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랐던 또 한 명의 죽음
  • 김은지 기자
  • 호수 386
  • 승인 2015.02.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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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박 대통령 5촌 간 살인사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2012년 12월 <시사IN> 보도 등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사건과 관련해 놀라운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2013년 10월23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변호사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묻자 형사가 답했다.

“당시 박용수의 목 맨 사진에서 몸에 두른 빨간 것은 무엇인가요?”

“수건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 목을 매면서 그 위에 수건을 두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것인가요?”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갑니다.”

“이것을 보고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요?”

“당시에는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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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gcaption><div align=ⓒ민변 제공 박용수씨가 묵었던 여관에도 CCTV(위)가 설치돼 있었지만 경찰은 간과했다. 두 사람이 마지막에 들렀던 노래방 CCTV(맨 왼쪽) 역시 확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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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gcaption><div align=ⓒ민변 제공 박용수씨가 새벽에 지나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산 등산로에는 등산객 출입을 확인하는 기계(위)가 설치돼 있었으나 당시 경찰은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경찰 경력 27년, 그중에서도 강력·살인·조직폭력 사건을 24년간 맡았다는 형사의 대답이었다. 사건을 담당했던 베테랑 형사는 당시 발견된 수건을 감정 의뢰조차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따져 묻는 변호사에게 백 아무개 형사는 “그 당시에는 그런 판단을 하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했어야 되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부실 수사를 인정한 셈이다.

처음에는 그저 ‘사촌이 또 다른 사촌을 죽이고 자살한 사건’이었다. 2011년 9월6일 새벽 박용철씨(당시 49세)는 칼로 난자당하고 망치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되었다. 사건 현장에서 3㎞ 떨어진 서울 북한산 등산로에서 목을 맨 채 숨진 박용수씨(당시 51세)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두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과 5촌 사이다. 박용수씨 옷과 살해 현장에서 수거된 흉기에서 발견된 피가 박용철씨 DNA와 일치한다는 점 등을 들어 경찰은 ‘사촌 간 살인사건 및 자살’로 결론 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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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시사IN>은 이 사건의 새로운 의혹을 보도했다(<시사IN> 제273호 ‘친척 간 살인’ 새 의혹, 주검에서 수면제 검출). 단독 입수한 부검 감정서와 사건 기록을 근거로 단순 피살과 자살 사건으로 보기 힘든 정황이 나왔다고 밝혔다. 경찰이 사건을 발표하며 알리지 않은 내용을 담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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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두 사람의 몸에서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졸피뎀·디아제팜과 같은 수면제 성분이 발견되었지만, 둘 다 처방받은 사실이 없었다. 자살한 박용수씨 위장에서는 녹지 않은 알약 1정이 발견되었다. 박용수씨가 쓴 유서도 필적감정 결과 박씨가 직접 쓴 것이라 단정할 수 없었다. 박용철씨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칼은 박용철씨 혈흔이 묻어 있지만 박용수씨 지문은 없었다. 자살한 박용수씨 곁에 있던 가방에서도 칼이 한 점 더 발견되었는데, 거기서도 박용수씨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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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으로 얽힌 박지만·신동욱·박용철의 관계</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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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신동욱씨(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이자 박근령씨의 남편) 쪽은 이 죽음이 석연치 않다는 주장을 계속해왔다. 신씨는 박지만씨가 자신을 중국 칭다오에서 청부 살해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박지만씨가 명예훼손·무고 혐의로 신동욱씨를 고소해 신씨는 재판을 받는 중이었다. 박용철씨는 2007년 육영재단 분쟁 사건에 직접 관여했고, 중국 칭다오에도 신씨와 함께 간 적이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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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철씨는 이미 2010년 9월1일 신씨의 재판에 출석해 “박지만 회장의 뜻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제가 녹음한 테이프가 있습니다”라고 증언한 바 있었다. 신씨는 박용철씨가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핵심 증인이라고 여겼다. 박용철씨가 죽었을 당시 신동욱씨 변호를 맡았던 조성래 변호사는 “오는 (2011년) 9월27일 박용철씨를 증인으로 신청해놨는데, 그 전에 죽었다. 그의 죽음으로 누가 반사이익을 볼지 생각해봐라. 석연찮은 죽음이다”라고 말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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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의혹을 종합적으로 보도한 기사에 대해 박지만씨는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를 걸어 주진우 <시사IN> 기자 등을 고소했다. 검찰이 기소했고 1·2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20~21쪽 기사 참조).<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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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선고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사실이 있다.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의혹이 여럿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1심 국민참여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사건 담당 형사는 증언 곳곳에서 수사가 부실했음을 드러냈다. 사건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김용민 변호사는 직접 서울 북한산 사건 현장을 찾아가 현장에 CCTV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주진우 기자 또한 두 사람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들렀던 술집에 가서 CCTV를 보았다. 하지만 박용철·박용수 사건 기록에는 CCTV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었다. 법정에서 그 부분에 대해 변호사가 담당 형사에게 물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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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과 2013년 각각 육영수 여사 추도식에 참석한 박지만씨(왼쪽)와 신동욱·박근령 부부(오른쪽).
2011년과 2013년 각각 육영수 여사 추도식에 참석한 박지만씨(왼쪽)와 신동욱·박근령 부부(오른쪽).

 

“당시 사건 현장의 CCTV를 확보하려고 나선 적은 있는가요?”

“예.”

“증인은 (박용수씨가 묵던) 여관에 CCTV가 있는 것은 알고 있는가요?”

“예.”

“그 CCTV는 확보를 했나요?”

“그 부분은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박용수씨와 박용철씨가 사건 장소로 가기 전 술을 마셨던) 노래방에 CCTV가 안과 밖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요?”

“예, CCTV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확보하였는가요?”

“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현장 사진도 제시했다. 등산로 초입에 있는 통행인원 수를 세는 기계였다. 박용철씨 피가 묻은 칼이 발견된 개울가 옆 등산로에 위치한 시설이었다. 박용수씨가 박용철씨를 살해한 다음 자살한 장소로 걸어갔다면 지나쳐야 하는 곳으로 짐작되는 동선이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박용수씨가) 반드시 지나갈 수밖에 없는 통행인원 체크 시설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요?”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서울 강남구청은 ‘강남구 신사동에 △△바는 없다’고 2심 재판부에 회신했다(위).
서울 강남구청은 ‘강남구 신사동에 △△바는 없다’고 2심 재판부에 회신했다(위).

“이 기계는 기록이 5년간 보존된다고 하고, 지금도 그 사건이 발생한 시간에 몇 명이 몇 시에 지나갔는지를 알 수 있는데, 이를 수사한 적은 없지요?”

“예, 없습니다.”

박용철씨 살해 현장에서 사용된 것으로 경찰이 결론 내린 망치 또한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

“박용수가 박용철의 머리를 가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망치는 누가 어디서 구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가요?”

“그것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망치에서 박용수의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지요?”

“예.”

“망치에 관해서는 박용수가 구입한 증거도 없고, 사용한 증거도 없는 셈이지요?”

“직접 증거는 없지만, 정황 증거는 있습니다. 지문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박용수가 장갑을 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변호사는 현장 사진을 보여줬다. 박용수씨가 목매 숨진 채 발견되어 그대로 찍힌 모습이었다. 숨진 박용수씨 손에는 장갑이 있긴 했지만 반장갑이었다. 손가락 부위는 노출되어 있었다.

“위 사진에 나와 있는 장갑은 손가락이 나와 있는 장갑이지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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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장갑을 꼈더라도 지문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요?”<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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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지문이 당연히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반장갑을 꼈을 때에도 지문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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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는 모든 사물을 잡으면 지문이 나온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주장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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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사로) 사건을 종합해보면, (박용수가) 망치는 지문을 지운 뒤에 사체 옆에 버렸고, 테이프를 감지 않은 칼을 사용해 찌르고 계곡에 버렸으며, 사용하지 않은 테이프를 감은 칼은 가방에 넣어서 3㎞를 2시간가량 걸어서 가지고 가 자살 현장에 버리는데, 증인은 이런 내용이 납득되나요?”<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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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은 납득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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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형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지만 굳이 흉기 3개를 모두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날 형사는 정황 증거가 아닌 직접 증거는 말하지 못했다. 당시 수사가 부실한 게 아니냐는 변호인의 질문 공세를 받은 형사는 재판 말미에 결국 자기 말을 듣는 사람이 웃을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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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수가 자살하기 20~30분 전에 변비약을 먹은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나요?”<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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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 답변을 드리면 의아하고 웃을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습관적으로 정장제를 먹었던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가방에서 발견된 약병의 약과 같은 약을 먹은 것으로 국과수 감정 결과 확인했습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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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병에 박용수의 지문이 있었나요?”<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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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검사하지 않았습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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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에서도 새로운 사실은 또 드러났다. 경찰은 사건 전날인 2011년 9월5일 박용수·박용철씨가 ‘△△바’라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주점에서 1차 술자리를 갖고, 성동구 왕십리의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2차로 술을 마신 다음 돌아가다 사건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숨진 두 사람의 행적은 주변인 조사 등을 통해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술집 주인, 대리기사, 술자리에 함께한 사람의 진술 등을 토대로 한 수사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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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두 가지 사실’</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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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변호인들의 사실 조회 결과 사건 당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바는 없었다. 두 사람이 △△바에서 1차 자리를 가졌다고 경찰이 단정한 이유는 이들과 함께 술자리를 했다고 한 황 아무개씨(당시 37세)의 진술이 있어서였다. 박용철씨와 함께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에 근무한 적이 있다고 밝힌 황씨는 사건이 일어난 2011년 9월6일 저녁 경찰 조사에서 “전날 저녁 7시경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라는 바에서 두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 술을 마셨다”라고 진술했다. 그런 다음 자신이 박용철씨의 차를 운전해 왕십리에 있는 노래방에 저녁 9시 정도에 도착했고,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두 사람이 말도 하지 않고 나가버렸다고 말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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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 말에 따르면, 그는 사건 전날 저녁부터 사건 발생 직전까지 두 사람과 계속 자리를 한 사람이다. 그런 그의 증언에서 기본 사실 관계가 틀린 게 뒤늦게 드러났다. 거짓말을 했거나 사실을 부정확하게 진술했다는 말이다. 경찰 또한 핵심 관계자의 진술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검찰은 강남구청에 문의해보니 무등록으로 영업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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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은 황씨를 법정에 불러 직접 물어보려고 김어준·주진우 2심 재판 증인으로 신청했다. 지난해 9월 증인으로 채택된 황씨는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황씨가 경찰 수사 당시 기재한 주소로 법원이 증인 출석 요구서를 보냈지만 전달되지 않아서다. 법원은 황씨의 현 소재지 파악을 위해 변호인에게 주소 보정 명령(주민등록초본을 떼 현 주소를 확인하는 절차)을 했다. 지난해 10월 변호인이 발급받은 황씨의 주민등록초본에는 그가 2012년 9월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다. 박 대통령 5촌 간 살인사건의 주요 증언자가 죽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br><!--sisain_content_728x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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