년이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1970~80년대를 겪었던 부모 세대가 흔히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고 말하는데, 지금 청년이 겪고 있는 노동 문제는 근본적으로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지점들이 있다. 노동시장에 장시간 발을 들이지 못하면서 평생에 걸쳐 안정된 직장과 소득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한 세대 전체가 삶의 안정성을 위협받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통합의 기반이 무너진다. 단순하게 ‘불쌍하니 지원해준다’는 식의 정책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좀 더 전향적인 시각에서 청년이 살아갈 안정된 삶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박근혜 정부가 역량을 집중하길 바란다. 이를테면 인턴·수습사원 등 청년이 직장에 들어가기 전 경험하는 과도기 노동에 주목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원전 특위위원장)
여성의 마음으로 원전 걱정한다면

 

여성의 표심을 잘 읽는 정치인이 성공한다. 지난 7·30 재·보궐 선거 때 부산 해운대·기장갑에서 당선된 배덕광 의원(새누리당)은 선거에 나서기 전까지는 원전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선거운동에서 만난 젊은 엄마들이 한결같이 ‘고리원전 1호기’ 폐쇄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고 한다. 여성 표심을 간파한 이 후보는 ‘고리 1호기 폐쇄’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여성 표도 얻고 당선도 되었다. 젊은 여성들의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이런 엄마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사고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아이 키우는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안전’이다. 내 새끼들의 안전한 먹을거리와 미래를 만들어주는 정치인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요즘 여성들은 SNS를 통한 정보 교류와 조직화에도 익숙하지만 정부 부처와 정치인에게 민원을 넣고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오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또한 아이들 안전에 관한 한 남편을 교육하고 설득하는 일에도 열성적이다. 이런 젊은 엄마들의 표심을 얻으면 성공하고 아니면 실패하는 정치인이 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할 때 “국가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국민의 삶이 불안하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라며 ‘국민행복시대’의 필수 조건으로 ‘안전’을 강조했다. 젊은 엄마들이 생각하는 아이들 안전의 최대 위협 요인은 노후 원전 가동과 식품 방사능 오염이다. 박 대통령이 노후 원전 폐쇄와 방사능 오염 차단에 나선다면 여성들의 표심은 달라질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영입 1순위는 슐츠 같은 전략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전략가를 영입해야 한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정책에 약하고 외교 경험도 없었다. 그러나 슐츠 국무장관을 영입해서 소련과의 협상에 나섰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핵심적인 문제도 이와 비슷하다. 대통령은 잘 모르고 실무 부서는 권한이 없으며 부처 간 조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선적으로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총괄할 국가안보실장에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 질서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전략가를 영입하고, 그에게 권한을 주면 된다.

또한 이명박 정부와 단절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무분별한 남북 접촉의 진상을 밝히고 5·24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 통일이 된 이후의 장밋빛 환상을 말할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통일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대북 정책의 방향을 놓고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분열을 조장하고 증오를 수단화하는 정치는 성공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박범신 (소설가)
낮은 자리의 목소리 귀 기울여주시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청출어람’을 기대한다. 자식이 부모보다 나아야 하지 않겠나.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에 성공했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회적 그늘도 만들었다. 딸로서 그 그늘을 잘 덮어주었으면 한다. 경제개발에 욕심을 내지 말고 그 부작용에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후배는 선배의 부족한 부분을 덮고 가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공식석상에서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그런데 이쪽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지 않다. 창조경제 등 경제성장과 관련해 얘기를 많이 하는데 국민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 경제성장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못 먹고 못살아서만 아우성치는 것이 아니다. 분배 구조를 지금보다 더 공정하게 해준다면 국민이 훨씬 더 행복해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서민을 대상으로 한 공약 덕분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당선되고 난 후에 서민 공약을 가장 안 지키는 것 같다. 담뱃값은 오르고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은 더욱 얇아졌다. 돈 있는 사람에 대한 증세는 안 하고 있다. 많은 서민들이 섭섭해하는 부분이다. 새해에는 따뜻하고 넓고 부드러운 품으로 서민을 대하길 바란다. 낮은 자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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