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내딛기도 힘들었다. 설천봉 초입부터 더디 올라가던 행렬은 향적봉을 앞에 두고 아예 멈춰 서버렸다. 휴일인 1월25일, 관광객 수천명이 찾은 덕유산 정상(전북 무주 소재)은 산이 아니라 놀이동산이었다.

해발 1614m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한국에서 네 번째로 높은 덕유산은 관광객이 하루 수천명씩 줄지어 올라갈 만큼 만만한 산이 아니다. 하지만 무주리조트가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사용했던 스키 리프트를 관광용 곤돌라로 겸용하면서 관광객들은 주차장에서 단 15분 만에 해발 1500m의 설천봉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이후 20분 정도의 산행만으로도 덕유산 정상을 밟게 되자 관광객이 기하급수로 늘어났고 결국 산에 탈이 났다. 지난해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전국 15개 산악형 국립공원의 144개 탐방로에 대한 탐방객 수, 훼손 상태, 샛길 이용 정도 등을 조사한 결과 덕유산 향적봉이 이용압력(스트레스) 지수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이용압력 지수라는 생소한 이름은 차치하고라도 카메라에 잡힌 덕유산 정상은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곤돌라에 몸을 실은 이들이 쉽게 산을 밟고 올라서는 사이, 산은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산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시사IN 이명익

기자명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sajin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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