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혀야 할 사람’이 절로 떠오르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을 받아들 때면 평화 시위 삼아 ‘읽혀야 할 사람에게 책 보내기’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속에 쌓인 울분과 열망의 발로가 되고, 금전적 지원이 필요한 쪽에는 수익금과 인세로 지지를 표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보내기 전에 먼저 읽어보며 반대의 논리를 단단히 다질 수 있고, 시름 깊은 출판계에 활기를 수혈하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제멋대로 상상을 펼쳐본다.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은 〈기네스북〉을 최고의 책으로 꼽은 자국(캐나다) 총리 스티븐 하퍼에게 문학의 중요성을 전하기 위해 47개월간 101통의 편지와 추천 책을 보내며 그 과정을 자신의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총리는 한마디의 답변도 없었지만, 그 기록은 반향을 일으켰고 다른 작가들과 각국 독자들의 추천 참여로 이어졌다. 그는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에서 정치인이라면 제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을 거란 믿음을 주기 위해 재산 상황을 밝히는 것이 원칙이라며 정치인의 상상력도 자산의 범주에 넣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나를 지배하는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뭘 상상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의 꿈이 자칫 나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4대강에 이어 평창에서 또 다른 악몽을 만날지도 모른다. 어렵게 유치한 평창 동계올림픽(사진) 준비가 표류 중이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구체적 복원 계획도 없이 단 3일간의 활강 경기를 위해 무작정 벌목 중인 500년 원시림 가리왕산이다. 행사 이후 생태 복원에 필요한 예산은 약 1081억원. F1 대회나 아시안게임으로 빚더미에 앉은 지자체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이 제안한 분산 개최가 합리적이라는 것은 계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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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해법은 삽질밖에 없다는 듯 원안을 고수하는 평창올림픽 관계자들에게 보내고픈 책은 마스노 묘의 〈공생의 디자인〉, 함민복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이다. 선승이자 정원 디자이너인 마스노 묘는 모든 것에 깃든 생명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선(禪)의 디자인을 말한다. 남의 생명에 기대어 내 생명을 잇고 있다는 그의 말은 갯벌에서 개발의 대척점을 보았던 함민복의 시와도 통한다.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 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 조금 무쉬 한물 두물 사리/ 소금물 다시 잡으며/ 반죽을 개고 또 개는/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IOC의 분산 개최 논의 마감 시한은 3월. 얼마 남지 않았다. 해외 분산 개최가 어렵다면 국내 그리고 북한과의 분산 개최라는 대안도 있다. 더 늦기 전에 어떤 것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인지 따져봐야 한다. 방향이 어긋난 정치가의 상상이 초래한 악몽은 4대강으로도 충분히 겪었다.

기자명 박정남 (교보문고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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